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의 소녀

 

                                                                                 원옥재

여러 해 동안 눈에 익숙해 있던 풍경화를 떼고 새 그림으로 바꿨다. 그래서인지 자주 마음이  그 쪽으로 달려 간다. 거실을 오갈 때마다 눈이 가고 부엌에서 일을 하다가도 일부러 몇 걸음을 옮기면서까지 벽난로 위를 바라보게 된다. 떼어낸 그림은 캐나다 화가 펀드리더의 <숲 속의 피크닉>란 작품이다.  단풍으로 물든 가을 숲 속에서 두 젊은 연인이 시냇가에 앉아 밀애를 나누고 있는 모습인데, 가을의 정취를 은은한 색감으로 표현한 세련된 작품임에도 지금처럼 내 관심을 깊숙히 끌어들이진 못했다. 단지 문화생활을 바라보기도 벅찼던 이민 초창기에 내가 감히 탐낼 수도 없었던 귀한 선물이었기에 잘 간직해 온 것뿐이다. 한 친구가 오래전부터 눈독을 들이고 언젠가 싫증이 나면 자기한테 달라고 요청한 상태이나 아무에게도 쉽게 내줄 수 없는 내 작은동서의 결혼선물이다.

작년 어느 날, 새 그림인 < 교복을 입은 소녀>가 내게 전해졌다. 이것은 후배의 작품인데 캐나다에서 잠시 살다가 한국으로 되돌아가면서 은사님께 드린 소중한 선물이다. 은사님께서는 그 작품을 같은 제복을 입었던 동문들이 일정 기간 동안 소유하며 감상하도록 배려를 해주신 것이다. 다른 동문보다 내게 임시 소유권이 길게 정해진 특별한 사연이 있다. 바로 그 화가가 내 여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외동 따님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토론토에 살고 있을 때 만나보지 못하고 이미 떠난 후에 알게 된 사실이라 이제까지 아쉽기만 하다.

국어과 담당이신 L선생님은 여학교 때 두 번씩이나 우리반 담임을 맡으셨다. 그분은 어떤 경우에도 흥분하거나 화를 낼줄 모르시던 신사로 기억된다. 자신의 불쾌한 감정을 우리에게 들켰다 싶으면 오히려 얼굴이 붉어지시던 선비 같은 분이었다. 당시 여고생으로 모 문학상 대상을 받았던 M시인이 자랑스러워 수업시간 내내 자신의 일처럼 흥분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남의 잘된 일로 진정 행복해 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부모와 스승일 뿐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 것도 아마 그분의 영향이 아닌가 한다.  또한 선생님은 시작詩作을 하실 때마다 적절한 시어가 찾아질 때까지 이불을 둘러쓰고 밤마다 씨름하신다는 치열한 작가 정신에 대한 기억도 남아 있다. 이제 나도 글을 쓰다 보니 선생님의 시작詩作법을  큰 교훈으로 삼게 되었다.

내게 잠시 맡겨진  이 고가高價의 새 그림을 마주하면  옛 은사님을 다시 만난 듯 뜨겁게 달아오르곤 한다.  타임 머신을 타고 사춘기 소녀로 되돌아간다. 모래와 짚에 물감과 풀을 섞어 그림에 짓이겨 붙이는 화법이란다. 색감을 다양하게 내기 위해 덧붙이는 횟수가 달라지고, 입체감을 살리기 위해 풀과 재료의 농도와 강도를 달리한 정교함이 눈에 보인다. 그림 속의 소녀는 마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다. 아니 이 그림을 바라보는 여인들 모두 그런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그때 그 시절의 단발머리에 남색 치마와 흰 상의에 붙은 모교 상징인 배지와 백선白線도 선명하다. 소녀의 표정은 온화하다. 평화의 상징인 노란 비둘기를 품에 감싸 안고 세상을 다 가진 듯 만족스런 얼굴을 하고 있다. 소녀를 둘러 싼 흰색과 남색 계통의 축 늘어진 나뭇잎은 색조의 강약을 변형시켜 꿈과 이상의 나래를 펼친 소녀의 마음세계를 표현한 듯하다. 아름다운 빛과 색으로 드러난 인생의 봄을 생생하게 엿볼 수가 있으니 말이다.

갑자기 그 소녀만 할 때 품었던 푸른 꿈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젠 잊은지 오래된 희미한 그림자일 뿐이지만 친지들은 내가 먼 훗날 여성을 빛내줄 교장이 되기를 기대했었다. 정작 나는 훌륭한 교사에 대한 꿈 너머 꿈이 있었으니 합창을 좋아한 만큼 유능한 어린이 합창단 지휘자가 되고 싶었다. 어린이와 노래를 향한 나의 열정을 그렇게 불태우고 싶었다. 되돌아보면 이민을 선택했을 때 이미 그 꿈은 하늘 저편으로 멀리 사라졌고, 지금까지 남의 땅에서 생존을 위한 각박한 삶만 지켜온 것이다.

오늘도 벽난로 위의 그림을 바라보며 고인이신 L선생님과 그의 외동딸을 만나며 내 소녀의 꿈을 회생하고 있다. 비록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세월이고 기회는 빗나갔지만 아직도 이순耳順의 메마른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부서진 소녀의 꿈 한 조각일지라도 못내 눈물겹고 아름다움은 또 하나의 성숙한 꿈으로 다시 잉태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 그러나 나는 어제와 내일이 아닌 오늘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

 

 

1973년 캐나다로 이민, 《에세이 문학》 등단 ,

현 캐나다한인문인협회 회장.

수필집 : 《낯선 땅에 꿈을 세우며》 외 여성동인집 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