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의 고민

 

                                                                          윤삼만

동구 밖 느티나무에서 까치가 운다. 대청마루를 닦고 있던 할머니께선 ‘오늘 반가운 손님이 올 건가 보다.’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아침에 이 소리를 들으면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반갑고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불길한 예감에 침을 ‘퉤에 퉤.’ 뱉던 것이 옛일이 되어버렸다.

어릴 때에 나는 배냇니가 흔들려 실로 묶어 빼서 사랑채 지붕에 던진 적이 있었다. 예로부터 까치는 하느님과 사람을 연결하는 영물로 여겼기 때문에 이를 반납하고 건강한 이가 빨리 나도록 기원하는 뜻에서 이런 풍습이 생긴 것 같다. 제사를 모시고 나서 까치밥을 떠놓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다.

까치는 나뭇가지에 앉아 있거나 날아다니면서 사람의 사생활을 훔쳐본다. 거름을 지고 밭에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물레방앗간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처녀총각도 있다. 아파서 누워 있는 사람은 없는지 또 낯선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지 감시카메라처럼 낱낱이 살핀다. 사람들은 마을 수호신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다. 우리는 새까만 것들이 무엇을 하는지 무관심이지만 까치는 눈이 밝고 머리가 좋아서 사람들의 얼굴과 행동을 훤히 알아본다.  

경계심이 많은 까치는 낯선 사람을 보면 ‘깍깍’ 운다. 이러한 습성 때문에 옛날부터 ‘까치가 울면 손님이 온다.’는 말이 생긴 것 같다. 까치울음 소리는 반갑고 좋은 인상을 준다고 해서 희작喜鵲 또는 길조吉鳥라 했다.

까치는 우듬지에서 둥지를 튼다. 집을 지을 때, 나무와는 아무런 상의나 계약도 없이 독립수로 있는 느티나무나 감나무 등 높은 가지를 선택한다. 집을 짓는 데 망치도 없고 설계도 한 장 없이 못 하나 박지 않고 삭정이만 이용한다. 그래도 짓는 방식은 거의 같고 모양도 비슷하며 머릿속에 다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다.

까치는 먼 거리의 이동이 불편하여 사람들의 주변에서 무리지어 사는 텃새이다. 흰 앞치마를 질끈 두른 아줌마 같은 모습이 친근감을 더하고 호감을 주며 뭔가 불길한 징조를 보이는 까마귀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먹이는 주로 벌레나 낱알 곡식과 고구마 등을 먹으며 농사만 짓던 옛날엔 농작물을 해치는 벌레를 잡아먹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고 사랑을 받았다.

농경사회에서 산업화 사회로 바뀌면서 생활에 큰 변화가 생겼다.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노동력 부족으로 농약을 많이 쓰게 되고 노는 땅에도 제초제를 뿌린다. 먹을 것이 없어진 까치는 배가 고파서 과일에 입을 댄다. 수박이나 과일나무에 달린 것 중에서 햇볕을 많이 받아 잘 익은 것만 골라 쪼아 먹는다. 하나를 다 먹는 것이 아니고 돈이 될 만한 것만 골라 이것저것 쫀다. 맛좋은 것을 고르는 솜씨는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는 감을 수확하면서 나무 꼭대기에 까치밥을 한두 개 남겨놓았으나 요즘은 그런 온정을 베풀지 않는다.

전기가 들어오면서 들판에 전봇대가 섰다. 우듬지처럼 높아서 까치는 여기에 둥지를 튼다. 먼 곳까지 날아가는 것보다 가까워서 훨씬 좋지만 전기합선으로 인하여 자주 정전사고가 생긴다. 때문에 둥지를 모두 뜯어낸다. 날짐승은 비행기의 제트엔진에 빨려들게 되므로 포수들은 비행장 근처에는 얼씬도 못하게 총을 마구 쏘아댄다. 까치들은 나뭇가지에 앉아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못된 짓을 많이 하면서 무엇을 잘못했기에 괄시하느냐.’며 “깍깍”거린다.

까치는 농경사회에서 길조나 익조로 대접하던 것이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부터는 괄시를 받고 신분이 흔들리고 있다. 산업화 및 정보화 사회가 급진전되면서 공장이 늘어나고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가게 되고 핵가족이 생기며 부모들은 농사를 짓게 된다. 농경사회에선 생각지도 못했던 부모의 노후생활에 큰 변화가 생겼다. 부모들은 예전처럼 노후를 생각하지 않고 오직 자식만을 위해 등골이 휘는 학비를 마련하여 대학에 보냈다. 이제 부모들은 늙고 건강도 좋지 않으며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으나 이를 외면하는 자식들이 많다고 한다. 부모를 공경하는 효 문화가 뿌리 째 흔들리고 있으며 천대받는 부모들도 있다. 까마귀들이 반포지효反哺之孝를 실행하고 있으니 오히려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며 길조吉鳥로 대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까마귀들이 길조로 부상하고 있다. 이제까지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까치들은 불편과 고생을 감수하고 희작 또는 길조로 남느냐, 아니면 편안하고 수월한 방법으로 생활하며 해조害鳥나 흉조凶鳥로 전락하느냐를 두고 고민 중이다.

 

 

2000년 《계간수필》로 등단.

전 사천초등학교 교장. 경남서예대전 초대작가.

한시 동인지 《진양풍월집》, 수필집 《촛불시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