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가슴에 품고 사는 고향

 

                                                                               임병식

한곳에 붙박여 자라는 해바라기는 태양을 그리워하면서도 한 발짝 움직일 수가 없어 고개를 돌려서 바라본다. 그렇지만 두 발이 성하고 차까지 소유한 나는 고향이 그리우면 언제라도 달려갈 수 있지만, 그것도 부족하여 늘 컴퓨터 화면에 고향 사진을 올려놓고 바라보면서 그리워한다.

이미 고향을 떠나와  타향에서 터 잡고 산 지도 사십여 년이 됐건만, 무슨 연유로 그렇게 그리움을 안고 사는지 모를 일이다. 무시로 밀려오는 향수를 어쩌지를 못하는 것이다.

내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방식은 조금은 남다르다. 지그시 눈을 감고서 고향의 이곳 저곳을 떠올려 보는데, 내가 나를 볼 수 없어 모르긴 하지만 아마도 옆 사람이 보면 무슨 도를 닦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고향을 그리는 방법은 딱히 정해진 건 없다. 고향집을 중심으로 차차로 마을 고샅길을 둘러보거나, 아니면 마을을 감싼 산과 들녘을 산책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한 시간쯤은  쉬이 지나가곤 한다.

그런 가운데서도 다분히 의도적이면서 본격적으로 고향을 떠올리는 때는 잠이 들기 직전이다. 몸을 부리고 나서 금방  잠이 들면 좋은데 그렇지를 못하다 보니 매번 잠을 청하는 수단으로 고향을 떠올리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를 눈꺼풀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질 때까지 계속한다. 골목을 기웃대기도 하고 읍내로 빤히 나있는 한길을 걷는 것이다. 그러면 눈이 지치고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스르르 잠이 들게 된다.

목적지를 특별히 고향으로 택한 것은 순전히 향수병  탓이다. 그만큼 고향 사랑이 유별나다고나 할까. 그렇지 않는 다음에야 젊어서 떠나온 고향이 그렇게 그리워질 턱이 없지 않는가. 한데, 이런 버릇이 근자에는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렇듯  내가 몽매간에 잊지 못하는 고향엔 어릴 적에 깊이 아로새겨놓은 추억 말고도 그 후에 남겨놓은 족적이 몇 개 있다. 바로 내가 글을 써서 세운 어느 유지분의 비석碑石과 한국차 박물관에 기증한 수석壽石이 그것이다.

먼저 비문은 가까이 지낸  선배의 부탁으로 쓰게 되었다. 선배의 숙부께서는 고향에서 꽤 존경을 받았던 분인데 문중에서 기적비紀積碑를 세우게 되자 그 비문 의뢰를 내게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과분한 일이라 사양을 했다. 그런데도 재삼 간청을 하는 바람에 물리치지를 못했다.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난 후, 얼마 아니 되어 선배가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되어 다시금 또 하나의 비문을  쓰게 됐었다. 여기에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선배는 눈을 감으면서 나중에라도 비를 세우게 되면 반드시 나를 찾아 상의를 하라고  유언을 남겼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연은 얼마 전에는 고향에다 소장한 수석을 기증하게 된 것이다. 언젠가 그 수석을 팔지 않고  고향에 기증하겠노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입소문을 타서 고향의 군청에서 기증의사를 타진해 온 것이다.

갯수는 네 점이지만 형태는 다양한 것들이다. 두 개는 음석과 양석이며 다른 것은 관통석과 애무석이다. 이 돌들은 뛰어난 기품은 없을 지라도  어디서 쉽게 구하거나 구경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래선지 둘러보는 사람마다 신기하며 멋있다는 말을 하여  기증을 한 보람을 느낀다.

그런 일들이 있어선지 요즘 나는 자주 고향 생각에 잠긴다. 엊그제는 자주 드나드는 어느 사이트에서 황금물결 넘실대는 고향 풍경을 가져와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이것을 늘 바라본다. 낯익은 풍경이 가슴으로 안겨와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것이다.

나는 고향산천이라면 어디 하나도 빠진 곳 없이 기억하고 있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러서 지형이 바뀐 곳도 많지만, 내 기억 저편의 영상 속에는 그대로 남아서 실개천 하나 바윗돌 하나까지도 온전히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무슨 빼어난 기억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수없이 반복하는 회상력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무시로 찾아오는 불면증을 물리치고자 반복한 것이 그리 만든 것이다. 그런 만큼 앞으로도 나의 이런  고향 탐방은 그치지 않고 줄기차게 이어질 것이다. 나고 자랐다는  태생지의 의미 말고도 비록 자그마한 흔적이나마 남겨놓고 있지 않는가.

 

 

《한국수필》로 등단 (1989).

한국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방패연》, 《아름다운 인연》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