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미루나무가 있었다

 

                                                                              이경수

태풍이 물러난 듯 바람이 잦아들면서 빗발도 수그러진다. 사무실에 나가봐야 할 것 같다. 태풍 핑계대고 쉬려했지만 아무래도 천장이 걱정이다. 그동안 빗물이 조금씩 새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천장부터 살핀다. 젖어 있긴 해도 물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요즘 들어 부쩍 낯설어진 사무실. 언제 들어서도 아무도 없는 휑한 사무실을 잠시 서성인다. 비록 목숨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에게 다가가 눈길을 보낸다. 이들이 숨을 쉬고 기지개를 켜며 도란거리는 듯 훈기가 돌아 아늑해진다. 그때서야 책상으로 가 앉는다. 그래도 허전하다.

오늘처럼 이렇게 바람 불고 비 오는 날, 이 시각쯤이면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비 오는데 나왔네. 점심 꼭 챙겨 먹도록 해요. 제발.”

선생님은 점심을 챙겨 먹으라고 하면서 ‘제발’이란 말을 꼭 덧붙이셨다. 점심을 빵이나 과일로 대충 때우는 것을 아신 것 같았다.

날씨가 궂은 날 그러니까 오늘처럼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라든가 몹시 춥거나 눈이 오는 날이면 선생님은 으레 전화를 해서 “오늘 나왔네.” 하셨다. 짧은 한 마디지만 험한 날씨에 오가느라 고생될 텐데 하는 염려의 마음이 느껴져 되레 죄송하기도 했다. 그리고 말끝에 꼭 “고마워.”하셨다. 그러면 나도 “선생님 저도요.”했다. 통화는 끝났지만 “고마워.”하는 소리가 귓가에 남아 가슴에 명주바람을 일게 했다. 정말 누군가에게 고마운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아 나는 양손을 포개 가슴에 얹곤 했다.

요즘도 가끔 “고마워.” 하시는 선생님의 음성이 보이는 듯 들린다. 그러면 나는 또 누군가에게 고마운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아 양손을 포개 가슴에 얹는다.

지난해 11월 어느 날, 선생님은 내게 전화를 하셨다. 새로 얻은 사무실 이야기였다. 당분간 도와줄 사람을 찾다가 나를 염두에 두었다는 말씀이었다. 별로 하는 일이 없던 나는 12월부터 일주일에 두 번씩 사무실에 나가 잔일을 돕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늘 미안해하고 또 고마워하셨다. 고생한다며 점심을 사 주시곤 했는데 나는 당연하다는 듯 넙죽넙죽 받아먹곤 했다. 그날도 선생님은 점심시간에 맞추어 나오셨다. 들고 오신 원고를 내게 주며, 여름호에 실을 글이니 워드 작업해서 편집부에 보내달라고 하셨다. 그리고 점심으로는 지난번에 육개장을 먹었는데 참 맛이 있었다고 하며 육개장을 드셨다. 나도 따라 먹고 싶었지만 입병 때문에 매운 것을 먹을 수 없어 늘 먹던 갈비탕으로 했다. 선생님은 정말 맛있게 드셨다. 하긴 무슨 음식이든 맛있게 잡수시는지라 옆에 있는 사람의 식욕까지도 돋우게 했다.

사무실에 나와 앉아 있으면 그날 점심 드시던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입병 때문에 못 먹었던 육개장을 핑계로 점심 한 번 대접할 생각이었다. 아니다. 대접이 아니라 그냥 한 번 사드리고 싶었다. 그런데 장염 때문에 한동안 꼼짝 못하실 것 같다는 전화를 받게 되었다. 생각보다 환후가 길어졌다. 나의 작은 바람이 허사로 끝날 것 같은 막연한 예감이 드는 것을 애써 떨쳐내곤 했다.

내가 사무실 일을 마무리하고 떠날 때, 내 등을 두드려 주며 “그동안 고생했어. 고마워.”하실 줄 믿고 있었다. 명민하지 못해 일에 서툴고 낯설어도 선생님의 따뜻한 음성에 하루하루 마음을 다져 먹으며 다녔다. 그런데 선생님은 영영 모른 척하실 모양이다. 홀연히 먼 길 떠나셨으니 말이다.

고향마을 둑길에 큰 미루나무가 있었다. 우리 논가에 있어 우리 나무라 믿었다. 나무 그늘엔 늘 아이들이 모여 이런 저런 놀이를 하며 놀았다. 텃새들도 이 가지 저 가지로 날아다니며 재잘거렸다. 논일 밭일 끝내고 돌아가는 마을 어른들도 잠시 그늘에 서서 허리를 펴고 갔다. 나는 이런 미루나무가 자랑스러워 아이들에게 우리 나무라는 것을 말하곤 했다. 멀리 나무 그늘에서 노는 아이들 모습이 보이면 어깨를 으쓱거리기도 했다. 언제까지고 우리 논가에 서서 나의 자랑거리가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미루나무가 베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미루나무가 없는 낯선 풍경에 가슴 먹먹해져 눈물 글썽이던 어린 시절이 요즘 들어 종종 떠오르곤 한다.

 

 

《계간수필》 천료.

[토방]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