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비장과 공연장

 

                                                                               배채진

이번엔 마음이 더 바쁘다. 농막 뒤편의 시멘트 포장작업과 퇴비장 만드는 일을 일찍 마쳐야 부산으로 돌아가, 가람 아트홀에서 열리는 포크 가수 김은영의 콘서트에 갈 수 있다. 공연장은 우리 집에서 또 멀다. 그리고 일을 아무리 서둔다고 해도 내일 오전까지는 이어진다. 마치고 서둘러 빨리 출발한다고 해도 오후일 것이다. 그래서 이틀 동안 마음도 바빴고 몸도 바빴다. 그런데 머무는 며칠은 된더위 수준의 더운 날이었다.

시멘트와 섞어 비비기 위해 모래를 퍼서 나르고 또 날랐다. 혼자서 하는 일이다. 지쳤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해서 계획된 1차 공정을 다 마쳤다. 땀을 식히려 그늘로 들어섰다. 모래더미를 봤다. 많이 없어졌다. 그때 문득 이 말이 생각이 났다. “그 많던 모래가 다 어디로 갔나?”

‘그 많던 낙동강 모래는 어디로 갔을까?’ 얼마 전에 읽은 이슈의 제목이다. “있어야 할 자리를 떠나 골칫거리로 전락한 모래, 본래 생물들의 보금자리였고, 자연스러운 강의 경관을 연출했던 모래는 굴착기로 긁어졌다. 모래는 ‘농지 리모델링’이라는 핑계로 진행되는 ‘삽질사업’에 활용되고 있다.”라는 글로 기사는 이어졌다. 농지 리모델링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논밭을 둘러싼 파낸 모래, 이것이 본래 모래가 있었던 자리보다 아름다운지 필자는 묻고 있었다. 글을 읽고 모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절에 갔을 때, 비록 천천히 걷지만, 곧장 향하는 곳은 뒤편이다. 대웅전 뒤편은 늘 정갈히 청소, 정돈되어 있다. 여름엔 바람도 그늘도 시원하다. 비록 절집 뒤뜰처럼 그렇게 해둘 수 없지만 뽑고 또 뽑아도 무성해지는 풀들 때문에 원두막 뒤편을 언젠가는 손질해야겠다고 벼르고 있던 차였다. 그리고 비가 내리면 물이 금방 고이게 되는지라 시멘트로 포장할 필요는 일찍부터 있었다. 그렇게 벼르고 벼르던 일을 이번에 비로소 착수하게 된 것이다.

벼르기는 퇴비장 조성도 마찬가지다. 농막 뒤편의 시멘트 작업을 한 후 토요일엔 새벽 5시부터 설쳤는데도 기초공사가 다 끝나지 않고 시간은 금방 간다. 퇴비장 블록을 쌓기 시작한 시간은 거의 11시쯤이었다. 12시엔 마쳐야 챙기고 나서 씻고는 1시경에 출발할 수 있는데. 블록, 그냥 쌓는 게 아니다. 퇴비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물 머금은 퇴비 포대 30여 개 옆으로 옮기고서 바닥을 고르고, 또 블록 50장을 옮겨오고서 다시 모래를 퍼 와서는 시멘트와 물을 뒤섞어 쌓아야 한다. 그리고 블록 쌓는 일은 처음 해보는 일이다. 수평과 각도를 맞추는 도구도 없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블록을 맞물려 쌓아야 하는 줄 모르진 않았지만, 끝 부분에 쌓을 블록 반 토막 낼 시간도 또 자신도 없어, 그냥 차곡차곡 나란히 쌓았다. ‘빨리 또 천천히’, 일을 하면서 이 일은 이렇게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비록 깔끔하게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원하던 퇴비장을 조성하게 되어 쳐다보는 기분은 더욱 좋았다.

