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시대

 

                                                                         박장원

평소 어려워하던 분과 조심스레 길을 가고 있는데, 의외의 말씀을 하신다.

“박 선생은 몸매가 멋있어요.”

 

땀 빼는 운동은 안 하고, 잘 먹지만 살은 안 찐다. 유난히 긴 팔에다 뼈마디가 가늘어 반소매 입을 때면 마른 몸이 미안하다. 허리는 긴데다가, 가슴을 활짝 내밀고 다닌다. 부드럽지 못하다.

학창 시절, 여학생들은 나에게 애칭을 붙여 주었다.

‘늘씬한 몸매, 화끈한 얼굴.’

키 180, 몸무게 75.

부리부리한 눈매, 날카로운 표정. 길을 가다가 상대방과 눈길 마주치는 것을 피한다. 검문검색이 빈번하던 그 무렵, 경찰은 야수처럼 지나가는 나를 불러세워 신분증을 내보라 한다. 나중에는 순진하게 미리 준비한다.

 

프랑스 파리의 로댕 미술관.

따스한 봄이 보석처럼 빛난다.

입구 유리온실 전시장에 석고로 만든 여러 가지 손가락 모양이 반짝거린다. 잔디가 잘 가꿔진 화단 안 하얀 대리석 받침대에 올라앉은 생각하는 사람 뒤로 원추형 상록수 두 그루가 음유시인처럼 서 있다. 감미로운 로코코 건물 둥근 전시실 안으로 들어서자 푸른 정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격자창을 배경으로 서 있는 청동시대 뒤로 호숫가 청둥오리 한 쌍이 사이좋다.

 

그 청동시대가 서울에 왔다.

가슴을 저민 생동감 넘치는 청춘이 우뚝 섰다. 곱슬머리에 눈을 감고, 팽팽한 힘이 배어 있는 완곡한 처량이다. 오른손을 치켜 머리에 얹고 왼손은 심장을 향해 지긋이 움켜쥐었다. 푸르름을 향한 고뇌의 언어가 희망처럼 싱싱하다. 인간의 벗은 몸에서 영원한 호흡이 강하다.

바다 건너 예술의 전당으로 나들이 온 그에게 사람들이 열광한다.

세월이 한참 지났지만 오히려 젊어진 느낌이다.

 

충청도 공주의 어느 산사.

청량한 가을 햇살 아래, 대웅보전으로 올라가는 돌계단 양 옆에 타오르는 불꽃처럼 스러지는 물방울처럼 파초가 자라고 있다. 파초는 태양처럼 빛나다가 이슬처럼 사라진다고 말한다.  

인류 최초의 금속인 청동. 도가니에서 액체로 끓어 거푸집에서 고체로 식는다. 뜨거운 불처럼 살아내어 차가운 물기둥처럼 응고된 영원한 동상, 청동시대.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내 몸을 내려다보며, 그와 비슷하게 서 본다.

 

천둥소리가 곤히 잠자던 벌레를 깨우는 경칩이다.

태양처럼 빛나다가 물거품처럼 사라지더라도 신록을 향한 희망으로 서있어야 한다. 오래 가는 것은 없다. 그렇게 될 수도 없고 되고 싶지도 않다. 뜨거운 단련도 차가운 세련도 거치지 못하였다. 다만 잠시나마 청동시대처럼 내일을 맞고 싶다.

화사한 봄이 오고 있다.

 

 

 수필집 《양수리》, 평론집 《현대한국수필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