|계간비평|

 

낯섦과 새로움  

 

                                                                                김채은

《계간수필》 겨울호를 읽고 난 후, 뽑아낸 글의 필자 프로필을 보고 적이 난감했다. 대학에서 국문학이나 영문학 강의를 오래 해 온 분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망설이고 있는 중 불쑥 떠오른 생각이 있었으니 하나는 <생활生活의 달인>이라는 TV 프로요, 또 하나는 모교의 교문에 걸려 있던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현수막이었다.

직업상 같은 일을 오래 해 오다 보면 숙련된 기능을 지니게 되고 그 중에는 ‘달인’의 칭호까지 듣는 사람도 생긴다. 교수는 가르치는 직업이다. 스스로 연구하고 또 제자를 가르치며 교학상장敎學相長해 온 분들이니 그동안 읽은 책이 기하이며 거기서 접한 명문名文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솔직히 지금 나는 조금 주눅이 들어 있다. 열도 모르는 사람이 백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의 글을 놓고 찬탄한다 한들 그게 뭐 그리 대수로울 일인가. 나는 인문학도도 아니다.

 

 <이 가을에> 김명렬

이 글을 두 편의 수필로 나누어 읽었다. 서두에서부터 둘째 페이지의 두 번째 문단까지가 (1), 그 다음부터 끝까지는 (2)다.

(1)에서 작가는 생명력의 징표인 ‘열정과 감동’이 사라진 자신을 돌아보며,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표현으로 유명한 워드워즈의 시를 분석해간다. 그리고 거기서, 자신이 잃어버렸다고 탄식하는 그 ‘열정과 감동’보다 ‘관조적이고 철학적인 통찰’이 한 수 위라고 말하는 시인의 결론에 이르러 그건 ‘온기 없는 위로’일 뿐이라며 일축해 버린다. 결국 남은 것은 늙어버린 자신과 그런 자신이 느끼는 ‘결핍된 생명력’뿐이라고 냉소하며 (1)의 글은 끝난다. 쓸쓸하지만 흠잡을 데 없는 한 편의 고품격 에세이다.

(2)는 물론 (1)의 연장선 위의 글이다. 그러나 처음의 한 문장을 뺀 후 읽어가 보라. (1)에서 점잖은 문체로 나이 든 자의 상실감을 피력해 가던 고고한 학자는 간 데 없다. 작열하는 태양, 짙푸른 잎사귀, 염천을 능멸하는 능소화의 오만? 그리고 거기 땡볕 쏟아지는 텅 빈 길 위에 ‘잃어버린 가슴앓이’의 회귀를 예감하며, 우뚝 서 있는 작가의 저 존재감을 보라.

작가의 온축을 숨길 수 없는, 수필의 특성이 긍정적으로 발휘되는 아름다운 순간이다.

 

<아득한 별, 낯선 꽃> 김창진

참으로 낯선 글이다. 한 편의 수필을 네 사람이 쓰다니. 처음 읽을 때는 헷갈리고 모호했다. 그렇게 헤맨 것은 이 글 바로 앞서 읽은 글들의 이미지에서 미처 벗어나지 못했던 게 한 원인일 수도 있다.

몇 시간의 시차를 둔 후 다시 읽었을 때 비로소 미소짓고, 감탄하고, 부러워하다가, 드디어는 행복해졌다. ‘숙맥’ 동인들은 필력도 좋다. ‘한 편의 수필’안에 필자가 각기 다른 네 편의 글이 등장하고, 그 글들은 서로 다른 내용이면서 ‘한 편의 수필’ 안에서 이어지고 승화된다. 거듭 읽을수록 낯섦은 오히려 신선함으로 다가왔고, 미묘하게 드러나는 네 분의 ‘문필적 개성’을 분별해 보는 일은 흥미롭고도 유쾌한 작업이었다.

‘내가 / 졌다고 / 꽃이어 / 그리 / 오송송 / 하지 / 말라’는 시구詩句에 나도 마음이 쓰여 사족 하나를 달아본다. 화악산은 아니지만 그 옆의 명지산에서 본 금강초롱은 정말이지 조등燈과는 사뭇 먼 어여쁨이더라는 것, 그리고 그 산 아래 계곡에서 바라본 밤의 별빛은 망원경 없는 눈에도 초롱초롱함을 감추지 않더라는 것.

정녕 별은 아득할수록 더욱 반짝이고 꽃은 낯설수록 아름다운 법인가 보다.

 

<누님> 이향아

주변에서 누군가 “누님!”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괜히 마음이 푸근해지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으신지? ‘누님’이라는 호칭이 주는 정겨운 선입견이다.

눈앞에 뿌옇게 서리는 안개 때문에 더 이상 운전을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차를 세우고 한참이나 엎드려 감정을 눌렀다는 대목에선 저절로 함께 심호흡을 했다. 명쾌한 단문이 설득력 있게 이어지며 읽는 이를 와락 끌어들이더니 웬일로 시제가 조금씩 뒤로 물러난다. 무려 10여 년 전으로. 참 재미난 도입기법이다.

