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에는 돼지 꼬리가 있다

 

강호형

 

돼지를 보면 까닭 모르게 친근감이 간다. 푸짐한 엉덩이 위에서 계집아이 댕기꼬리처럼 팔랑거리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앙증맞은 꼬리를 보면 미소마저 머금게 된다.

우리 속담에 “돼지꼬리 잡고 순대 내놓으라고 한다.” 는 말이 있다. 조급하게 굴지 말라는 경구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이지만 순대보다 돼지꼬리가 더 맛있는 안주감이란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90년대 중반쯤이었을 것이다. 군산에 사는 라 형을 서울 종로에서 열린 어느 문학행사장에서 만났다. 워낙 호방한 성격에 50년을 취해서 살았다는 주태백이인 데다가, 그 동안 내게 지운 술빚이 약차한 터라, 섬으로 받은 걸 되로 갚을망정 맨입으로 보낼 수는 없었다.

마침 만난 곳이 내가 일하는 사무실 근처여서 일대의 술집 치고 낯선 주인이 드물 정도인터라 어느 술청으로 모실까 궁리 중인데, 라 형이 눈치를 채고,

“성(형), 여기 어디 돼지꼬리 파는 집이 있다며?”

했다. 내가 나이 두어 살 더 먹었다고 그는 나를 꼬박꼬박 ‘성’이라고 부른다. 이름난 수필가이자 소설로도 일가를 이룬 그가 설마 ‘형’을 몰라서 그렇게 부르지는 않을 터. 나는 그가 제고장 사투리를 살려 부르는 ‘성’이란 호칭이 정겨워서 더 각별하게 지내는데, 언젠가 전주에서 만나 마시다가 내가 서울에는 돼지 꼬리를 파는 술집도 있다고 자랑삼아 한 말을 잊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삼겹살, 갈매기살, 족발 다 제치고 하필 꼬리라니…. 그래도 나는 그 말이 반가워서,

“그래, 거기가 좋겠다!”

하고 맞장구를 쳤다. 본래 돼지 꼬리는 족발이나 순대만큼도 대접을 못 받는 폐기물에 가까운 부위여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나 고기 대접을 받았다. 그거나마 어쩌다 한 번씩 얻어먹으며 가난을 이겨낸 사람들은 대개 가난하던 시절에 대한 향수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라 형으로 말하면 글뿐만 아니라 사업으로도 성공해서 이제는 부자 소리를 듣지만, 젊어서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런 음식, 그런 분위기가 성정에 맞는다는 걸 나도 안다. 게다가 나와는 특별히 체면, 격식을 차릴 필요가 없는 사이이고, 그 값이 군산 부자가 기절할 만큼 싸기도 하니 늘 주머니가 가난한 내 처지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지하철 1, 3, 5호선이 교차하는 종로3가역에 인접한 종묘공원은 인근 낙원동에 있는 탑골공원과 더불어 수도권의 노인들이 다 모이는 쉼터다. 일대에는 그들을 겨냥한, 터무니없이 싼 음식점이며 이발소들이 많다. 그 무렵의 어느 날, 시인 민 모 선생을 만났을 때는 만 원짜리 한 장으로 해장국 두 그릇에 소주 두 병을 마시고, 셀프 서비스 찻집에 가서 커피 한 잔씩을 더 마시고도 돈이 남아서, 남은 돈을 들어 보이며 웃고 헤어진 적도 있다.

화장품을 담았던 플라스틱 병을 잘라 만든 ‘앵경함’(‘함’에 그렇게 씌어 있다)에 돋보기까지 비치한 내 단골 이발소에서는 요즘도 이발료가 3500원이다. ‘앵경함’식의 서툰 표현과는 달리 나이 든 이발사들에게서는 노련미가 풍긴다. 자질구레한 부대 서비스가 생략되어 2-30분이면 끝난다. 이런 분위기에 맛을 들이면 돈이 있어도 비싼 집은 피하게 되는 것이 술꾼의 습성이다. 하지만 이런 재미도 이곳 종로통이 아니면 누리기 어려운 혜택이다. 자식들에게 감질나게 받은 용돈으로 소일하는 노인들에게는 가히 낙원이 아닐 수 없다. 원근의 노인들이 공짜 전철을 타고 다 이곳으로 모이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수혜자의 한 사람인 나도 이발은 혼자 혜택을 누리지만 싸구려 술집까지 혼자가기는 멋쩍어 늘 아쉽게 지나쳤다. 그렇다고 아무나 그런 집으로 안내할 수가 없어 그럴만한 술친구를 찾고 있던 참이기도 했다.

예의 돼지꼬리를 파는 집은 종묘공원 앞에 있다. 서있는 자리에서는 지척이라 걸어가자고 하니 얼른 한잔 하고 바로 내려가야 한다며 곁에 선 청년에게 눈짓을 했다. 곧 4000cc급 검은색 세단이 대령했다. 우리는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돼지 꼬리를 찾아갔다.

공원은 노인들로 북새통을 이루어 떠들썩하고, 대여섯 평이나 되는 술청 안에도 노인들이 그득했다. 술청으로 들어서며 우선 진열대 위에 늘어놓은 안주부터 살폈다. 홍어무침, 호박전, 북어구이, 닭발볶음…. 좌판 한구석에 놓인 돼지꼬리를 가리키며 호기 있게 외쳤다.

“이거 몇 개하고 소주 좀 주시오.”

기름때가 번질거리는 식탁에 마주 앉자 곧 술과 안주가 나왔다. 음식이 되어 나온 돼지 꼬리는 원형보다 더 볼품이 없었다. 안 먹어본 사람은 그 징그러운 물건의 정체가 뭔지 짐작조차 못 할 터이지만 라 형은 한눈에 알아보고 반색을 했다. 우리는 우선 술잔을 부딪쳐 목을 축이기가 무섭게 안주 하나씩을 집어 들었다. 여기서 포크나 젓가락 같은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는 건 돼지 꼬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소주 서너 병에 돼지 꼬리 서너 개씩 뜯고 나서 우리는 서로 번들거리는 입을 쳐다보며 유쾌하게 웃다가 나왔다.

그새 어둠이 내려 썰렁해진 공원에 아직도 남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돼지꼬리 잡고 순대 내놓으랄 만큼 급히 돌아가는 세상에 돼지꼬리만한 대접도 못 받고 밀려나, 할 일 없고 갈 곳 없는 노숙인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경적이 울려 돌아보니 라 형이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현재 계간 ≪좋은수필≫ 주간. 황의순문학상(2008), 현대수필문학상(1997) 수상.

수필집 ≪돼지가 웃은 이야기≫ ≪붕어빵과 잉어빵≫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