바삐 움직였지만, 시간은 벌써 1시를 넘기고 있다. 점심 먹을 틈이 없다. 챙기고서 씻으니 2시다. 출발하려는데, 피로가 느껴진다. 공복이어서 피로의 두께가 더한 것 같다. 잠시 눈을 붙였다. 그리고 출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쌀국수로 점심을 때웠다. 벌써 3시, 그냥 시동을 걸 수는 없다. 다시 눈을 붙였다. 그리고 곧장 달려와 부산 집에 도착했다. 도로가 붐빌 시간인데 공연장까지는 거리가 멀다. 예상대로 밀린다. 공연장에 도착하니 7시, 저녁 먹을 시간이 없다. 먹지 않고 바로 입장했다. 막 공연이 시작될 참이었다. 하동 악양의 지리산 기슭 농막에서 시멘트 비비고 블록을 쌓는 중노동 후에 도착한 나보다 더 늦게 오는 사람을 위해 기다려 주는 지연 시간이 나에겐 꿀맛 같은 휴식시간이었다.

가수가 이날 부른 노래는 〈꽃 새 눈물〉, 〈내 작은 행복〉, 〈샌프란시스코〉, 〈별 바람 그리움〉, 〈돈데 보이〉 등등이었다. 분위기와 의미를 동시에 갖춘 노래들이었다. 소극장은 객석이 무대와 멀지 않아 좋다. 무대나 조명이 단출해서 좋다. 포크 송, 가슴으로 흐르는 시여서 좋다. 반전을 평화를 인권을 생태계 파괴를 고발하지만 부드러워 좋다. 바로 며칠 전에 본 이창동의 영화, 〈시〉의 흐름도 이와 비슷했다. 사라진 강변의 모래가 어디로 간 거냐고 묻는 물음의 맥락도 이에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공연이 끝났다. 조명이 사그라지고 객석에 불이 들어온다. 손뼉을 한껏 쳤다. 가수 김은영이 무대에서 좀 오래 머물면 앞으로 나가 악수 한 번 청하려고 했는데 잠시 머물고는 밖으로 나간다. 팬 카페 회원들과의 만남이나 원하는 사람에게 해주어야 할 사인 때문일 것이다. 우리 둘은 밖에서 잠시 기다렸다. 가수가 복도에서 바쁘다. 그래서 만나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공연 후에 꼭 한 번 뵙자고 부탁을 받은 터였는데 만나보지 않고 발걸음을 돌리려니 좀 미안했지만, 피곤이 심했는지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오면서 나는 공연장의 노래, 그 중에서도 샌프란시스코에 오면 머리에 꽃을 꽂으라고 하는 〈샌프란시스코〉와 소수 민족의 애환을 주제로 한 가사와 애잔한 멜로디로 순백한 분위기의 오염되지 않은 정서를 표현했다고 하는 〈어디로 갈까?〉, 즉 〈돈데 보이〉를 이야기했다. 만들고 온 퇴비장도 이어 말해주었다. 몇 년 동안 벼르고 벼르다가 드디어 만든 서툰 솜씨의 퇴비장을 말할 땐 지쳐 골병들 뻔했던 이야기도 아울러 했다. 말하는 순간 퇴비장은 공연장과 그림이 겹쳐졌다. 둘 다 장場은 장인데 그 역할이 아주 다른 장이다. 박경리의 〈시장과 전장〉처럼, 서머셋 모음의 〈달과 6펜스〉와는 또 다르게 상반되는 장인 ‘퇴비장과 공연장’, 이는 요새 내가 오가는 발걸음의 간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사람은 “공연장에 올 때에는 마음의 여유뿐 아니라 몸의 여유도 함께 가지고 와야지, 중노동 후에 그것도 먼 거리를 쫓기듯이 달려와 입장해도 되는 거냐?”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리고 말이 난 김에 또 하는데, “퇴비장 일도, 일하다가 쉬는 게 아니라 놀다가 심심하니 일하는 수준으로 제발 좀 해 달라.”라고 엄명 수준의 당부를 한다. “나이가 몇인지 이참에 생각 좀 해 봐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을 때는 10시 반이었다.

 

 

계수회 회원.

부산가톨릭대 교수.

부산 독서 아카데미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