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의 마지막 장미

 

최숙희

 

길 건너 대학 캠퍼스에서 플루트 소리가 들려온다. 초가을 햇살이 포플러에 비늘처럼 내리는 오후. 창을 열고 플루트 소리 나는 곳을 눈으로 더듬다 주춤주춤 돌층계를 내려와 풀꽃들이 가득한 뜨락을 서성인다. 계절 탓인가, 플루트 소리 때문인가. 아직 구월인데, 이미 한 해를 다 보낸 듯 텅 빈 마음 한 편으로 서늘한 바람이 지난다. 플루트 소리를 따라 아득히 먼 날의 기억을 더듬는다.

앙상하게 마른 가무잡잡한 피부에 말이 없던 아이. 내 사춘기는 가장을 잃고 새로 시작한 서울 생활과 함께였다. 갑작스런 아버지의 별세로 우리 가족은 방향 감각을 잃었고, 그러나 모두 슬픔을 딛고 각자 꿋꿋이 일어서야 했다. 소아적부터 병치레가 잦았던 나였지만, 어머니조차 더 이상 내 건강에 많은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던 그 때. 나는 휴학을 하였고, 친구 하나 없는 서울에서 가슴앓이까지 하며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노고산이 바라다 보이는 간이 역 근처였다.

산 아래 마을 가득히 번지던 아카시아 향, 한 밤중 이불 속에서 듣던 기적 소리, 철로의 침목을 세며 걷다 문득 바라 본 노을 빛…… 이들은 무언지 모를 그리움이며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

그 여름이 지나면서 나는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였고, 근처의 대학 도서관을 이용 할 수 있게 된 것은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그 곳 서고 안, 아직 채 분류도 안 된 책 더미 속에서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는 동안 눈길이 닿는 대로 소설이며 시를 읽었다. 교과서 외의 책이라고는 서울에 계시던 아버지께서 보내 주신 월간 ≪학원≫과, ≪하이디≫, ≪플란다스의 개≫ 등이 전부인 시골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나였다. 책 속에서 나는 순결한 살인자 테스였고, 열차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안나 카레니나였으며, 모든 것이 당신을 통하여 보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지드의 알리사였다.

<그 여름의 마지막 장미>. 그 즈음 방학을 맞은 텅 빈 교정 어딘가에서 자주 들리던 플루트 연주의 먼 나라 민요. 누구일까. 언제부터인가 플루트 소리에 맞춰 노래 말을 마음속으로 따라 하며 소리의 주인을 가늠해 보기도 하였다.

말 한 마디 없이 늘 같은 자리에 앉아 책만 읽던 대학 도서관 안의 단발머리 소녀가 신기하게 보였던가. 일부러 내 책가방을 감추고는, 책가방을 찾느라 울상이 된 내게, 잃어버린 가방을 찾아주는 것처럼 하여 말문을 트이게 한 사람은 바로 그 플루트의 주인이었다. 그 후로 그는 자주 말을 걸어왔고, 내가 읽고 있던 책에 관해 묻기도 하였다.

 

가을이 깊어 갔다.

“이 새카만 것을 어떻게 마시지요?” 거품이 톡톡 튀어 오르는 난생 처음 보는 콜라 잔을 앞에 놓고, 병약한 유년 시절 이래 수년간 먹은 쓰디 쓴 한약 생각에 진저리를 치는 나를 보며 그는 재미있어 하였다.

“영화에서 보면 서양 사람들이 마시는 것 있지?” 그 때까지 내가 본 영화는 없었다. 그 대학 학보사에 걸려 있던, 나탈리 우드의 큼지막한 사진이 든 <초원의 빛> 영화 포스터를 보고 가슴 설레던 적은 있다. 아니, 시골에서 가설극장이 생겼던 저녁, 확성기 소리에 이끌려 언니와 함께 어른들 몰래 그 곳까지 갔다 휘장 저편에서 들리던 변사의 목소리만 잠시 듣고 돌아 온 기억은 있다. 그때 그 영화 속의 배우들도 이런 것을 마셨을까.

겨울이 왔고 나는 제법 건강해졌으며 그 사이 훌쩍 커진 키에 맞게 새 교복을 맞추고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강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집을 지어 우리는 이사를 하였다. 경의선 철로가 가까운 그 곳에서도 기적 소리는 들려 왔다. 창문으로 내려다보는 저 멀리, 밤 기차를 타고 떠나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전송하며 그리움을 익혀 갔다.

그 즈음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을 분에 넘치는 값을 주고 샀다. 처음으로 읽은 원서인 셈이다. 지드 보다, 헤세 보다, 더 강렬한 감동으로 내 영혼까지 떨리게 한 소설의 원문을 읽고 싶어서였다.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 올려도 행마다 부단히 사전을 찾아야 하는 손은 시렸다. 잿빛 황야, 황무지에 이는 음울한 바람, 폭풍의 언덕 아래 물결치는 히스…… 서리 내린 새벽을 덜컹대며 기차가 지난 여운 속을 ‘캐서린! 캐서린!’을 부르는 히스크리프의 외침을 듣듯 가슴 아리던 그 새벽녘의 감동. 한 편의 소설을 남기고 서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에밀리 브론테의 생애 또한, 더 오랜 세월을 살며 많은 작품을 남긴 그 어느 작가들 보다 더 큰 감동을 주었다. 아, 서른 살. 그 때의 내게 서른 살은 실로 아득한 나이였다.

다시 봄이 왔고 저 멀리 강변 포플러 숲에 고운 연두 빛 안개 감돌 무렵, 새 교복을 입고 복학을 하였다. 도서관 안, 커다란 주전자에 보리차가 끓고 있는 난로를 사이에 두고 플루트의 주인과 마주 앉았다. 처음 똑바로 쳐다 본 그의 눈썹 언저리에서 지난겨울 동안 씨름했던 책 속의 히스크리프를 보았다. 그는 나의 복학을 축하하였고, 그도 졸업과 함께 학교 선생님이 되어 멀리 가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우리는 작별하였다. 꽃 샘 바람이 일렁이는 언덕길을 달음박질 하듯 내려왔다. 잔디밭을 돌아, 내가 그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돌계단에 서 있을 그를 나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로부터 오 년쯤 후, 내가 빛나는 나이의 대학생이던 세모의 어느 날. 명동 입구의 인파 속에서 두 세 걸음 앞 서 걷고 있는 플루트의 주인을 보았다. 그의 손에는 플루트 대신 노끈으로 묶은 큼지막한 상자가 들려 있었다. 퇴근 시간에 맞춰 귀가하는 한 선량한 가장의 모습이었다. 그의 뒷모습이 도시의 불 빛 속으로 서서히 멀어져 마침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는 멈춰 서서 지켜보았다.

 

“……한 송이 장미꽃이 여기 피었네. 나는 떠나지 못하네. 너의 향기로운 그 자리……” 아직도 플루트 소리는 이어진다. 조각조각 부숴지듯 내리는 햇빛 속에서 현기증을 느낀다. 돌 층계를 바삐 올라와 문을 닫는다.

 

 

≪수필공원≫으로 등단. 로스앤젤레스 씨티칼리지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