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시계

 

김형진

 

예닐곱 살쯤의 사내아이입니다. 눈썹이 유별나게 짙어 보이는 건 하얀 이마 때문일 것입니다. 짙은 눈썹 아래 까만 눈동자가 새벽 샘물처럼 맑습니다. 그 눈동자가 벽에 걸린 시계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쉼 없이 끄떡끄떡 잘도 가는 초침에 매료되어 있는 듯도 싶습니다. 한참 동안 올려보다가 두 손을 들어 흔들며 “아, 아, 아.” 소리를 지릅니다. 시계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동감을 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초침의 쉼 없는 움직임에 감탄하는 듯도 싶습니다. 그것도 잠시, 다시 말 없이 시계를 쳐다봅니다.

한참 동안 그러고 있던 사내아이가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제 엄마에게 가 손을 잡아끕니다. 끌고 와선 벽에 걸린 시계를 손가락질합니다. 엄마는 금세 알아차리고 시계를 내려 거실 바닥에 놓아줍니다.

사내아이는 시계 앞에 쪼그리고 앉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일삼아 시계를 내려다봅니다. 지금 시계는 사내아이에게 난생 처음 보는 물건, 정신을 앗을 만큼 진귀한 물건, 아니면 보아도보아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이한 물건인 듯합니다. 손을 내밀어 시계를 만지기는커녕 시계에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 만큼의 거리를 두고 열심히 들여다보기만 합니다. 째깍째깍 초침이 들려주는 맥박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아니, 째깍째깍 소리에 취해 있는 듯도 합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릅니다. 사내아이는 또 “아, 아, 아.” 환성을 지르며 손을 들어 흔듭니다. 그러고는 또 시계를 내려다봅니다. 아까부터 소파에 앉아 있는 엄마는 소년의 환성을 못 들은 척 책에만 눈을 주고 있습니다. 사내아이가 시계 앞을 떠나 엄마 옆에 와 앉습니다. 엄마는 왼손으로 아들을 껴안습니다. 오른손에 책을 든 채 말입니다.

“우리 아들 왔어.”

“…….”

사내아이는 엄마의 왼쪽 가슴에 얼굴을 묻습니다. 엄마의 심장소리를 듣기라도 하려는 듯 말입니다. 엄마는 왼손으로 아들을 안은 채 책을 읽습니다. 한참 동안 엄마의 가슴에 안겨 있던 사내아이가 얼굴을 들더니 엄마의 오른손에 들려 있는 책을 봅니다. 아니 책 뒤표지에 그려진 광고 사진을 봅니다. 한참 보고 있다가 손을 들어 책을 빼앗으려 합니다. 엄마는 오른손을 들어 올리며 계속 책을 읽으려 합니다. 그런 다툼이 한동안 이어집니다.

“아아아….”

몸부림을 치며 소리를 지릅니다. 그때서야 아들을 의식한 엄마가 사내아이의 손에 책을 맡깁니다. 책을 들고 일어선 사내아이는 거실 창 앞으로 가 바닥에 책을 놓고 쪼그리고 안습니다. 앉아서 책 뒤표지의 사진을 들여다보기 시작합니다. 불빛이 환한 고층 건물의 원색 사진을 뚫어지게 들여다봅니다. 얼굴은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는 듯도 하고, 황홀경을 헤매고 있는 듯도 합니다. 입가엔 맑은 미소마저 번져 있습니다. 누구도 차마 간섭하거나 건드릴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에 그늘이 짙어갑니다. 여느 아이들이라면 한번 스쳐보면 그만일 광고 사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심취해 있는 아들의 모습….

엄마는 흐려지는 눈빛을 감추려는 듯 소파에서 일어서 주방을 향합니다. 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아아아….”

광고사진에 몰입해 있던 사내아이가 또 손을 들어 흔들며 환성을 지릅니다.

발코니에 서서 거실을 엿보고 있던 늙은이가 담배 한 개비를 뽑아 뭅니다. 담배 연기를 깊이 빨아들이며 소년 옆에 놓인 시계를 봅니다. 가느다란 초침은 끊임없이 잘도 가고 있습니다. 순간 늙은이의 머릿속에 한 생각이 스칩니다. 저 시계 속에서 아주 작은 나사 하나가 헐거이 조여 있거나 빠졌다면…? 소년은 고장 난 시계일는지도 모릅니다. 아주 작은 나사 하나만 제대로 조여 주거나 제 자리에 끼워주면 째깍째깍 잘 가는 시계일는지도 모릅니다.

 

 

≪계간수필≫로 등단(97년). 수필평론가. <토방>동인.

수필집 ≪흐르는 길≫, ≪종달새≫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