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선게임

 

                                                                            이언주

봄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4월에 때 아닌 눈발이 날리더니 하순경이 되어서야 겨우 새순이 눈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유난히 추웠던 겨울 탓에 유쾌한 소식보다는 누가 경제적으로 힘들어졌다거나, 주위에 건강이 나빠졌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곧 나아지겠지 기대해 보지만 좀처럼 봄이 느껴지질 않는다. 더디 오는 봄을 기다리다 문득, 힘든 미래를 예견이나 하였다는 듯 젊은 시절 무모하게 시도했던 극기 훈련이 생각난다.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밤이었다. 인적이 끊어진 시간, 팔공산 깊숙이 자리한 수양관으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한겨울 난방도 하지 않은 낡고 어두운 강당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휩싸였다. 강당 가운데는 등대처럼 촛불이 깜박이고 있었다. 진행자는 간단하게 우리가 수행할 과제인 ‘난파선 게임’ 개요를 설명했다.

“회원들이 탄 배가 망망대해를 표류하다 가라앉고 있다. 구명보트는 오직 한 사람만 태우고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다. 게임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자신이 살아남아야 할 분명한 이유를 찾아 동료들을 희생시키거나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희생하여 어둠 속으로 물러나 앉아야 한다.”

난파선 게임이란 상경대 동아리에서 행하던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최후의 1인이 되려면 분명한 명분과 어떤 상황에도 살아남겠다는 투철한 의지가 있어야 했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절대적 명제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 때문이라거나 국가 발전에 자신이 필요하다 정도의 이유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젊은 우리에게는 가진 것이나 남길 것을 비교하기보다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훨씬 더 많은 나이였다.

촛불이 켜진 순간부터 청년들의 시선은 오로지 작은 촛불 하나에 집중되었다. 촛불은 어둠과 적막 속에서 우리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처음엔 순번에 따라 장난기와 치기어린 가벼운 이유들이 오갔다. 경쟁이 싫다며 일치감치 어둠 속으로 물러나 앉는 친구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살아남은 사람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설전은 치열해졌다. 분위기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해 한쪽에서는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기도 했고, 욕을 하는 소리도 들렸다. 기우에 지나지 않을 절박한 상황을 설정해 자신을 심판대에 올려놓은 것이 부당하다는 불평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차가운 마룻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와 이가 턱턱 부딪치는데 열기와 오기로 이마에 땀이 솟았다.

어떤 의미로든 객관적이고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의지가 확고한 친구를 위해 양초처럼 나를 사르고 어두운 배경으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불꽃이 되어 나 홀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 방법을 찾을 것인지. 상대방의 죽음을 인정에 호소하거나 양보를 얻어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나를 위해 타인을 심판하고, 그가 죽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엄청나고 두려운 일인가. 두려움을 넘어선 공포로 온몸이 전율하였다.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 난파선 끝으로 내몰리던 적이 있었다. 가진 것을 모두 투자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은행에서 빌려 학원을 개원했다. 영재교육이라는 전문성을 내걸고 꿈에 부푼 출발이었다. 그러나 자리도 잡기도 전에 경제공황으로 온 나라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고 석 달이 채 되지 않아 정부는 IMF에 긴급구조를 요청하고 기업들은 대규모 구조정리를 감행하였다. 특화된 전략이 바로 폭탄이 되어 되돌아왔다. 잠재고객의 실직은 곧 나의 파산과 맞물려 있었다. 뉴스에서는 줄줄이 도산하는 중소기업 대표들의 자살소식이 끊이질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몸피를 줄일 대로 줄이고 여린 호흡을 할딱거리며 겨우 연명해야만 했다. 교사 수를 최소한으로 하고 난방비를 줄이기 위해 격일로 교육원 문을 열어도 어쩔 수 없는 부채와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다고 생각되는 시기였다. 그때 동아리 친구 몇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금융 계통의 일을 하던 친구 중에는 이미 명퇴를 하고 생활의 기반이 무너진 친구도 있었고, 극적인 반전으로 오히려 기회를 만난 이도 있었다. 세상살이에 지쳐 옛이야기를 나누다 오래 전 ‘난파선 게임’에 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스무 살 때처럼 앞날의 희망이나 도전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했다. 20년 전과 달라진 것은 나만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우리가 함께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격려하고 다짐하는 일이었다. 힘든 시간을 참고 견디자던 친구들의 결의와 위로는 태산 같은 파도를 헤쳐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난파선상 생활의 연속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살다 보면 거친 풍랑을 만나기도 하고, 바람의 기세가 한풀 꺾이고 나면 대수롭지 않다는 듯 파도를 수심에 묻고 또 한 굽이 고비를 넘긴다. 게임을 하면서 혼자만 살아남겠다고 궁리를 하던 친구들의 머리에도 어느덧 서리가 내리고 있을 것이다. 흰머리가 하나 둘 늘어난다는 것은, 고비를 맞고도 지레 겁먹지 않고 참고 견디는 지혜가 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바람이 차도 겨울이 오는 봄을 이겨내지는 못한다. 자작자작 봄비 내리는 소리가 난다. 새싹들 봄 마중 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대구 출생,  경북대 대학원 졸.

한국수필 신인상(139회), 선수필신인문학상(2006).

서울디지털대학교 문학대상.

선수필 편집위원 (2007 ~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