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사랑받는 세상

 

                                                                                     김병권

얼마 전, 한 여중생이 지나가는 초등학생을 발 걸어 넘어뜨리고 깔깔 웃는 모습이 인터넷 영상에 보도되어 충격을 준 일이 있다. 넘어진 초등학생은 이가 세 개나 부러졌다고 한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보다 힘이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며 즐거워하는 학생들의 행동 양태를 보면서 문학이 실종된 이 시대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인터넷이나 휴대폰 등 온갖 영상매체들이 제공하는 오락물에 빠져 지내는 요즘의 청소년들은, 자기보다 어린 아이들을 게임 속에 등장하는 적대성敵對性 캐릭터로 인식하여 꼭 물리쳐야겠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할지 한창 고민해야 할 그 시기에 이처럼 남을 괴롭히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재미삼아 그러한 행동을 일삼는다면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얼마나 위험한 사회일까.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문학적인 환경에서 살아간다. 어머니의 자장가를 들으며 잠이 들고,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레 삶의 교훈을 얻는다. 사람으로서 해야 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도 동화책을 읽으며 저절로 깨우친다. 바람직한 인성교육의 가장 기초단계를 담당하고 있는 것이 바로 문학인 셈이다.

그런데 요즘 중·고교에서 배우는 문학 교육은 오히려 문학을 외면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입시위주 교육에 치우친 나머지 문학작품을 낱낱이 획일적으로 분석하고 파헤쳐 머리 아픈 과목으로 전락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생각이나 감성이 달라 작품을 받아들이는 인식 수준이나 정도도 그만큼 다양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미리 정답을 정해놓고 틀에 맞춰 일방적으로 주입시키고 있으니 문학은 점점 외면당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문학의 본질은 인간 탐구이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언어를 통해 형상화하는 것이 문학이다. 독자는 문학작품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깨달으며, 삶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한다. 또한 작품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극복하고, 재미와 감동과 인간 사회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삶의 용기와 희망을 얻기도 한다. 그리하여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바로 문학의 힘인 것이다.

초·중·고교 시절에 읽은 책 한 권이 부모나 교사의 백 마디 훈계보다 훨씬 영향력이 큰 경우를 주위에서 쉽사리 볼 수 있다. 나의 경우도 인생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책이 있는데 그것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단편소설이다. 거기서 나는 인생이란 자신의 노력과 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은 결국 자신 속에 내재된 사랑에 의해 삶의 의욕을 북돋우며 살아간다는 강한 메시지를 접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삶의 기본자세도 그 작품을 통해 터득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엔 지금 스마트폰 열풍이 거세게 밀어닥치고 있다. 작은 화면을 통해 세상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원하는 정보를 언제 어디서건 얻을 수 있는 초고속 정보통신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문학의 위기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느낌이다.

아무리 영양가 있는 좋은 음식이라도 이를 섭취하지 않으면 에너지화 할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도 이것을 읽지 않으면 정신적 영양소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인간은 언어로 창작된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생각하고, 사유하는 과정을 통해 정신적 가치를 고양高揚시킴으로써 총체적으로 문화발전에 기여하고 있음을 결코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시대정신과 사상과 생활이 녹아 있는 장편소설이나 상징과 비유와 의미가 깊이 함축된 시, 그리고 영혼을 울리는 잔잔한 수필 한 편이 우리에게 주는 힘은 실로 위대하다.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지구촌 곳곳의 소식을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인간의 소외감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때에 좀 더 느긋하게 현실을 바라보며 미래를 그려보는 삶의 여유를 즐긴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와 같은 문학의 역할은 자신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보다 인간다운 삶, 보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과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연전에 조선일보와 문인협회에서 ‘책 함께 읽자’라는 운동을 전개하여 수많은 작가와 독자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하지만 지속적인 운동이 되지 못하고 1회성으로 끝난 감이 있어 아쉽기 그지없다. 나도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 우리나라 국민의 정서 순화와 선성善性 회복을 위해 한성대 총장을 역임한 고故 원형갑 선생과 함께 ‘국민수필쓰기 운동’을 벌인 일이 있다. 워낙 힘이 미치지 못했던 시절이라 성사는 되지 못했지만 그때의 꿈과 의욕은 지금까지 잔잔한 감동 속에 남아 있다.

우리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면 저 몰지각한 일탈학생들과 같은 행동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문학을 사랑하게 만드는 교육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성과 상상력을 길러주는 근간이 되기도 한다.

괴테는 “위대한 작품은 우리를 가르치지 않고 우리를 변화시킬 뿐이다.”라고 했다. 문학이 사랑받는 세상, 그것은 바로 심성정화를 통해 보다 아름다운 삶을 꿈꾸게 하는 마음 바탕이 될 것이다.

 

 

한국문학상(99년).

한국수필문학대상 수상(92년) 등 8회 수상.

수필집 《속아주는 멋》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