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

 

                                                                          박갑순

“엄마, 냉장고 문짝 한 번 살펴보세요.”

“네 차 좌석 뒷주머니 잘 살펴봐라.”

친정에 갔다 온 날 어머니와 주고받는 통화 내용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딸아이가,

“엄마와 외할머니는 꼭 숨바꼭질하는 것 같아.”

하고는 호호 웃는다.

지난 어버이 날, 어머니를 모시고 개통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만금방조제에 갔다.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연록의 나무들과 많이 닮았다. 어머니 눈에 비친 내 모습도 그러하리라.

어머니의 삶만큼이나 우여곡절 많았던 새만금 공사가 마무리된 현장. 둑의 길이만큼이나 깊었을 어부들의 시름이 가슴에 전해 왔다. 아직은 바다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둑 오른편에서는 아랫도리를 물에 담그고 추레하게 서 있는 배들이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만선의 오색 깃발을 펄럭이며 파도를 가르던 그 어선들은 다 어디에 숨었는지….

몇 해 전, 오랜만에 차 내부를 청소할 때였다. 시트에 묻은 먼지와 바닥 깔판에 눌어붙은 흙을 털어내고 좌석 뒷주머니를 정리하다가 책들 사이에서 꼬깃꼬깃 접힌 지폐를 발견했다. 원인을 알아내지 못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웬 횡잰가 싶었다.

새만금 둑길을 달리다가 간이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멀리 수평선에서 파도를 몰고 오는 바람이 꽤 차가웠다. 딸아이가 어머니의 등을 얼싸안고 벤치에 앉더니 바람에 헤쳐진 어머니의 저고리 앞섶을 여며드린다. 빈약한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고 벤치에 앉아 계시는 어머니 옆얼굴이 핼쑥해 보였다. 저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가슴이 먹먹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 직장 생활을 시작한 해였다. 어머니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전갈을 받고 급히 귀가했다. 부고를 내야하네, 관을 맞추어야 하네, 급박한 분위기였다. 직장을 내박치고 어머니 병구완에 매달렸다. 그때 영영 이별할 뻔했던 어머니였다.

결혼한 뒤, 친정에 갈 때마다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힘겹게 사는 딸이지만 어머니를 뵐 때면 약소하나마 용돈을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지폐 몇 닢을 내밀면 한사코 거절하시는 통에 한바탕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그러나다 몇 해 전부터 어머니가 밖에 계실 때 몰래 숨겨놓을 곳을 찾기 시작했다. 어느 날엔 속옷 넣는 옷장에, 다른 날엔 냉장고에, 어떤 때는  약 가방 속에 살짝 숨겨놓고 왔다. 그랬더니 언제부터인가 집에 오면 외투 호주머니나 핸드백 뒷주머니에 아니면 자동차 좌석 뒷주머니에 돈이 들어 있곤 했다.

 

그날도 어머니는 자동차 뒷좌석에 앉아 또 일을 벌이고 있었다. 백미러를 보지 않아도 바스락거리는 소리만으로 어머니께서 무엇을 하시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짐짓 모른 척해야 했다. 모녀간의 숨바꼭질은 이제 예삿일이 되었다. 밤과 낮을 가리지도 철을 가리는 일도 없이 만나면 그냥 숨바꼭질이었다. 지금은 내가 술래였다. 어머니께서 숨고 싶은 곳에 숨으실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주어야 했다.

 

어릴 적에 숨바꼭질을 많이 했다. 작은 농촌 마을이라 봄부터 가을까지 달밤이면 또래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했다. 숨바꼭질은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에 꼭꼭 숨는 게 생명이었다. 그래야 밤이 이슥하도록 놀이를 할 수 있었다. 술래가 쉽게 찾으면 재미가 없어 맥이 빠져버렸다. 그러나 모녀간의 숨바꼭질에선 깊이 숨기는 건 금물이었다. 당장 들키지만 않으면 되었다. 술래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곳에서 더러는 옷깃을 살짝 내보여야 했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면 귀띔을 해주기도 했다.

새만금을 돌아 나오니 해 질 녘이었다. 부안을 향하다가 해변에 있는 음식점에 들렀다. 어머니가 딸아이의 부축을 받으며 음식점 이층 계단을 오르는 사이, 자동차 좌석 뒷주머니에 숨은 어머니의 마음을 찾아 들고 어머니가 들고 가는 약 가방을 눈여기며 뒤따랐다. 식당에 들어서자,

“할머니 모시고 화장실 갔다 와야지.”

딸아이에게 눈짓을 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어머니의 약 가방을 받아 들었다.

식탁 앞에 앉아 바지락 죽을 주문해 놓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둑에 가로막힌 바다에는 항로를 잃은 배들이 황혼에 젖어들고 있었다.

 

 

《수필과 비평》 신인상.

《소년문학》 편집장. ‘순진한 수필’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