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공원 그 사람

 

                                                                             은옥진

내가 ‘은평 평화공원’을 찾은 것은 지난해 봄이었다.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은평구 녹번동에 공원을 개장한다는 신문기사를 읽은 뒤였다.

공원을 들어서는 입구에는 벚꽃, 이팝, 느티나무들이 줄지어 섰고, 우리 고유 수종인 층층, 팥매기, 복자기와 벌개미취와 금불초 등, 여러 종류의 나무와 꽃들이 어깨를 겯고 있었다.   

주민을 위한 쉼터이기는 하지만, 한편에는 장교복을 입은 군인의 전신대 동상 한 기가 서 있었다. 기단에는 월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1922~1950)라는 이름과 생몰년生沒年이 적혀 있었다. 한국인도 아닌 외국인 청년이 어찌해서 한국의 이곳에 우뚝 서 있는지 궁금했다. 평화공원이라는 명칭과 깊은 연관이 있을 것만 같아 그의 행적을 찾아 나섰다.

그는 1922년 평양에서 미국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이름은  서위렴徐偉廉. 미국 이름인 월리엄 얼 쇼(William E. Shaw 1890~1967) 박사는 평양 광성 고등보통학교 교사였다. 아들 쇼는 평양에서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하버드대 철학과 박사과정을 공부하던 중 6·25 전쟁이 나자 해군으로 입대하여 한국 파병을 자원하였다. 한국말이 유창하고 한국 지리에 밝은 그였는지라 인천상륙작전 때 맥아더 장군과 함께 정보장교로 한미 해병대간의 전투협조 업무를 맡아서 큰 공을 세웠다.

그는 다시 해병대에 자원하여 9월 22일 서울탈환작전에 참여하였다. 수도권 지리를 잘 아는지라 정찰부대를 이끌고 적 후방 정찰을 하기 위해 경기도 녹번리에 들어섰다가 공교롭게도 잠복해 있던 인민군과의 교전 끝에 전사했다. 구조대가 도착했을 무렵엔 북한군의 기관총알이 온몸을 뚫어 성한 곳이 없었다. 향년 스물여덟으로 서울 수복 엿새 전이었다.

쇼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세계 2차 대전 때 해군 장교로도 복무했었다. 박사과정 이전에는 한국 해군사관학교에서 생도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구태여 두 번씩이나 군복을 입은 이유가 나변에 있었을까.  

군인이라고 하면 강하다는 느낌만으로 얼비치기기 십상이다. 하지만 병사이기 이전에 20대 안팎의 순정한 젊은이로서 공포와 두려움으로 떨고 있을 가족의 안위에 대하여 어찌 도외시할 수가 있었을까. 그보다 20년을 넘게 자랐던 한국을 향한 그리움과 도타운 정을 차마 떨치지 못해 학업조차 마다하고 기어이 찾아오고 말았을 수도 있다.  

“한국인은 내 형제들인데, 나의 조국에서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학업을 계속할 수 있겠느냐? 나는 한국이 자유와 평화를 이루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기독교인으로 살아갈 수도 없다.”라고 평소에 함께 복무했던  한국인 해군 친구에게 말했다지 않던가.

외아들을 잃은 아버지 서위렴 선교사는 군목軍牧을 자원했다. 그때까지 한국군에는 없었던 군목제도를 도입했던 것이다. 그런 연후에 젊은 병사들을 마치 당신의 아들 쇼인 양으로 아끼며 사랑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3대를 이어가며 한국을 사랑했던 가족들. 40여 년간 선교사로 봉사했던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그의 아내와 아들은 대학교수로, 손녀와  손자며느리까지도 한국에서 봉사를 했다.

은평구에서는 2008년부터 쇼 대위를 기리는 동상건립을 추진해왔고 제막식 때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그의 가족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그의 기념비는 쇼 대위를 아는 지인들이 모은 성금으로 전사 6주기인 1956년 그가 전사한 녹번리에 세워졌다. 도시계획으로 응암동 어린이 공원으로 옮겨졌다가 이참에 은평 공원으로 이전 설치된 것이다.

어느덧 60년이 흘렀다. 그때의 일을 우리들은 모두 다 잊고 지냈다. 누군가에게는 잊히기도 한 전쟁이었겠지만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살아서 꼭 전해야 할 생생한 삶 그 자체일 것이다. 우리 땅에서 전사한 미군은 2만 5천여 명에 이른다. 살아서 집으로 돌아간 병사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들 대부분도 이미 세상을 뜨고 말았을 것이다.

이역만리에서 숨진 병사 중 한 사람인 쇼를 누가 있어 아직도 기억해 줄 것인가. 사랑의 손길이 모여 은평 평화공원 동상으로 다시 소생한 스물여덟 청년 쇼 대위의 헌신은 한국인의 아들로서 우리들 가슴에 길이 새겨지리라.  동상에는 비록 쇼 대위의 이름뿐이지만,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이국 병사들의 죽음도 함께 기억하게 될 터이다.

“공부는 조국에 평화가 온 뒤 다시 하겠노라.”고 했던 월리엄 해밀턴 쇼 대위. 웃음 띤 생전의 모습인 그의 동상을 다시 한 번 어루만져 본다. 남의 나라 전쟁터에서 자식을 잃고 만 어머니의 심정을 어찌 다 헤아릴까마는, 나도 자식들을 금이야 옥이야 기르는 어미인 게다. 어찌 목이 메는 뜨거움을 모르겠는가. 그들의 헌신으로 누리고 있는 나의 자유가 못내 송구할 밖에다.

동상에 쓰여 있는 성구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한복음15장13절)를 되뇌며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마음으로 다져진 ‘평화공원’을 뒤돌아 뒤돌아보았다.

 

 

《에세이문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회원, 그레이스 수필문학회 회장.

저서  《사연》, 《매화가지에 꽃댕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