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나라, 달아나라

 

권태숙

 

“구제역의 소용돌이 속에서 연기되었던 소싸움 축제가 마침내 개최되었습니다.” 기자의 목소리가 좀 들떠 있다. 지난겨울을 힘들게 했던 그 역병의 피해는 또 다른 곳에도 있었던 모양이다. 그 지방의 특수 문화제가 전국적인 관심으로 지역 발전에 이바지하기를 바라는 주최측의 노력이 함께 보도되었다. 새로 조성된 돔형식의 경기장과 관람객, 힘을 겨루는 두 마리의 소가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한다. 다시 관중의 면면에 맞춰졌던 카메라의 포커스가 점점 싸움소로 다가가더니 마침내 이마를 맞댄 두 소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아니, 저건 소가 아니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명종이 울리듯 튀어나온 말이다. 뿔을 서로 걸고 미는데, 얼굴과 목덜미는 사나운 근육이 솟아나서 털가죽이 일그러져 흉측하게 변했다. 마치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수십 만 년 전의 동물을 보는 것처럼 낯설다. 흰자위가 확대된 눈 속에서 조그맣고 똥그란 검은 눈동자가 곧 불거져나올 것 같다.

‘그래 그건 네 눈이 아니야, 긴 속눈썹 아래 깊고 커어다란 검은 눈이 선한 표정을 짓는 그런 눈이 아니야.’

그렇다고 적개심이 담긴 것도 아니다. 전의로 불타는 눈도 아니다. 화가 뻗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저 맹목적으로 원하지 않는 일에 덤벼드는 몽매함이 가득하다 할까.

‘네 눈이 슬프다. 넌 무슨 생각을 하는 거니.’

아득한 옛날부터 길들여진 너. ‘가축’ 하면 먼저 네 이름이 불리곤 한다. 쟁기 끌어 논밭 갈기, 수레에 묶여 짐 나르기, 험한 일 힘들어도 주인이 등을 쓰다듬어 주면 참고 눈 끔벅였어. 장난꾸러기 아이 손에 끌려갈 때도 순순히 따라가고, 쇠파리들이 달라붙어 귀찮게 해도 이리저리 꼬리 휘두르며 순한 눈 굴리던 너다. 그래서 너를 칭송하는 수많은 문필가가 유순하고 과묵하고 인내심 많음을 다투어 노래했어. 이광수는 “동물 중에 부처요, 성자다. 소는 사람이 동물성을 잃어버리고 신성에 도달하기 위해 가장 본받을 선생이다.”라고까지 말했지.

사찰에 걸어두는 심우도(尋牛圖)도 불성佛性을 상징한 너를 찾으려는 수행자들의 뜻을 표현한다는데…. 인도에서는 신성시해서 흉년이 들어도 너의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데….

지금 이런 모습은 너답지 않아.

차라리 스페인의 투우는 이해할 수 있어. 투우사가 죽거나, 네가 죽거나 해야 끝이 나는 싸움이니 생명을 건 한판 승부는 모든 동물의 본능이라 어쩔 수 없다고 봐. 게다가 투우는 가축이 아니고 초원에 방목하는 거칠고 용맹스런 들소를 어둠속에 가두었다가 태양아래 끌어내어 자극하는 싸움이라 들었어.

그런데, 너흰 모래판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사람들이 씨름을 하듯 겨룬다. 머리와 뿔을 이용하여 용을 쓰다가 하나가 달아나면 남은 자가 이기는 게임이다. 그래 그건 인간의 놀이에 너희가 희생양이 된 거지. 정말 미안한 일이야. 그래도 어떤 이들은 투우보다는 덜 잔인하다고들 한다. 죽을 때까지 하는 건 아니니까. 난 그렇게 생각지 않아. 너도 마찬가지일 거야.

투우는 적과의 사투이지만 너희는 동류끼리 원치 않는 싸움을 해야 하니까. 심지어 언젠가는 부자끼리 대전한 적도 있더군. 인터넷에 뜬 동영상에서 아들이 이겼다고 새로운 역사를 쓰듯 진행자가 떠들었지만, 아마 아버지가 져 주었을 거야. 우리 속담에도,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거든.

너는 하지 말아야 했어. 네 본성을 바꾸려는 인간과는 한판 붙어도 좋아. 붉은 깃발을 들고 네 성미를 돋우는 족속을 향해서는 마구 덤벼도 좋아.

하지만 네 동족과는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어. 네게 해코지를 하지도 너의 연적도 아닌 그들과는 결코 뿔을 맞대지 않아야 했어. 그렇게 시키는 이에게 반기를 들고 그를 향해 두 눈을 부릅떠야 했어.

네게 싸움을 종용하는 주인을 배신하는 일은 쉽지 않을 거야. 매 맞는 일도 쉽지 않을 거야. 맛있는 먹이에 대한 유혹도 떨치기 어려울 거야.

어쩔 수 없는 네 입장이 그런 눈을 하게 된지도 몰라.

눈은 마음이라고 했어. 보통 때의 그 선량한 눈, 그게 바로 네 눈이야. 지금은, 싸우고 싶지 않은데 그것을 거역할 수 없는 울분과 에라 덤벼보자 밀어보자는 막가는 맘이 보여 안타까워.

네 자신을 잊지 마.

차라리 경기장을 뛰쳐나가 버려.

달아나 버려.

 

 

≪계간수필≫로 등단(98년)

전 연서, 서울 성산여중 국어교사. ≪四季≫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