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문명, 신 문법

 

이명현

 

오늘날처럼 사람들이 정신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혼란스러워 하던 시대는 일찍이 없었다. 도대체 왜들 이리 법석을 떠는 것일까?

물론 우리는 한때 ‘보릿고개’ 라는 것을 겪었다. 가을에 수확하는 곡식 보다 한 계절 앞서서 수확하는 보리를 애타게 기다려야 했다. 밥 굶기를 떡 먹듯 하던 그때, 이른바 춘궁기에는 굶어 죽은 사람들이 적잖았다. 그렇게 우리는 가난에 허덕였다. 요즈음 북쪽에서 들려오는 소식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보릿고개’가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이 땅을 가득 채우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보릿고개’ 가 벌써 옛 이야기처럼 되어 버린 오늘에 이르기까지 공짜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한 가난과 연명에 허덕이며 엄청난 비지땀을 흘려야했다. ‘빨리 빨리’를 외치며 헝그리 정신에 몰입했었다. 그렇게 이 땅에는 ‘빨리 빨리’ 헝그리 정신의 바람이 심하게 몰아쳤다. 그렇게 해서 이룩한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들이 주위에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 가뭄 때 벌어진 흙바닥처럼 얼굴에 주름살이 우글쭈글한 어르신네들이 바로 그런 역사의 주인공들이다. 그분들의 헝그리 정신이 바로 오늘의 허둥지둥하는 몸짓의 시발점인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의 한국땅위의 여러 가지 활동 무대 위에서 숨 가쁘게 뛰는 사람들에게도 전염되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한 마디로 극성 DNA가 한국인의 유전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유전자가 모두 보릿고개 넘어서기로부터 진화되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운 것일 것이다. 오늘날 허둥대기로 말하면 어찌 우리뿐이겠는가? 지구촌 구석구석마다 오늘날 허둥대지 않는 곳이 없어 보인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허둥대는 것일까? 나는 감히 한마디로 잘라 말하고 싶다. 오늘은 바로 ‘문명의 대전환 시대’이며, 바로 그 대전환 때문에 지구촌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라고.

문명의 대전환이라?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인류의 삶은 천지개벽 하듯 여러 차례 큰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넘실거리는 문명의 물결 속에는 언제나 크게 요동치는 큰 물결이 있었다. 문명의 그 큰 물결이 요동치는 시대, 그것이 문명의 대전환기라고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숨 쉬고 사는 오늘의 시대라는 이야기이다.

문명의 대전환기는 인간의 삶의 방식이 그 이전과는 엄청나게 바뀌는 시대이다. 극적으로 표현하면 ‘거꾸로 뒤집히는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요동 때문에 우리의 속도 온통 뒤집힌다. 그러니까 정신 차리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다.

 

우리가 막차를 올라탄 문명의 열차 이름은 산업문명이라 부른다. 그것이 1970년대의 일이었다. 지금부터 30-40년 전 일이며, 바로 우리가 ‘산업화’라 부르는 시기이다. 혹자는 그것을 박정희 장군의 덕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그게 어찌 한 사람의 힘으로 이룩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피와 땀을 흘렸던 그 당시의 이 나라의 일꾼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런 대역사大役事를 이룩할 수 있었겠는가? 오늘날 얼굴에 깊이 파인 주름살을 얹고 다니는 그 어르신네들의 노고가 바로 그것을 이룩해낸 힘이 아니었던가! 대역사를 일구어낸 일꾼 가운데는 정주영, 이병철, 구자경 같으신 어르신도 물론 계셨다.

우리는 서구에서 출발한 산업문명의 열차를 뒤늦게 올라탔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새로운 문명의 열차의 고동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새 문명의 변방에서 허덕이는 신 문명의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면, 얼른 올라타라고 말해주는 신 문명열차의 고동소리이다. 보릿고개를 넘어 산업문명의 마지막 열차를 올라타느라고 허겁지겁했던 우리가 지금은 신 문명의 새 열차를 올라타려고 허겁지겁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이 땅의 한국인들이 중첩적으로 허둥대는 몸자세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사연이다. 그래서 나도는 구호 가운데 하나가 ‘선진국 대열로 헤쳐모여!’ 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이 땅위에서 떠들어대는 ‘보수’ 니 ‘진보’ 니 하는 말들의 역사적 연원은 알고 보면 지난 19세기에 태생된 말들이다. 신 문명의 문턱에서 그것을 가지고 논쟁거리로 삼는 것은 역사의 지각생들의 행태에 불과한 것이다. 새 역사의 진군나팔 소리가 한창 울리고 있는 때에 흘러간 옛 노랫가락 감상에만 젖어 있는 것은 정말 때에 어울리지 않는 짓이다.

“새 술은 새 자루에 담아야 한다.”라는 말은 동서고금의 금언이 아닐 수 없다. 새문명의 자루에 담아야 할 새 술의 이름이 바로 신 문법(Neo-Grammar)이다. 신 문법이란 새로운 발상, 새로운 행동양식, 새로운 삶의 틀, 새로운 제도를 통칭하는 말이다. 인류의 역사, 인류의 문명은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탐험의 발자취이었다. 새 길을 찾아 선두에 나서는 자가 역사의 선구자, 문명의 선도자였다. 그들이 바로 새로운 삶의 궤적을 만들어 가는 자들이며, 길을 개척하며 만들어 가는 삶의 총체적 궤적이 바로 문명의 문법이다. 모든 문명에는 거기에 알맞은 문법이 있다. 새로운 문명을 찾아 나선다 함은 옛 문법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문법의 창조자가 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를 향해 인류 문명은 신호를 보내고 있다. 새 문명의 열차가 떠날 때가 되었다는 신호이다. 신 문명의 새 자루에 담아야 할 신 문법의 창안자가 되어야 할 때라는 신호이다.

 

 

서울대 명예교수, 심경문화재단 이사장, 계간 ≪철학과 현실≫ 발행인.

성숙한사회가꾸기모임 공동 상임대표.

2008 세계 철학자대회 조직위원회 의장, 한국철학회장, 교육부장관 역임. 저서:

≪열린 마음 열린 세상≫ ≪신문법 서설≫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