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

 

                                                                        김정미

비오는 주말 오후. 전시관은 한산했다. 사랑의 기원이라는 테마로 일본인형이 전시 중이었다. 크고 작은 색색깔의 인형들이 투명한 유리전시실의 고요 속에 갇힌 듯 보였다. 일본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입힌 인형들은 금박무늬로 장식된 덧옷과 장식들을 달았다. 에도시대 말기부터 일본의 도호쿠 지방의 온천지역에서 토산품으로 제작된 나무인형인 ‘코케시’. 그 인형은 우리나라 오뚝이 모양과 비슷했다. 꽃그늘에 서 있는 아름다운 젊은 여인의 모습을 담고 있는 ‘하나카게’. 그 중에서도 내 눈을 끄는 인형이 있었다.

크기가 15센티를 넘지 않는 ‘쓰레즈레’라는 작은 여자인형이었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누워서 독서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긴 머리채를 뒤로 묶은 기모노 차림의 여인. 에도시대 여성의 일상을 표현한 것이라는 안내문이 꼬리표처럼 붙어 있었다. 인형의 한 손은 턱을 괴고 한 손은 책장을 넘기는 모습이다. 에도시대의 여인. 지루하고 나른한 하루를 견디는 방법으로 책을 펼친 여인들. 무엇이 그 여인들의 삶을 지루하게 하는 것일까. 왜 여인들은 유리 상자 같은 집을 벗어날 수 없었을까. 왜 자신을 옭아 메는 틀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 노라가 집을 떠난 것은 인형과 같은 삶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인형이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안온한 삶을 포기한 것이다. 삶은 독한 상처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독한 인간의 삶을 끌어안는 순간 비로소 나라는 존재로 살 수 있는 것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수 있는 삶. 세상이란  태클로부터 좌절하지 않는 삶. 이 모든 것이 인형이기를 포기하면 가능할 수 있는 것인가.

불행이 행복보다 오래 계속된다는 점에서 고통스럽다고 한다. 행복 또한 불행만큼 오래 지속된다면 그 또한 고통이 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무소가 되어 혼자 세상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선택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무소처럼 혼자서 갈 수 있는 자유는 부럽다. 아니 그 용기를 닮고 싶다. 인형의 집 노라는 아이와 남편과 집을 버리고 자신으로 되돌아 갈 수 있었다. 우리에겐 혼자서 세상을 뚜벅뚜벅 걸어가야 하는 무소의 뿔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입은 상처를 스스로 보듬고 쓸어줄 마음의 공간이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집은 귀소의 공간이라고 한다. 현실의 고난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공간. 삶의 소외로부터 생기는 공포, 무력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곳. 그래서 죽음과 삶은 ‘집’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집은 어머니의 자궁처럼 따뜻함이 고여 있다. 하지만 현대의 삶은 그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다. 더 이상 집은 세상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이 되기 어려워지고 있다. 오히려 집은 서로에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주기도 한다. 무엇 때문일까.

작년 겨울 대구에 사는 조카가 왔었다. 부모의 기대에 못 미치는 수능시험 결과로 조카와 형부 모두 가슴앓이 중이었다. 결국 조카는 형부가 원하는 학교 대신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했다. 인형이기를 거부하고 집을 떠나온 노라처럼 무소의 뿔처럼 세상을 혼자 걸어가야 하는 조카는 지금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 영화 〈300〉을 보며 적어도 사나이가 태어나 저렇게 장엄한 삶을 살다 가야 하는 게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던 조카는 휴학을 하고 군대에 갔다. 조카에게 정말 소중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또한 내 아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끝도 없는 물음을 갖게 된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버려야 할 것과 챙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일일 것이다. 전시실의 일본 인형처럼 나른한 삶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사물이나 인식을 복잡하게 하는 지식. 실천이 박제된 이론의 늪에서 벗어나  많은 것을 잃고 또 많은 것을 버려야 가능한 삶일지도 모른다. 정말 우리 삶의 서랍 속에 넣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 나 또한 무엇이 소중한지 모르고 살고 있는 인형의 집에 사는 인형이 아닐까. 정말 그런 것은 아닐까. 순간 두렵다.

 

 

《계간수필》로 등단.

강원대 대학원 수료.

동서커피 수필 부문 최우수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