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고선윤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온 친구가 자신의 고생담을 늘어놓았다. 1년에 두 번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를 빼고는 햄버거 외에 다른 것을 먹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서부의 사막을 달리던 중 자동차가 멈추어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죽는지 알았다고 엄살을 부린다.

“사치스럽게 살았구먼, 차도 몰고. 야, 내가 일본에서 공부할 때는 한 번도 다리를 펴고 잔 적이 없다.”

방이 워낙 작아서 대각선으로 누워도 다리를 제대로 펼 수 없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믿거나 말거나 웃고자 하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술잔을 기울였다.

얼굴이 빨갛게 물들고 모두가 솔직해지면서 유학시절 정말 힘들었던 것은 고장 난 자동차도 새장만한 집도 아닌 ‘외로움’이었음을 고백했다. ‘외로움’. 목적을 가지고 떠난 이국에서 혼자라는 사실이 ‘외로움’으로 표현되었고, 누구나 힘들었을 것임은 의심할 바 없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외로운 일이야.”

만점에 가까운 토플 점수를 자랑하면서 떠난 유학이지만, 그래도 영어가 어렵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통하지 않는 말’이 단순히 언어, 즉 영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을 요하지 않았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그 많은 신들, 성경에 등장하는 그 많은 인물들이 가지는 다각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논문이나 전문서적이 아닌 일상 대화 속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그들의 이름이 비유하고자 하는 내용을 바로바로 떠올릴 수 없었는데, 그것이 그 집단에서 소외되는 요인이었고 바로 외로움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들이 웃을 때 함께 웃을 수 없었고, 함께 공감할 수도 없었다. 문학을 전공하는 친구인지라 지나치게 감상적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를 외롭게 한 것은 고급 지식을 요하는 그리스 로마신화의 신들과 성경 속의 이름만은 아니었을 게다. 그것을 강조한 것은 그래도 공부한다는 사람의 자존심이었을 거고, 그를 진정 힘들게 한 것은 평범한 대화 속에서 이해할 수 없는 혹은 다르게 이해되는 숫한 단어들이었을 것이다.

“같이 웃어주지 그랬어. 원래 머리 나쁜 놈은 세 번 웃는다는데. 남들 웃을 때 웃고, 나중에 알아차리고 웃고, 나 자신이 한심해서 웃고. 너도 그놈들한테 ‘야, 조조 같은 놈’이라고 해주지 그랬어. 세 번 웃게.”

이것도 위안이라고 한마디 해주고 다시 술을 권했다.

 

영어는 분명 우리말과 다르다. 어원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말 하는 사람들의 생김새가 다르다. ‘다르다’는 것이 당연하고 그렇게 인식한다. 그래서 내 친구는 참 외로웠던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말과 같은 알타이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는 일본에 대해서는 ‘다르다’는 것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한류라면서 우리 드라마가 일본 안방을 차지함과 동시에 우리나라에서도 일본드라마를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주인공들 역시 우리 생김새와 별반 다르지 않다. 기럭지의 가로세로 비율도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일본에 대해서는 다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비슷한 생김새의 그들이 다른 반응을 하면 당황하고 오히려 섭섭하다고 한다.

나랑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나랑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은 사람이 내뱉은 말이 내가 이해하는 바와 다를 때, 나는 그들 집단에서 소외되고 역시 외로워진다. 이건 처음부터 ‘다르다’고 생각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능가한다.

 

한일 비교표현을 연구하는 민성홍 박사는 한국과 일본의 보편적 의식의 차이를 사물에 대한 인식의 차이 즉 연상(聯想)되는 단어에서 찾은 적이 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장군이라면 이순신, 이상적인 여성이라면 신사임당, 봄을 상징하는 꽃이라면 개나리와 진달래, 산이라면 금강산, 계절이라면 가을을 연상한다. 약속한 건 아니지만 수업시간 학생들에게 질문을 해도 십중팔구 이렇게 답한다. 이에 비해 일본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임진왜란의 그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의 미모의 아내 요도키미, 벚꽃, 후지산, 봄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단어의 차이만이 아니라 여기에는 분명 시각의 차이가 있다. 서로 공감할 수 없는 시각의 차이. 아무리 두 나라의 보편적 의식을 대표하는 장군이라고 하지만 이순신과 히데요시가 가지는 이미지는 다르다. 신사임당과 요도키미 역시 그렇다. 가치관이 다르고 사물을 보는 견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연상게임을 한 적이 있다. ‘피망’이라는 단어에 나는 ‘고추’라는 단어가 연상되었고 많은 학생들이 그렇게 답을 적었다. 그런데 일본에서 온 유학생 아사코는 ‘단호박’이라는 단어를 적어서 모두 의아해 했다. 이유는 둘 다 속이 비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일본에서는 엉뚱한 말을 하거나 바보 같은 짓을 하면 속이 비었다는 뜻으로 ‘피망’ 또는 ‘단호박’같다고 놀린다는 설명을 해서 ‘피망’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놀라워했다. 이 교실에서 아사코 역시 우리와 공감할 수 없는 외로움을 느꼈을까.

 

‘말이 통한다’는 것은 문법을 알고 단어를 알아서 그 나라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 속에서 그들과 공감할 수 있는 지식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 집단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그들의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어야 비로소 통한다. 그리고 비로소 공감할 수 없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일어일문학 문학박사, 현 백석예술대학 외국학부 겸임교수.

주요저서(번역서) : ≪3일만에 읽는 일본사≫(서울문화사), ≪세상에서 가장 쉬운 철학책≫ (비룡소) 등 50여 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