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의 눈

 

                                                                          오순자

“그 녀석 괴짜예요.”

“왜?”

“국립대 의과대학 교수였는데, 방학 때 히말라야로 여행가서, 연락도 없이 돌아오지 않아서 짤렸어요.”

“왜 돌아오지 않았는데?”

“말을 안 해서 잘 몰라요. 의과 대학 때에, 같은 등산 동아리의 리더였어요. 산을 아주 좋아했었죠.”

“짐작되는 것도 없어?”

“본인이 입을 다물고 있어서…, 소문만 분분했죠. 더구나 초등학교 교사였던 아버지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었는데, 나타나지 않아 가족들에게도 불효자식으로 따돌림당했었어요. 아버지가 큰아들인 그를 무척 자랑스러워했거든요.”

그랬을 터였다. 나는 정말 그 이유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가 근무하고 있는 시골 요양병원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유순한 얼굴이었으나 강한 눈빛 때문에 결기가 느껴졌다. 나는 조카에게 그의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를 묻고, 내가 전화하겠다고 연락해 놓으라고 했다. 그리고 전화로 연락하면서 몇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 이메일로 보낼 터이니, 답장을 해 달라고 전화를 했다. 난처한 듯 오, 엑스로 답할 질문을 보내달라고 했다. 내가 글을 쓰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고, 본인의 신상명세는 절대로 밝히지 않겠다고 다짐까지 했다. 그리고 서너 번 이메일을 보냈으나 답장이 없었다. 조카에게 답장이 없으니 연락을 한 번 해 보라고 했다. 다시 여러 번의 전화와 이메일을 보내고 나서 그는 정말 내키지 않지만 어른의 채근에 마지못해서 그 당시에 그곳에서 썼던 것으로 추측되는 메모들을 보내왔다.

 

【記 1】⇒ 펜으로 글을 쓰던 시절에 소설가의 방안에 구겨져 쌓여 있을 것 같은 원고지 더미처럼 하얀 산들이 시야가 미치는 데까지 줄지어 있다. 그 중에 가장 심하게 구겨져 조금 더 솟아 있는 에베레스트가 눈에 뜨인다. 나는 그 산들 앞, 지상에서 가장 높은 팡보체마을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다.  

이곳 풍경은 액자 속에 걸려 있는 그림 같다. 날카롭게 뻗어내린 바위의 얼음칼날 같은 선이 두려워서 먼발치에서 구경만 한다. 히말라야, 신들이 사는 곳이 아닌가. 경외심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이곳 사람들은 신들의 영역에서 깃들여 사는 사제들처럼 시간의 유한성에 무심한 듯하다. 그들은 현세나 내세의 목숨이 신의 손안에서 이어진다고 믿으며, 꼭 성취해야 할 야망도 물질적 풍요에 대한 집착도 없는 듯 느리게 살아간다. 셀파로 일하던 아들을 눈사태로 잃은 주인 할머니의 눈에 히말라야는 아들을 품고 있는 무덤인 듯하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아들을 대하듯 섬긴다. 그녀의 얼굴에는 시야의 한계 너머 신의 영역과 교감하고 있는 듯한 신비함이 있다.

【記 2】⇒ 며칠째, 산 쪽으로 열려 있는 길로 올라간다. 바람이 앙칼진 소리를 내며 따라붙는다. 큰 산 아래 계곡에는 물이 풍부해서 생명의 터전이 되는 것인데, 돌들과 섞여 버슬거리는 척박한 땅이 의아스럽다. 너무 높아서일까? 물은 항상 낮은 곳을 적셔주니까, 낮은 곳이 풍요롭다. 눈여겨보는 이도 없으련만 부지런히 꽃을 피워 올린 들풀들과 네팔의 국화인 랄리구라스를 보니 긴장감이 풀린다. 며칠 동안 계속해서 이 길을 오르내리니, 사물들이 정겨워진다. 그리고 산들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든다.

