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소리, 소리

 

                                                                             김선화

집이 용인이라는 김갓난 할머니가 중얼거린다.

“동네 앞에서 차가 글쎄 내 몸 위로 지나갔어. 중환자실에서 한 달 만에 깨어났어. 어린 5남매, 과부인 내가 나무 해다 팔아서 다 키웠어.”

40대에 남편을 잃었다는 그의 의식은 처음 홀로 되던 시절에 머물고 있다. 갑작스런 충격으로 사고思顧할 기능을 잃어, 85세의 나이에도 젊은 날의 그 강가를 서성이고 있다. 자기 몸 하나 운신이 어려운 지금보다도 이별의 아픔을 추스르던 그 시기에 갇혀, 흐릿하면서도 또렷한 옛 흔적들을 더듬는다.  

옆에 붙어 있는 간병인이 노인의 몸을 이쪽저쪽으로 바꿔 뉘이며 뒤를 살펴준다. 침대에 대형 기저귀를 고정시키느라 진땀이 난다. 그러는 와중에도 갓난 할머니의 말은 아기의 옹알이처럼 이어진다.

“내가 5남매 다 가르쳤어. 나무 져다 팔아서, 별의별 장사 다 해서….”

더 듣지 않아도 얼마나 어려운 시대를 딛고 온 애상의 가락인지 다 들리고 다 보인다. 안 해본 일이 없었을 것이다. 시모님을 돌보던 나는 어느 틈에 갓난 할머니 곁에 앉아 있고, 초점을 잃은 그분의 눈빛은 멀거니 천장에 닿아 있다. 어쩌다 나랑 눈이 마주치긴 하지만 무표정의 얼굴엔 변함이 없다. 그러다가도 한바탕씩 호탕하게 웃어젖힌다. 그럴 때는 꼭 쉽게 범접 못할 여장부의 기상이 풍긴다.  

“우리 큰며느리는 효부상을 받았어. 내 자식들은 내가 다 부자로 키웠어. 다들 내게 잘허지.”

노인에겐 1주일에 한 번씩 찾아오는 머리 희끗한 큰며느리가 유일한 방문객이다. 간식꾸러미를 들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들어선 며느리는 상의 무게에 눌리기라도 한 듯 어깨가 조부장하다.

“참 장하세요. 그렇게 자식들을 키우셨대요.”

잠시 들여다보고 병실을 나서는 며느리의 뒷모습에도 생의 쓸쓸한 그림자가 따라붙는다. 그 시대, 우리의 어머니들이 살아온 인생 저변엔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큰 대안거리였다.

엄마는 개 울음소리를 무척이나 못마땅해 했다. 식솔 건사할 능력도 달릴 때에 도둑 지키라는 개가 본분을 잃고 울기 시작하면 금세 언짢은 기색이 되었다.

녀석은 그날 아침에도 감나무뿌리 보듬은 흙을 한 세숫대야가량이나 파 올렸다.

“아응 아앙 가잉잉 끄으으응 응응….”     

“저놈의 개가 또 죽을 때가 된 게로구먼.”    

아침상을 내오던 엄마가 매서운 한 마디를 툭 뱉고는 마당 귀퉁이를 향해 눈길을 쏘았다. 낮은 음성이지만 그 어조엔 단단한 용단이 실려 있었다. 더 이상은 한울타리 안에 둘 수 없다는 암시이기도 했다.  

남의 집 개가 울어도 심란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저 집 주인, 참 무던하기도 하지. 울안에 기르는 짐승이 너무 영악해져서 탈이야. 옛날에 글쎄, 망령난 개가 어린아이까지 해코지 했단다.”  

여느 때는 까까머리 동생들이 개구리를 잡아와도 야단이고 알 품는 암꿩을 붙잡아 와 씽긋 웃어도 부지깽이로 으름장을 놓으며 호통을 쳤는데, 개에게만은 그다지 관대하지 못했다.

“아 글쎄, 만수네 엄마가 아플 때 굿판까지 벌여도 소용 없었잖어. 결국 그집 아이들은 어미 없는 자식들이 되었고, 게다가 타관으로 이사를 갔고….”

엄마는 개 우는 집 모델을 우리와 담장 너머에 살던 옆집으로 세웠다. 안주인이 일찍 세상을 뜨고, 자녀들이 각처로 흩어진 책임을 다 개란 짐승에게 뒤집어씌웠다.

그러한 걱정을 들을 때면 내 머릿속엔 지레 검은 비가 내렸다. 어떻게 해서든 엄마를 지켜야한다는 메아리가, 알곡 널어놓은 뜰에 소낙비 몰려오는 것보다 더 급하게 후두두둑 후두두둑 소리를 내며 나를 흔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 한 초등학교에서 사육하는 닭이 제 본연의 소리‘꼬끼오’ 대신에‘선생니임!’한다 하여 웃은 일이 있다. 선생님을 부르는 아이들 소리가 재재거리는 교정이니 그럴 듯한 비유다. 재차 들어보아도 영락없는‘선생님’이다. 그렇다면 예전의 우리 집 개는 아기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울안이어서,‘멍멍’짖지 않고‘아앙아앙’울며 아기 흉내를 냈을까.

그때 울안에서 칭얼대던 개소리는 아마도 허접한 살림을 꾸려가던 엄마에게 있어, 줄줄이 달린 자식들의 배고파 보채는 소리로 들렸던 것은 아닌지. 장마철 목놓아대는 청개구리 소리를 어버이 무덤 떠내려갈까 걱정하는 우리 민족의 공통적 정한情恨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의 귀를 울리는 소리에는 더러 풍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정이 얹혀져, 흥겨운 노래가 되기도 하고 한숨어린 눈물이 되기도 한다. 특히 온 나라가 경제난을 겪고 있는 요즘, 식속들이 밥 먹기 어렵다는 시름소리가 들려올 때면 근심어린 빗소리로 내 안이 얼룩진다. 심각하게 와 닿는 청년실업난 실태가 요즘 21세기를 건너며 들어야 하는 우리들의 또 다른 슬픈 가락인 것을.  

그나저나 나이 드는 줄도 모른 채 50고개로 훌쩍 올라선 나는 이즈음에서 어떠한 소리를 내야 인생의 멋진 하모니가 될까. 아니다, 아니다. 어쭙잖은 소리를 내려하기보다는 나 밖의 소리에 귀를 내맡겨, 미세한 숨결까지 들어내는 관을 먼저 열어두어야 하리라.   

 

 

《月刊文學》 등단. 수필집《포옹》 외 5권, 시집《꽃불》 외 1권.

청소년장편소설 《솔수펑이 사람들》 등. 제27회 한국수필문학상 수상.

《選수필》,  《한국수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