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山行)

 

이동렬

 

우리 부부는 가끔 주말 ‘등산’을 간다. 등산이라는 단어에 따옴표를 붙인 이유는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산의 정상을 향하여 두세 시간 기어오르는 등산이 아니라 기어오를 주봉主峰도 없이 그저 나무들로만 꽉 들어찬 밋밋한 언덕을 오르내리다가 개울을 건너 다시 언덕으로, 평지로 돌아다니는, ‘등산’이기 때문이다. 자주 가는 곳은 토론토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거리,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500Km 정도 뻗쳐있는 나이아가라 단층애(escarpment)에 속하는 학클리 계곡(Hockley valley). 이 계곡에 몇 시간 돌아다니는 것을 두고 우리는 등산이라고 부른다. 산행山行, 혹은 하이킹(hiking)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등산이란 말이 가장 권위 있고 거창한 말로 들리지 싶어 나는 이렇게 부른다.

등산이란 일본 사람들이 남기고 간 말이라 한다. 우리 선조들은 등산이란 말 대신 유산遊山이란 말을 썼다.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유산은 ‘산에서 노닐다’는 말이다. 그러나 ‘논다’는 의미보다는 ‘배운다’는 의미가 더 짙다. 즉 산을 거닐면서 느끼는 흥취는 세속적이고 저속한 이해타산에서 오는 흥취가 아니요, 산을 오르는 사람의 뜻 또한 천진하고 진실해서 먼지 구덩이에서 더러워진 우리 마음을 산이 말끔히 씻어준다는 말이다.

선조 때의 큰 선비 남명(南冥) 조식의 ⟪남명집⟫을 보면 지리산(두류산)등산에 대해 쓴 글이 있는데 그 글의 제목이 <유遊 두류록>이지 <등 두류록>이 아니다. 조선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을 세운 주세붕이 경상북도 봉화와 안동 경계에 있는 청량산淸凉山에 오르고 나서 쓴 책 제목을 보면 그도 남명과 마찬가지로 <유遊 청량산록>이지 <등登 청량산록>이 아니다.

남명이 지리산을 오르는데도 옛날 높으신 분들의 산행 관습을 따라서 기생妓生과 종 여럿, 악사들이 피리와 퉁소, 꽹과리를 들고 따라다녔다니 산을 오르는 것인지 산에서 <열린 음악회>를 벌이자는 것인지 아리달쑹하다. <유遊 두류록>을 읽다가 다음 구절이 눈에 띄었다.

 

산 속에는 나이를 귀하게 여기고 벼슬을 숭상하지는 않으므로 술잔을 돌리거나 앉는 자리를 정할 때도 나이를 기준으로 하였다.

 

벼슬의 높고 낮음이 연치年齒의 많고 적음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다는 것을 산을 오르며 배운다는 것을 산에서 노닌다는 말의 참 뜻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인자요산(仁者樂山 : 어진 자는 산을 좋아 한다) 이라는 말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등산’은 높이 100미터도 안 되는 언덕을 오르면서 ‘지금 나는 산을 오르고 있다 ’고 부풀려 생각하고, 언덕에서 비탈길을 내려갈 때도 ‘나는 지금 산을 내려가고 있다’고 부풀려 생각한다.

중국 당대의 문장가 유우석은 그의 불후의 명名산문 <누실명陋室銘> 첫 구절을 ‘산은 반드시 높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요, 물은 깊은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山不在高, 水不在深)’는 말로 시작했다. 산이 가진 풍모와 풍기는 정취가 중요한 것이지 산의 높낮이가 중요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계곡 숲속에서 개미처럼 곰실곰실 다니는 우리 등산 회원들에게는 더없이 고마운 말. 그러니 학클리 계곡은 우리 상상에 따라 백두산도 되고 지리산, 한라산, 록키, 그리고 저 멀리 알프스도 되는 것이다. 인간은 에베레스트 산에 올라갔다 와서는 우리가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떠벌이가 아닌가. 그 장엄한 에베레스트는 인간들이 자기 머리 위에 올라 서 있다는 사실조차 못 느낄 텐데도!

우리 등산 회원은 날씨가 좋은 날은 60명 가까이 나온다. 그 중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겨울에는 영하 20도의 강추위, 여름에는 4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에도 산행에 나서는 전천후 결사대원들이 수십 명 된다. 그들은 젊은 시절 지리산 빨치산 대원이었던가. 70이 넘는 노인들이 험한 바위투성이의 길을 휙휙 난다. 그 중심에는 등산 회원들의 결속을 다지고 등산클럽의 프라이드를 지키는, 내가 우수개소리로 나폴레온(Napoleon)의 일가라고 놀리는 나羅 씨가 있다.

우리 부부는 다른 회원들과 출발은 같이 하지마는 목적지의 1/3도 못가서 점심을 먹고 돌아와 버린다. 이게 산행인가, 등산, 유산 아니면 야외 점심인가? 게다가 날씨가 너무 춥다고, 눈, 비가 온다고 …, 무슨 무슨 이유로 빠지고 나면 일 년에 산행하는 주말 52번 중 10번이 될까 말까다. 실로 우리 등산모임의 지진아요 문제아다.

하루 수십 통씩 내게 오는 전자 우편함을 열면 ‘행복하게 늙는 법’ ‘오래 사는 법’ 등 충고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다. “걷지 않으면 빨리 늙는다.” 같은 말은 양순한 충고로 볼 수 있으나 “걷지 않으면 죽는다.”는 분명 협박성 경고다. 협박이 무서워 걷다보면 우리 부부의 산을 오르는 재미도 신명도 점점 시들어 질 위험이 있다. 아, 버둥대는 이 문제아 등산 회원에게 이 얼마나 원통한 일이냐.

 

 

캐나다 웨스턴 몬타리오대 명예교수. 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수필집 ≪꽃 피고 세월 가면≫≪청고개를 넘으면≫등. 현대수필문학상(1998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