오히려 햇빛을 받으며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는 산의 얼굴에서 따뜻함이 느껴지고, 몇억 년의 침묵 속에 담겨진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안개처럼 스며들어온다. 그리고 산에 반사되어 되돌아오는 내 모습이 보인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벽과 완강하게 닫혀 있는 문. 가족들의 기대와 친구들의 선망으로 짜인 격자문格子門. 아버지가 매 학기 말에, 우수한 성적표를 가지고 오는 나를 얼마나 자랑스러워했던지, 그로 인해 더욱 우쭐해졌던 자존감. 기대대로 나는 의과대학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 의기양양하게 교수가 되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다다를 때까지, 많은 것을 참아야 했음을 깨닫는다. 마음의 풍경은 너무 빈약하여 강열한 희열이나 슬픔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회의도, 의지를 마비시킬 것 같은 열정도 없었다. 아니, 하려는 생각이 없었다. 마음에 잠시 품었던 한 여학생과의 만남도 미루어 놓았으나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내가 정말로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

삶에서 격자문 안은 내가 최선을 다해 확보해 놓은 안락한 공간이다. 하는 일도 가치 있고 사회 속에서의 위상도 좋다. 그런데 매일 덫에 갇힌 산짐승처럼 꽉 짜인 스케줄에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는 압박감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구와 공허감이 있다.

【記 3】⇒ 산을 오르내리면서, 몸짓으로 산에게 말을 걸어본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여유로움으로 마음이 안정되어가는 동안에 산은 내게 존재의 이유를 묻는 것 같다. 이유에 대한 대답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대신 행복하게 존재해야 하는 것은 확실하다. 산과 혹은 내 마음 안의 여러 존재와 대화를 하는 동안에 어깨를 누르던 의무들이 녹아내린다. 드디어 주시하는 눈들이 없는 광활한 공간 속에서 나는 점차 내 역할을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하늘자락을 흔드는 듯한 바람 소리가 청각을 차단하여, 내면의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생각하려고 하지만 생각도 멈춰있는 듯하다. 무의식화된 명예욕과 그것을 부추겼던 가까운 사람들이 빚어놓은 거품 속에 왜소하게 들어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인다. 그것을 붙잡으려 해 보지만 실체를 잡을 수 없다.

【記 4】⇒ 들끓는 며칠이 지나고 있다. 산에 올라 한 시간이 지났을 때에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리면서 마음이 활짝 열리는 듯하다. 그러자 시계가 바람 따라 느려지다 빨라지다 하다가 기계적 리듬이 맞지 않자 태엽이 풀려 제 일을 포기하고 멈춰 선다. 나는 규칙적으로 돌아가던 시계의 톱니바퀴에 맞추어 돌던 삶의 규칙에서 내려와 온몸을 바람에 씻어 바위 위에 눕힌다. 돌처럼 뭉쳤던 마음이 이완된다. 갑자기 모든 것이 정지 상태이고, 너무 고요하여 믿기 어렵다. 점점 그 고요 속으로 잠입한다. 얼마나 지났는지 흔들림에 의해서 깨어나, 마을 사람들에게 업혀 마을까지 돌아왔다. 그리고 여러 날 앓고 있다.

【記 5】⇒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신학기가 시작되었고, 내 역할을 축으로 강력한 회오리바람이 불고 있다. 내가 의지했던 벽이 바람에 날아갔다. 수상스키를 타다가 갑자기 배가 서버려 물 속에 곤두박질친 듯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비난과 비웃음에도 내 평안은 흔들리지 않는다. 지난 반생을 주고 얻은 고요함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 되었다. 이제 거품이 걷힌 자리에서 작은 물줄기가 솟아날 것이고, 그것에 목을 적시며 물 흐르듯 살아갈 것이다.

 

 

《계간수필》,  《에세이 문학》으로 추천.

한일장신대 영문과 교수 역임. [토방] 동인.

저서 《생활 속의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