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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소리

 

                                                                           김진순

칠월 초, 막 봉오리를 열기 시작한 두물머리 연밭은 장관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탐스럽게 핀 수천 송이 연꽃. 커다란 초롱불이 사방에 켜져 연등행렬을 이루었다. 연꽃에서 미묘한 빛이 흘러나와 주위를 밝히고 있어 나는 오랫동안 말을 잊었다. 봉오리 주위에서 신비로운 기운이 흘어나오는 듯했다. 마치 연화장蓮華藏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고, 그곳에 꽃을 보러 온 사람들이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 해인가 송광사 새벽예불에 참가한 적이 있다. 삼십여 명의 젊은 수행자가 법문을 외우는 광경을 보았는데, 만개한 봉오리에서 그 수행자들의 합창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청정한 소리 안에 들어 있는 그들의 염원을 이곳의 연꽃들이 보여주었다. 그래서인지 연꽃 송이는 더 환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는 당시 만나는 사람들에게 연꽃의 신비를 이야기했다. 한 친구가 아침 일찍 연밭에서 연봉오리 열리는 소리를 들었다며 날 보고 들어보라고 하기에 여러 번 연밭을 찾아 귀를 기울여 보았다. 이른 아침에도 석양 무렵에도 가보았지만 그 소리와는 영 인연이 닿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혹여 들릴까 귀를 쫑긋 세워 보았으나 허사였다. 그래도 은은하게 번져오는 연 향기만은 만끽할 수 있었다.

내가 연꽃 벌어지는 소리에 집착하는 데는 무엇보다 세상에 대한 나 자신의 변화를 갈망했기 때문이다. 물론 세계를 향해 자아를 활짝 열고 싶은 내 안의 갈증도 한몫 했다. 연꽃에는 다른 꽃에서 볼 수 없는 범접할 수 없는 숭고함이 있다. 무심히 넘긴 일상 속에도 늘 숭고함이 있다는 것을 놓치고 살았다. 연꽃의 개화 과정을 보면서 나는 내 속의 자아와의 합일과 영혼의 개화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지난여름은 유난히 비가 잦았다. 그렇다고 연밭의 생기가 줄어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비를 맞을수록 운치를 더한다고나 할까. 너른 이파리에 후드기는 빗소리. 노련한 피아니스트가 치는 선율같이 들리기도 한다. 푸른 이파리가 바람에 뒤척이는 모습이라든가 기름진 이파리 위에서 수은처럼 굴러다니는 빗방울을 보고 있노라면 연밭 가득 넘치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어 좋다.

이십대에 읽었던 <부생육기浮生六記>라는 수필이 생각난다. 운芸이란 어린 신부가 잠들기 전 얇은 비단에 싼 찻봉지를 연봉오리 안에 넣어 두었다가 다음날 아침 연꽃이 벌어질 때 꺼내 차를 달이는 대목이 떠오른다. 그런 운치를 누리지는 못한다 해도 연꽃 벌어지는 소리만은 듣고 싶다.

추분을 지난 후 다시 찾은 연밭은 아예 추레하기까지 했다. 뜨거운 여름날, 빛나던 생명의 윤기는 다 어디로 갔을까. 무성하던 이파리는 지난 태풍에 여기저기 찢겨 있고 곧게 올렸던 꽃대는 제 무게를 못 이겨 거의 쓰러져 있다. 연밭은 생을 갈무리하는 모습들로 가득하다.

지난여름 터키여행을 다녀왔다. 떠나기 전날 이스탄불에 있는 돌마바우체 궁전을 관람한 적이 있었는데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 앞뜰에서 서너 송이 연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슬람 문화가 절정에 달했던 시절에 지어진  왕궁. 그 영광이 스러진 자리에 피어난 꽃이라 퍽 인상적으로 보였다. 화려한 시절의 영광이 흔적으로 남아 있던 궁전의 모습이 스산한 연밭에 어룽거린다. 한때의 영광, 한때의 멸망. 가득 차면 이울고 다시 그 자리에 일어나는 새 기운이 세상을 이루어가는 평범한 진리. 완전한 소멸 뒤에야 새로운 생명이 피어날 수 있다는 무언의 가르침이다.

시들어 바람에 일렁거리는 이파리들을 바라본다. 나는 연밭에서 가을 한 자락을 내 안 깊이 끌어들였다. 이곳의 소멸은 내게 살아 있는 날을 빛나게 하라고 이른다. 여름과 가을 사이. 두어 달의 시간적 경과를 이곳 연밭처럼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은 없다.

여름날 무성하던 짙푸른 이파리들을 그려본다. 푸른 이파리가 넘실대는 모습 사이로 연꽃은 도도히 다시 봉오리를 열 것이다. 올여름엔 꼭 연꽃들이 활짝 벌어지는 소리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