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사토를 듣고 흘린 눈물

 

김광일

 

지난 7월 17일 나는 일본 동북부 지방에 있는 미야기 현의 센다이 시에 있었다. 이 날은 ‘롯콘사이(六魂祭)’ 축제 폐막식이 있는 날이었다. 3월11일에 있었던 동일본 대지진 때 숨진 희생자들의 영혼을 6개 현이 합동으로 달래는 축제였다.

섭씨 34도를 웃도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오후 4시 반쯤 센다이 시청 앞 시민광장에서 라이브 스테이지로 폐막 공연이 펼쳐졌다. 일본의 음유시인이라는 다케가와 유기히데 씨가 직접 건반을 두드리며 청중들을 흥겹게 했다. 그는 청중들에게 자신의 노래를 따라 부르도록 유도하면서 청중을 두 파트로 나누어 시합을 시키면 큰 목소리가 나온다고 했다. 과연 그는 청중을 두 파트로 나누어 경쟁을 부추겼고, 사람들은 목소리를 돋우어 흥을 냈다.

2만여 명의 희생자를 낸 대지진 이후 슬픔을 달래고 용기를 내며 희망을 다시 품어야 하는 절박함 속에서 청중들은 잠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삶이란 그런 것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이어 등장한 가수가 한국계로 알려진 고야나기 루미코 씨였다. 루미코 씨는 59세의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직도 섹시한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가슴이 깊게 파인 하늘색 무대 의상을 입었는데, 치마는 반투명하여 속내의가 훤히 드러났다. 루미코 씨는 과연 인기 절정의 가수답게 열렬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다시 태어나도 너만을 다시 사랑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노래를 2곡 부르고 난 후 그녀는 마이크에 대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내가 좋은 일을 하는 것 같다. 악수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있었다. 나도 울었다. 눈물이 난다. 참는 것이 가장 힘들다. 참지 말고 울어라. 나도 어려울 때 많았다. 내 얘기가 주간지에 도배됐을 때도 있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자기를 믿고 내일을 향해 살아가자.”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모습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의연하게 루미코 씨의 말을 들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주변에 모든 사람들은 알게 혹은 모르게 서로를 돕고 있다.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어느 지방 사람이든지 그들은 그들의 풍토에 걸맞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섬약한 민족이란 없다. 밝고 강하고 의지가 뚜렷하고 그리고 주변사람들에게 친근감을 표시할 줄 아는 사람들만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루미코 씨의 순서가 끝나고 이번엔 하치겐 중학교 합창단 소년소녀들이 무대에 올라왔다. 3월19일 전국합창대회가 있었는데 대지진과 쓰나미 때문에 대회는 취소됐고, 대신 이날 무대에 오른 것이다. 이들이 부른 곡목은 ‘내일이라고 하는 날이’였다. 행복이 오는 것을 믿으며 지금은 괴로워도 앞으로 희망을 안고 열심히 살아보자는 내용이었다.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보자는 가사였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이들은 남학생이 20명, 여학생이 32명이었다. 아이들은 미소를 잃지 않고 가볍게 상체를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엄숙하면서 훈훈했고, 가슴이 뭉클했다.

이어 센다이 시장이 마이크 앞에 섰다. 여성 시장이었는데, 그녀는 본격적인 한 여름에 들어가는 때에 손님들을 모시게 돼서 미안하다면서 많은 청중들이 온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끝 순서로 모든 출연진들이 빠짐없이 무대에 올라와 ‘후루사토’(고향)이라는 노래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한일 공동 모임이 있을 때면 일본 측 참석자들을 환영하는 뜻에서 한국 대표들이 불러주기도 했던 노래다. 우리로 치면 이원수의 ‘고향의 봄’에 해당하는 노래다. ‘토끼를 쫓던 그 산, 붕어를 잡던 그 개울/ 꿈에도 그리며 잊지 못하는 내 고향/ 아버지 어머니는 잘 지내시는지, 동무들은 여전한지/ 비가 오고 바람이 분다 해도 떠오르는 내 고향/ 뜻을 이루고 언젠가는 돌아가리/ 푸른 산의 내 고향 물 맑은 내 고향’

나는 대지진으로 집이 망가져 버려 지금은 닭장 같은 가설주택에서 살고 있는 일본 동북부 지방의 주민들과 그들의 표정을 떠올렸다. 그들이 어서 빨리 고향 재건의 뜻을 달성하고 언젠가는 돌아가리라는 희망을 이루게 되기를 빌었다.

 

 

현 조선일보 논설위원.

조선일보 파리특파원, 문화부장, 국제부장, 부국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