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로 돌아온 농설弄舌

 

                                                                              김진식

아침저녁으로 변하는 것이 세상인심이라고 하지만 지나치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근간에 어떤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무슨 동아리의 뒤풀이 장소에서 속설인 양 농弄을 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아나운서는 몽땅 줘야 한다.’는 말이 단초가 되었다. 이를 공론화하면 이 직분의 여성에게 수치심을 줄 수 있을 것이지만, 농의 속성상 놀리고 웃기면서 딱딱한 분위기를 풀어주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므로 일부러 외고불고 하지 않는 한 대수로 여기지 않고 흘려버리게 된다.

그러나 이를 노리는 그물에 잡혀 바람을 타게 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이 경우도 동아리 학생들의 항의로 커진 것이 아니라 언론에 보도됨으로써 커졌다. 바늘구멍이 쥐구멍이 되고 부지깽이가 도깨비방망이가 되었다고 할까.

이쯤 되면 의도와는 상관없이 인격살인의 제물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당사자는 사실관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이미 소속 정당으로부터 제명을 당했고, 법의 심판에까지 몰리게 되었다. 이를 일러 자업자득이라 한다면 그뿐이지만 진행과정이 너무 가파르고 메마르게 보인다.   

어떤 친목모임에서 이 문제가 화제로 등장한 일이 있었다. 유머를 잘하는 노고老姑의 발제로 시작되었다. 조금씩 차이나는 의견이 개진되었지만 결론은 세상인심이 너무 각박하고 메마르다는 것이다.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아니더라도 너그러움과 여유가 아쉽다는 것이다. 더욱이 무슨 동아리의 뒤풀이라면 인심의 소통과 순환이 자연스러워 편해야 하는데, 후유증이 덧나 안타깝다는 것이다.

예닐곱인 이 모임에서는 진한 농담이 오갔어도 말로만 ‘성희롱’이었지 소통에 윤활유가 되었을망정 장애가 되지 않았다. 아마 연치가 있고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 같다고 한바탕 웃음꽃을 피우며 시종 화기애애하였다.

그러나 세상인심의 흐름에 대해서는 염려를 넘어서서 개탄하고 있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샘물을 흐리게 하고, 악의로 한 것이 아니더라도 말을 삼가지 않으면 꼬투리가 잡혀 용수를 쓰게 된다는 말도 나왔다. 섹시화보로 화제가 된 아나운서도 거론되었고, 미스코리아 출신의 포르노 배우도 입에 오르내렸다. 세상사의 풍경이 그야말로 원색으로 비춰졌다.  이야기의 전후 사정이 같이 곁들여졌음은 물론이다.

세상을 꿰뚫고 있는 노고의 화제는 거침이 없었지만 세상 물정에 어두운 노부老父들에게는 지나가는 신기한 바람일 뿐이다. 변한 풍속에 토를 다는 것도 그렇고 삭이지 못하는 것도 그렇다. 자연산 미인이든 깎은 미인이든 사실이든 속설이든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것이 괴물로 커질 수 있다니 요지경이다.

이처럼 세상은 변해 있었다. 그러므로 세대의 마디가 층을 만들면 물정을 알아차리며 따라잡기도 버거운 일이다. 층마다 막혀 소통이 어려우면 웃어넘길 수밖에 없다. 이런 무기력한 체념이 한심하다는 것일까. 재담才談의 노고는 갑자기 김삿갓을 등장시킨다. 아웃사이더가 아니면 풍자와 해학도 재난을 피할 수가 없는 세상이라며, 왜소해진 머저리들의 소통을 위해서 삿갓만 한 걸출이 없을 성싶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박수를 치며 화답하면 외담猥談으로 질펀해진다. 이따금 연륜의 퇴행을 빌미로 노부들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지만 거부감보다는 웃음바다다.

다시 화제가 원점으로 돌아간다. 각박하고 비좁고 목마른 일상의 황량함과 마주한다. 뒤풀이의 농이 좀 지나쳤다고 하더라도 칼이 되어 돌아오는 것은 흉흉하다. 농담이 아니더라도 과장법은 역설일 때가 있다. ‘나 보기가 역겹다.’고 한들 곧이곧대로 들어야 하는가. 뒤풀이에서 나온 말이라면 일러 무엇하리. 화자話者의 직분이 격에 맞지 않은 것이 걸리지만 농설弄舌이 칼날로 돌아오는 세태는 아무래도 흉흉하다. 한 장면의 삽화를 보듯 웃음으로 씻어버렸으면 개운하련만.

 

 

도서출판 미리내 대표. 현대 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잊혀진 이름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