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줄과 여자

 

                                                                          김명규

70년대만 해도 해산한 집 대문에는 금줄을 쳤다. 아들을 낳으면 숯과 고추, 그리고 백지를 잘라 새끼줄에 끼어 걸었고 딸은 거기에서 고추만 뺐다. 붉은 고추와 숯이 어우러진 금줄은 색깔이 고와 만국기가 펄럭이는 것 같았지만 고추가 없는 딸의 금줄은 심심하고 쓸쓸해 보였다. 동네 사람들이 그 집 대문 앞을 지날 적이면 출산 소식을 알고 방문을 삼갔다. 아들인지 딸인지 궁금한 것도 금줄을 보면서 알아차렸다.

우리 뒷집에 살던 은영이 엄마가 생각난다. 앞뒷집 담이래야 싸리나무 울타리로 경계를 긋고 살던 때라 무생채만 버무려도 울 너머로 한 보시기씩 나눠먹고 살았다. 은영 엄마는 딸만 셋을 줄줄이 낳았는데 아들 낳기를 기원하면서 넷째를 임신하였다. 산월이 가까워 올수록 그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셋째 딸을 낳았을 적에도 아기는 천덕꾸러기로 방구석에 몰아붙여 놓고 산후 수발을 들러 왔던 시어머니는 사흘도 안 되어 가버렸다. 아들만 낳을 수 있다면 돌아서서 또 하나를 낳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한다. 아이 하나를 출산하려면 산모는 죽을 둥 살 둥 지독한 산고를 겪는데 말이다. 이제 또 딸을 낳으면 은영이네 집 어른들은 돌아도 안 볼 거라며 그는 나에게 목멘 소리를 하였다. 아들을 둔 나를 그토록 부러워하던 은영 엄마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나도 진심으로 빌었다.

 

은영이 아빠는 트럭을 몰고 전국으로 다니며 쌀장사를 했었다. 그래서 남편이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다. 어느 날 잠결에 아스라이 갓난아이 우는 소리가 새벽을 흔들었다. 뒷집에서 몸을 푼 것이 분명한데 내 가슴이 콩 튀듯 떨려왔다. 은영 아빠도 어젯밤에 오지 않는다고 하였었는데 어떻게 혼자 해산을 한 것이었을까. 궁금증에 견딜 수가 없어 일어났다.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오니 싸늘한 바람과 창백한 새벽 달빛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다. 사흘 전 정월 대보름이 지나고 그때 남은 찰밥과 나물들이 아깝다며 낮에도 볼이 미어지게 먹던 그였다. 산기는 도둑처럼 드는 것이라 밤사이에 올 줄은 몰랐으리라. 나는 살금살금 울타리 가까이로 다가가 방안의 동정을 살폈다. 새벽 네 시가 조금 지났으니 아직도 깊은 겨울밤이었다.

은영 엄마는 딸만 낳은 자신을 죄인처럼 학대하였다. 남편이 종갓집의 장손이며 외아들이니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야만 된다는 책임감에 짓눌렸을 것이며 시부모의 서슬 퍼런 채근이 그의 심중을 옥죄었을 것이다. 그러기에 혼자서 탯줄을 끊고 나와 아이들의 아침밥을 짓던 지독한 네 딸의 어미, 그 눈언저리의 붉은 부기는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친정에도 시댁에도 기별하지 않고 한참을 그는 넷째의 출산 소식조차 감췄다.

인종에 따라 세상 곳곳에는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갖가지 전통과 풍습이 있을 것이다. 며칠 전 오후였다. 종일 집에 있다 보니 시간이 무료해 TV를 켰다. 씨네 에프라는 여성 영화 채널이었다. 화면이 켜지는 순간 광야에서 한 흑인 여자가 아이를 바로 눕히고 무슨 짓인가를 하고 있는데 아이의 울음소리가 비명처럼 자지러들었다. 엄마로 보이는 흑인 여자의 손에 탱자나무처럼 날카로운 가시로 아이에게 어떤 짓을 한 것 같았다. 화면 구석에 실화라고 씌어 있고, 나는 아직 상황판단이 되지 않은 채였다. 그런데 뻗치고 앉은 엄마의 다리 사이에서 몸부림치는 아이 울음소리.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무섭고 끔찍한 일을 한 것이 분명했지만 여자아이의 아랫도리에 무슨 짓을 했는지 아직도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세계적인 톱모델 아무개 양의 실화라고 화면 구석에 간간이 비춰주고 있었다.

장면이 바뀌고 객석을 가득 메운 어느 강연장에서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 인사를 한다. "그럼 지금부터 톱 모델인 아무개 양의 강연을 듣겠습니다." 하고 소개를 하자 가냘프고 깡마른 흑인 모델 아가씨가 등장하였다. 마이크 앞에 선 모델은 자신은 아프리카 소말리아에서 태어났다고 하였다. 그곳에선 여자도 할례를 한다고 하였다. 겉으로 드러난 생식기를 도려내고 아주 작게 구멍 하나만 낸 뒤 실로 꿰맨다는 거였다. 엄마 손에 할례를 당한 자신의 언니는 아이를 낳다가 죽었고, 여동생은 염증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고 한다. 그렇게 할례를 하지 않은 여자들은 불결하다 하여 결혼하면 창녀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봉합한 실은 결혼 첫날 밤 남편이 뜯어낸단다. 소말리아에서 태어난 여자들은 일생을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해마다 수만 명의 어린 소녀들이 신음하고 있다고 한다. 모델의 연설을 듣던 관중들은 모두 침통해 보였다.

이 일이 다른 나라에 알려지게 되고, 유엔 사무총장이 그 일로 급파되었었지만 아직도 소말리아의 여성들은 그 아픔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모델의 연설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났다. 나는 그 끔찍한 사실에 내 몸이 화상을 입은 듯 아려왔다. 미개한 곳일수록 샤머니즘의 빛깔이 강하고 풍습 또한 그러한가 보다. 어서 밝은 문명의 빛이 그들에게 구원처럼 비추이기를 빌어본다. 우리가 남존여비며 남아선호 사상에서 이제 허물을 벗은 것처럼.

 

 

전북 정읍 출생.  2001년 《에세이문학》 추천 완료.

수필집 《당신의 이름은》,  《귀부인 연습》.

2009년 현대수필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