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琴과 슬瑟

 

                                                                           정희승

부부가 내내 화락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일러 흔히 ‘금실이 좋다.’고 말한다. 관습적으로 무심코 쓰는 말이지만, 그 의미를 곰곰 음미해보면 깊은 뜻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알다시피 금실은 금슬琴瑟에서 나온 말이다. 사전을 찾아보면 금실의 원말이 금슬이라고 풀이되어 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나는 전통 악기에 관심을 갖기 전까지는 금과 슬이 거문고와 비파를 지칭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금과 슬은 어울려 좋은 화음을 이루는 서로 닮은 악기로, 그들과는 전혀 무관한 별개의 악기였다. 그제야 금실이란 말이 부부의 정을 표현하는 데 얼마나 적절한 비유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부부는 악기로 만난다. 아니, 모든 사람은 다 고유한 음색을 지닌 악기이다. 그래서 어울림에는 늘 화음이 중요하다.

나는 이런 확신을 꽤 오래전에 악기장인 최태진 선생에게서 얻었다. 그 분이 가야금을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준 적이 있는데,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악기가 탄생하는 과정이,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인격체로 거듭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선생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렇다.   

 

“금琴을 만들 때 쓰이는 오동나무는 예로부터 평범하게 자란 것보다 신고간난을 겪은 100년 이상 된 석상오동石上梧桐을 최고로 쳤지. 그런 나무는 내부에 음을 탁하게 하는 진이 적거든. 두드려보면 맑고 깊은 소리가 나. 말은 그래도 그렇다고 무조건 다 좋은 것은 아니야. 우선 그런 나무는 구하기가 대단히 어려워. 게다가 대체로 줄기가 구부러지고 뒤틀려 있어 음을 바로잡기도 까다롭지. 그래서 나는 이삼십 년 정도 자란 젊은 나무를 선호하는 편이야. 결이 곧아 예측 가능한 안정된 소리를 내니까.

악기장에게는 나무 깊은 곳에서 잠자는 율려律呂를 어떻게 온전히 깨우느냐, 그게 중요한 과제야. 악기는 외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성聲이 고와야 하거든.

우선 나무에 진을 충분히 삭혀 빼낼 필요가 있어. 그래서 나무가 트지 않게 유의하면서 진이 빠지도록 오랜 기간 말리지. 나무를 다듬을 때 마무리 작업으로 표면을 인두로 지지는데 그걸 낙동이라고 해. 단순히 외관을 아름답게 하려고 그러는 것 같지만, 그 외에도 내부의 진을 겉으로 올려 태우려는 목적도 있지. 사람도 마음에 낀 안개를 걷어내야 본디 맑은 성정이 드러나는 법이거든.

각 구성품의 치수를 정확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해. 초보자가 이 기본기를 익히는 데만 4년 넘게 걸려. 특히 공명통 상판을 다듬는 작업은 예민한 감각과 오랜 경험을 필요로 하지. 그것은 자득해야지 전수할 수는 없어. 자란 환경이나 수명에 따라 오동나무의 강도가 다 다르므로, 경험이나 직감에 의존해서 깎을 수밖에 없지. 왜 저 《장자》를 보면 바퀴기술자 윤편輪扁도 같은 말을 하잖아. 진짜 기술은 손으로 얻어지고 마음으로만 감응할 뿐 입으로는 전할 수 없다고. 같은 이치야. 악기 소리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이 작업은 사람으로 치면 마음이나 심장을 다스리는 것만큼이나 미묘하고 까다로워. 아무튼 명기는 노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것 같아. 가끔 각 구성품의 치수도 정확하고 제작과정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데, 막상 안족雁足에 줄을 걸어보면 소리가 옹졸하게 나는 게 있어. 나무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아무리 훌륭한 장인이라도 서두르면 절대 명기를 만들 수 없어. 에둘러 가더라도 가능한 전통을 존중하면서 야물고 옹골차게 짜야해. 그래야 세월이 흘러도 음이 뜨지 않고 바르게 자리를 잡거든. 나는 5년 정도 지난 후에 가장 좋은 음을 내도록 악기를 만들어.

훌륭한 장인은 누가 연주할 것인지도 고려하지. 힘이 좋은 연주자에게 안길 거라면 현을 팽팽하게 켕겨서 매어주어야 해.

이렇게 공들여 만든 악기라야 비로소 떳떳하게 세상에 내놓을 수 있지.”

 

그래, 얼마나 사람의 성장과정과 유사한가. 부모라면 누구라도 자식을 이렇게 반듯하게 키워 세상에 내보내고 싶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악기와 악기가 만나는 결혼은 참으로 신성한 의식이란 생각이 든다.

금이나 슬을 만드는 과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최근에 나는 전통악기에 대해 공부하다가 뜻밖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부絲部 악기 중 거문고, 가야금, 비파, 해금, 아쟁을 제외하고는  격동의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모두 연주법이 실전되어 버렸단다. 금슬도 그런 악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문묘제례악에 여전히 금슬이 편성되어 있지만 더는 연주되지 않는단다.

우린 진정 금슬의 연주법을 상실한 시대에 살아야 하는가? 아, 얼마나 슬픈 일인가. 뉴스에서 연예인이나 유명인사의 이혼 소식, 각종 성범죄 소식 등을 접할 때마다 이 연주법 실전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아 괜히 입 안이 씁쓸해진다.

 

 

한국수필로 등단.

원종린문학상, 한국수필 제1회 올해의 작가상, 제1회 김만중문학상(소설) 수상.      작품집 《별자리못 전설》, 《꿈꾸는 사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