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모자

- 황남대총의 국보 191호 황금관

 

                                                                                유혜자

‘황금의 나라, 신라의 왕릉 황남대총皇南大塚특별전’(모형, 2010.10)이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왔다. 무덤 속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듯 흐린 조명이지만 밝은 빛이 유물을 손상시킬까 봐 촉수를 낮춘 것이리라. 그래도 좀 있으니 아득한 옛날의 찬란한 문물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도전하는 탐험가처럼 진열품 해설을 꼼꼼히 읽다가 어디서 부르는 소리가 느껴지는 듯하여 황금관 앞으로 달려갔다. 누구에게 묻지 않았어도 북분北墳의 안쪽에서 팔을 위로 벌려 맞을 기세인 ‘나뭇가지 모양 대관’앞에 서게 되었다.

황금관에 매달린 곱은 옥[曲玉]과 달개 등 정묘한 장식품들은 발을 구르지 않았어도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어서 보는 가슴도 두근거리게 한다. 화보에서 본 대로 ‘머리띠 형태의 관’은 전면에 세 개의 ‘맛 가지 모양(곧은 줄기 곱은 가지)’ 나무 세움 장식과 옆에 두 개의 ‘엇가지 모양(굽은 줄기 곧은 가지)’ 세움 장식으로 되어 있는데, 머리띠에 태환식 귀고리 모양 세 쌍이 달려 있고 양쪽에 수식이 길게 달려 있다. 어느새 다가온 해설사가 관이 무겁기에 수식도 무거운 것을 늘어뜨려서 관이 벗겨지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이 특별전은 1973년부터 1975년까지 발굴한 유물을 그동안 일부만 공개했던 것을 실물 크기의 모형 안에 많은 유물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회이다.

보고 있는 국보 191호는 신라 황금관 중 가장 화려한 신라금관의 ‘표준형’인 나무 모양 세움 장식으로 형상화한 김씨 왕실의 의전용 왕관이다. 화보에서 황금관을 봤을 때 나목 가지에 달린 달개 같은 장식이 매운바람 속에서 맺힌 봉긋한 망울 같아 언젠가 피어날 나무처럼 느꼈었다. 그런데 실제로 이 관은 김알지 신화의 계림鷄林을 형상화한 것으로 가지 끝에 생명력의 움이 씨눈 형태로 맺힌 생명나무라고 한다. 나뭇잎과 새순 외에 태아胎兒를 상징하는 푸른 곱은 옥이 주렁주렁 달려 있다. 서양에서 다산多産의 상징으로 많은 유방이 달린 여성을 만든 것과 같다면 무엄하다고 할까.

사람들은 삶의 흔적을 변치 않게 영원히 남기려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돌을 쌓아올리거나 돌에 새겨 작품을 만들었다. 이 황금관이 제왕의 것이라면 비싼 정금正金으로 나뭇가지를 만들어 시간을 이겨낸 흔적까지 속으로 품으면서 영원하고자 하는 초월적인 것을 나타냈으리라. 기독교에서는 하나님 전의 법궤와 촛대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상징하는 정금으로 만들었다.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금관이야말로 두툼한 금으로 태환식 귀고리 장식과  긴 수식으로 넉넉함을 보여 보는 이도 은총받은 기분이다.  

누가 흔들지 않아도 장식으로 달린 곱은 옥과 달개가 흔들리는 그만의 버릇, 반짝이며 흔들리는 것이 지엄한 왕관이라기보다 보는 이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일 것 같다. 추상 같은 명령으로 산천을 떨게도 하고, 때로는 단비 같은 속삭임으로 대지를 풍요롭게 할 금관 앞에서는 주제넘은 욕심 대신 겸허해져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상상만 할 수 없는 의문이 인다. 이 황금관은  남분과 북분으로 붙어 있는 쌍무덤 중 북분에서 나온 것으로 이전에 발굴된 서봉총, 금관총, 금령총, 천마총에서 나온 금관들보다도 훨씬 화려하나 주인공을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시신은 큰 칼을 지니지 않았고 은제 허리띠에는 확실히 부인대夫人帶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에 이 금관은 여성의 것이다. 부부의 무덤인 쌍무덤 중 남쪽이 남편무덤인데 그의 관은 순금이 아니라 금동관이다. 그렇다면 남편의 신분은 무엇이냐는 의문이 생긴다.

학계에서는 남분의 주인을 신라의 왕인 마립간 중에서 한 명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남분이 만들어진 시기는 신라사에서 임금을 ‘마립간麻立干’이라고 한 5세기 초부터 5세기 중반 사이로, 이 시기는 고구려가 영토를 넓히기 위해 노력하던 때였다. 남분의 주인은 외침에 대비할 힘을 기르기 위해 편안히 잠들지도 못했을 것이다. 남분의 금동관을 보며 왜 여성의 무덤인 북분에 찬란한 황금관이 있었는지 더욱 궁금해진다. 혹자는 황금관의 주인은 왕이 아닌 왕의 아내로 종교의식에서 제사장 역할을 했으리라 주장한다. 신의 뜻을 받들어 모시는 제사장이라면 실권은 적더라도 형식적으로는 왕보다 귀한 자리여서 더 화려한 금관을 쓸 수 있다는 해석이다. 그러나 이것도 추측일 뿐, 혹시 선왕이 죽은 뒤 실권을 장악한 부인이 더 큰 권력을 휘두르며 남편보다 더 화려한 관을 만들게 하여 중요행사 때마다 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런 정사에도 없는 상상을 해본다.

무덤이 열렸을 때 천오백 년의 깊은 잠에서 왕과 왕비가 깨어났다고들 수선을 떨었다. 좋은 의미로 해석하면 아득한 세월을 뚫고 눈부시게 드러난 황금관은 많은 손과 눈으로 자비를 베푼다는 천수천안관세음千手千眼觀世音처럼 백성들을 일일이 살핀 통수권자의 노고와 선정에 대한 당연한 영광이며 보상이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입구 쪽에서 왁자지껄 학생들이 몰려온다. 학생들의 기세가 황금관 앞에 있는 나를 밀쳐낼 것 같아 조금 물러서니 “왕관이 뭐냐” “왕이 쓰던 모자 아냐?”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스쳐 지나간다.

모자가 필수품이던 예전엔 남자는 좋은 신분을 나타내는 모자를 얻으려고  노력했다. 신분과 체모, 권위를 지키던 모자, 황금관도 그런 모자의 하나였음에 틀림없다. 학생들이나 어른들도 모자를 썼었는데 간편화를 추구하는 현대생활에서 사라진 지 오래, 모자와 함께 품격과 정서의 숲도 잃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며 박물관을 나왔다.  

넓고 큰 대지에 뿌리를 둔 나무, 움이 트는 희망적인 것을 표현한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 상징적인 황금관, 소모하면 소모할수록 솟아나는 에너지를 생기게 하는 모자를 쓰고 싶은 소망이다.

 

 

한국문학상 수상(92년).펜 문학상 수상(2002년).

전 MBC라디오 FM부장.

수필집 《세월의 옆모습》, 음악에세이 《차 한 잔의 음악 읽기》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