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러지

 

이난호

 

이삿짐을 푼 지 열흘 만에 다시 짐을 싼 적이 있다. 30여 년 전 성환읍엔 셋방이 드물었다. 남편의 느닷없는 전출로 서둘러 구한 깜냥으론 요행 방이 맘에 들었다. 기차역과 다붙어 있다는 것, 유일한 쪽창이 골목으로 뚫려있다는 것만 빼면 횡재다 싶었다. 초여름인데도 웃옷 단추를 목밑까지 채운 주인아주머니는 내 등에 업힌 둘째를 살며시 빼내 업었고 흰 노타이 차림인 바깥주인은 휘파람을 불며 연탄 장사와 함께 연탄을 날라줬다. 흡사 성가成家시켜 내보낸 당신 아들딸을 맞는 분위기였다. 나는 단박 전세금을 마련하기까지 눌러 살리라 결심한다. 아홉 살의 여자애를 만난다.

첫날, 역에 안 가? 애 젖 안 먹여? 주인아주머니가 채근했을 때 나는 그 애를 흘낏했다. 재차 흘낏했다. 비로소 내 큰애에게서 떨어져 나온 여자애의 눈은 아직 멍했다. 땟국에 전 헐렁한 어른 윗도리를 입고 목이 가느다란 애를 업고 있었다. 그 옆에 하나 더, 머리 모양새나 입성으로 봐서는 얼핏 성性이 분별 안 되는 아이가 포대기를 잡고 섰는데 엇비슷 큰애 또래였다. 나는 분연히 고개를 저었다. 결코 내 애들과 섞고 싶지 않은 이웃이었다. 큰애를 유치원에 넣었다.

기차역은 생각보다 바투 있었다. 주인집을 빼고는 빙 둘러 허술한 임시가옥이었고 거기 사는 여인들 대부분은 새벽부터 밤까지 역에서 개개다가 기차가 닿으면 차창에 달라붙어 외쳤다. 성환 명물 사과 있어요. 삶은 계란이요. 기차의 속력을 따라 한참씩 더 달리는 그들 표정은 뜨악했고, 힘찼지만 애조哀調인 목소리는 거북했다. 여자애의 엄마도 그 중 하나였다. 그때 나는 내 애들 기르기에 나름으로 최고 최선을 지향했던 판, 학령기의 딸에게 애를 업혀 진종일 골목에 세우는 어미는 이유 불문코 이물異物이었다. 혐오감은 어이없게도 넌 왜 하필, 애먼 여자애를 구박하는 심사로 뒤틀려 돌아갔다.

골목을 지키던 여자애는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큰애를 따라 대문 앞까지 왔다. 나는 얼른 큰애를 끌어들이고 문을 쾅 닫았다. 여자애가 큰애에게 쏠린다는 것만으로 그리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전에 살던 시골에선, 배불뚝이 몸으로도 그 애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을 모아 글을 깨우치고 율동과 노래를 함께 했다. 이제 큰애가 유치원에 갔고 작은애는 주인아주머니 차지가 되었다. 여자애에게 뭐든 해줄 수 있는데 문을 쾅 닫는다. 그러면서도 여자애가 업은 애와 포대기를 잡고 다니는 애를 겨냥하고 내 애들의 옷가지를 추린다. 어느 땐 여자애의 머리를 매만져줄 생각도 한다. 이 불가해한 이중성을 내 자신도 납득할 수 없었다. 언젠가 문득 두 얼굴의 나를 변명하려 견강부회牽强附會랄지, 핑계거리를 잡고 이어보긴 했다. -괜찮지? 내 상사의 목소리는 해고 통고 후에도 여전히 부드러웠다. 괜찮아요. 나는 웃었다. 닫힌 문 앞에서도 웃었다. 착한 내 수하手下가 어떡해요? 울먹였을 때 나는 무너졌다. 난 왜 하필, 속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 채 아직 나는 거기에 있었던 게 아닐까. 껴안을 수도 밀어낼 수도 없는 상황에서 아홉 살의 여자애로 엉거주춤.

짐 쌀 결심을 하기 바로 전날, 애들을 맞으러 나섰다가 역 쪽에서 급히 걸어오는 여자애의 엄마와 마주쳤다. 사모님이시냐 애가 아파서 젖을 먹이러 오는 길이다 묻지도 않는 답을 하며 여인은 좀 비굴하게 웃었다. 어둑한 방에서 앓는 애를 지키고 있을 여자애가 떠올라 뭘 좀 사다줄까, 빨래라도 거들어줄까 하다가 쾅 쾅 문을 닫았던 생각이 나서 그만 뭉갰다. 간식을 만들었다. 두 애가 먹고 남을 양이었다. 또 옆집 애들이 떠올랐지만 내가 왜 이래, 짜증을 내고 말았다. 주인아주머니가 큰애를 앞세우고 들어서며 유치원 애들 중에서 내 큰애가 제일 잘 생기고 제일 목소리가 크더라고 했다. 그를 따라 잠깐 웃고 두 애를 목욕통에 넣었다. 그들이 희희낙락 하는 모습을 보며 너희들은 행복하구나. 나는 마치 남의 애들을 부러워하는 투로 뇌고 있었다. 거기에 옆집 애들을 함께 넣고 싶었다. 실컷 희희낙락토록 내버려뒀다가 하나씩 건져내어 뽀송한 옷을 입혀주고 싶었다. 그뿐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새벽, 끔찍한 욕설이 쪽창을 넘어왔다. 따는 여자애의 엄마가 역으로 가면서 여자애에게 앓는 애를 맡기며 하는 위협조의 당부였다. 쭈뼛했다. 새벽잠에 곯아떨어진 큰애를 먼저 보았고 안 돼! 한 것 같은데 말 대신 울음이 터졌다. 어금니를 물고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속 나는 만신창이였다. 거듭 재생되는 욕설을 털어내려 머리를 쥐어뜯는 나, 애먼 여자애를 동댕이치며 넌 왜 하필, 패악을 부리는 나, 낯선 대문 앞에서, 난 왜 하필, 다음 말을 잇지 못하는 나. 사흘 후에 이사했다. 큰애가 기차역을 밝혀서, 라고 짐 싸는 핑계를 끌어댔을 때 주인아주머니는 가만히 나를 바라봤다. 무지르면 벌 받을 것 같은 눈, 버텨내지 못하고 외면했다. 그도 업힌 애를 치키는 척 언제든지 할미 보고 싶으면 오라며 딴청부렸다.

30여 년이 흘렀다. 그 새벽 한기寒氣는 여전히 서늘하지만 떼치려 않는다. 이을 수 없었던 말들을 참기 잘했다는 생각이다. 이제 내속에서 나오려는 말은 이렇다. -그때 나의 상사는 내 성정을 헤아려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해고 통고를 하느라 힘들었을 것이다. 그때 혼잣몸의 여자애 엄마는 언행이 그쯤 거칠어야 세 아이를 키워낼 것 같았을 것이다. 그때 고독한 아홉 살 골목지기에게 내 큰애는 온기였을까. 눈부심이었을까. 그때 서른 남짓의 풋내기 엄마에겐 욕말에 대한 유별난 앨러지가 있었다.

 

 

≪계간수필≫로 등단,

한국문협회원, 수필문우회원, 가톨릭문인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