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꾸눈 하록이

 

                                                                            서민정

우리 가족과 함께 12년째 동고동락한 정든 미니밴이 병원으로 실려갔다. 훤했던 인물이 언제부턴가 초로의 빛을 띠며 잔병치레를 거듭하더니 드디어 기진하여 도로에서 멈추어버린 것이다. 응급조치로 견인차에 매달려 가는 녀석의 모습이 너무도 애처롭다. 최근엔 주인의 부주의로 오른쪽 사이드 미러까지 망가진 녀석. 조각난 거울을 얼기설기 모아 붙이고  가장자리엔 판지를 대어 시커먼 테이프로 둘둘 감으니 그 행색이 영락없는 만화 속 ‘애꾸눈 하록 선장’이다. 외부의 침공으로부터 지구를 사수하던 하록처럼, 우리 가족의 이민사 애환에 앞장서며 헌신하여 온 충신이었다.

녀석의 몸에 적신호가 나타날 때마다 나는 “비지니스하는 동안만 좀  더 버텨 주어라.” 격려하며 녀석의 엉덩이나 톡톡 두드려 주었다. 그러면서 온갖 힘들고 궂은일은 다 떠맡기며 홀대까지 했다. 집에 돌아와 주차할 때에도 늘 다른 차들에 밀려 차고 밖에서 밤을 지새게 했다. 하록이도 이제 체력에 부쳤나 보다. 한국에서였다면 수시로 정비소를 드나들었을 텐데 너무 미안하다. 기회는 위기의 탈을 쓰고 온다고 했던가. 하록이가 가족의 관심을 끌며 몸을 돌보게 된 건 순전히 응급실로 실려 간 때문이었다.

갓 이민을 오던 그때 거리의 자동차 풍경은 충격이다 못해 신기하기까지 했었다. 애꾸눈은 물론, 깨진 유리 위에 덕지덕지 붙은 접착 테이프, 끈으로 동여맨 문짝, 누렇게 부식해 여기저기 떨어져나간 자국, 일그러진 차체들… 특히나 하이웨이 운전 중에 이런 괴기스러운 차들이 간간이 옆을 스칠 때면 심장이 오싹하는 것이었다. 소박하고 검소함이 몸에 밴 캐네디언들의 모습이려니 생각하면서도 그 낯섦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강산이 변하도록 살다 보니, 흉보며 시어머니 닮아가듯 나도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정비소에서 차가 고쳐지기를 기다리는 내내, 지나간 우리 가족의 이민역사 속에서 함께해 온 하록이와의 추억에 젖고 있었다. 주인의 비지니스에 쉴새없이 동참하고, 아이들이 어릴 땐 등하교를 돕고, 이제는 아들의 기숙사가 있는 런던까지 필요한 것들을 실어 나르기 수년째. 뿐만이 아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의 뜻에 맞춰 로키산맥을 넘어 시애틀을 들러 벤쿠버를 돌아 다시 토론토로 오는 대 장정의 캐나다 대륙횡단에도 몸을 사리지 않았던 일등공신이었다. 그렇듯 청춘을 사른  녀석이다.

예정된 시각이 다가오자 정비하던 사장님이 나오시더니 “깨진 오른쪽 사이드미러는 제가 그냥 중고품으로 하나 바꿔드리겠습니다.” 하신다. 넓은 주차장 한쪽에 놓여 있는 폐차들을 가리키며 그 중에 마침 똑같은차종이 있으니 사이드미러 하나를 떼 와서 달면 된다는 것이다. 연수가 오래되기도 했지만 비싼 수리비를 생각하며 차가 다시 굴러가게만 할 요량이었지 굳이 미러까지 바꿀 생각은 없었는데 귀가 번쩍하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흐르니 드디어 녀석이 수술을 마치고 나온다. 순간, 눈이 부셨다. 낯설도록 환한 인물! 그 중에서도 확연히 달라 보이는 것은 바로 ‘애꾸눈’, 그 자리였다. “하록아!” 나도 모르게 불러 보았다. 하록이가 원래 이리도 잘생겼었던가. 세상에서 가장 비싸다는 차 ‘애틀랜틱’의 인물이 이만할까. 단 3대밖에 생산되지 않았다는 1936년식 부가티 타입의‘애틀랜틱’. 캘리포니아주 산타 모니카에서 경매에 3백만 달러로 낙찰되어 화제에 오른 그 잘나가는 녀석도, 내게는 특별할 것 없는 그저 메뚜기 닮은 소형차일 뿐이다.    

사장님은 돈을 들여 폐차시켜야 하는 고객의 차들을 헐값으로 사서 받아 두었다가 부품을 필요로 하는 차들이 들어오면 다시 고객들에게 부품값은 받지 않고 실비의 인건비만으로 교체해 준다고 한다. 기술과 고객의 입장만을 고집하는 장인정신의 사장님 덕분에 우리의 하록이는 애꾸를 면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멋진 하록이를 하마터면 그냥 둘 뻔하지 않았나. 생각할수록 아찔하다. 녀석이 정상으로 회복되어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기쁨을 나눌 수 있도록 해준 사장님께 정말 감사하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무엇을 나눠주고자 마당 후미진 곳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던 폐차들도 잊히지 않는다.

차를 몰 때마다 자꾸만 오른쪽 사이드미러를 보게 된다. 멋진 세상이 그 안에서 시원하게 펼쳐진다. 정비소를 나오며 사장님께 몇 번이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도, 나는 왠지 세상에 돌려줘야 할 그 무엇으로 크게 빚져 있다는 것을 내리 생각하고 있었다.

 

 

수필 전문 계간지 《창작수필》에 <여의도의 봄> 당선.

《창작수필》 <토론토 통신>  4년간 기획 연재.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회장 역임.

현 캐나다 한인문인협회 부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