현장감 넘치게 들려주는 두 얘기는 정말로 목이 멜 만큼 가슴 저린 사연이다. 빼어난 문재文才가 호재好材를 만났으니 좋은 글로 완성될 것이고 나는 그저 즐기는 심정으로 읽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내가 그날 라디오방송으로 들은 것은 특정한 어떤 남매의 얘기가 아니었다.’라는 부분에 이르러 느긋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말았다. ‘누님’과 ‘누나’가 이렇듯 극명하게 구분되는 호칭이 아니라는 것은 작가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님’쪽에 과하다 싶은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자신이 ‘누님’으로 불리는 존재라는 것, 그렇게 불리려면 마땅히 이러해야하지 않겠느냐는 통절한 다짐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로 호칭되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과연 그 이름에 맞갖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읽는 이로 하여금 돌아보게 만드는 따뜻하고도 서늘한 글이다.

 

<효불효孝不孝에 관하여> 정진권

무대가 사방에 있는 원형극장에 앉아서 동시에 공연되는 네 편의 연극을 보는 느낌이다. 무대배경과 등장인물은 다르지만 네 연극의 주제는 모두 하나 효孝다.

시각에 따라서는 이런 스타일의 글을 정통수필로 볼 수 있느냐는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앞에서 언급한 <아득한 별, 낯선 꽃>과는 또 다른, 독립된 짧은 글 네 편으로 이루어진 이런 형식의 수필은 가히 정 선생이 특허권자(?)라 해도 될 듯싶다는 생각이 든다.

90년대 후반쯤인가, 수필계가 한동안 ‘허구론虛構論’의 논쟁에 휩싸인 적이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에 정 선생이 서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문 밖에 서 있는 나는 그 결말이 어떻게 났는지 잘 모른다. 다만 그런 논쟁을 바라보며 내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보기는 했으니 수필에서 허구는 첫째, 그 허구가 진짜 허구임을 누구라도 다 알 수 있어야 하고 둘째, 작가 스스로가 허구임을 암시하거나 셋째, 오늘 여기 정 선생의 글 (2)와 (3)처럼 그것이 허구든 사실이든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본질의 진실성을 왜곡시키는 내용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 선생은 자주 이런 형식의 글을 쓴다. 그리고 그 글들은 매번 재미있고 따뜻한데다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선생 나름대로 터득한 ‘달인’의 기법이 아닐 수 없다.

 

<권지삼> 이익섭

글을 한참 읽어가다가 자신이 참 이상한 책읽기를 하고 있음을 깨닫고 혼자 웃었다. 마치 마주앉아 얘기를 들을 때처럼 문장의 끝마다 내가 대꾸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를테면 “혹시 ‘권지삼’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요?”라는 글에는 “아니요.”라고 하거나 “이런 실수가 빚어지게 만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에는 “아, 네. 그렇군요.” 라면서 마치 판소리에 추임새라도 넣는 양 흥겨워하며 읽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건 모두 작가 탓(!)이다. 이렇게 친절하고 재미있고 박식한 데다 겸손하기까지 한 글을 읽으며 어떻게 아무 표정 없이 그냥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잠시 후 나는 또 다른 책읽기를 시도해 보았다. 문장의 끝 존댓말 부분을 고쳐서, 즉 구어체를 문어체로 바꿔서 읽어보니 읽는 맛이 영 처음 같지가 않았다. 해학적이면서 격조 있는 한 편의 수필임은 여전했으나 독자에게 친밀감과 동일시를 느끼게 해주던 글맛은 사라지고 없더라는 것이다.

이 글의 제목은 <권지삼>이다. 그러나 테니스의 ‘love’얘기나 <삼국지가 울고 있네>와 함께 <권지삼>은 작가가 마지막 세 문단에서 피력한 내용으로 독자를 데리고 오기 위한 이정표일 뿐이다. 그러니 구어체의 존댓말을 사용한 건 얼마나 탁월한 선택인가. 가히 달인의 솜씨다.

선생은 혹시 이 글을 정년퇴임사의 일부로 쓴 건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그랬다면 그 퇴임식 자리에 참석한 사람 중, 선생의 저서에서 오류를 발견하고는 선생이 글에서 쓴 것과 같은 ‘구경꾼의 재미’를 맛보던 사람이 있었더라도 ‘그럴 수도 있지 뭐….’라며 눈감아 주었을 것만 같다.

만인이 이미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언어’를 가지고 창작활동을 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설은 ‘픽션’이라는 은신처가 있고 시는 은유, 함축, 생략 속에 숨을 수 있으나 수필은 지은이의 안팎이 그대로 드러난다. 유능한 수필가는 적절히 드러내고 적절히 감출 줄 아는 사람일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언급한 다섯 편의 글은 그 형식면에서 새로움을 주는 글들이었다. 새롭다는 것은 모든 예술 활동에서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덕목이라 생각된다. ‘창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관습과 익숙함을 깨는’ 것이라고 말한 사람이 피카소던가.

이미 밝혔듯이 난감하고 주눅이 든 채 여기까지 글을 써왔다. 숙제는 끝냈으나 마음은 연초부터 이어지는 한파처럼 춥고 시리다. 한때 당대의 문학평단을 주도했던 김윤식 선생은 수필 평은 ‘너무 어려워서’ 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어려움의 정체’가 ‘수필은 곧 그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있으면 2월이 될 것이고 그러면 봄도 가까이 와 있을 것이다. 부디 올 한 해가 모든 문우들에게 문운文運 가득한 매일이 되기를 기원하며 글을 맺는다.

 

 

계간 《수필공원》으로 등단.

 수필문우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