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조명 65회|

 

朴文夏의 <어떤 왕진>

 

 

사회    박양근

참석인원    19명

일시    2011. 6. 18.

장소    계간수필 사무실

정리    박영덕

 

 

어떤 왕진(往診)

 

우리 병원의 단골 환자인 김 사장 댁에서 왕진을 와 달라고 차를 보내 왔었다.

요즈음 불경기가 심하여 일반 환자들의 주머니 상태가 마치 7, 8월 가뭄에 말라붙은 논바닥같이 쪼들려서 외상치료外上治療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개업의開業醫들에게 김 사장같이 자가용차로서 왕진을 청하는 여유 있는 단골환자가 있다는 것은 저으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차는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지듯이 달려 유명한 D온천지의 산마루에 자리 잡고 앉은 김 사장의 화려한 저택 앞에 닿았다.

남향으로 아담하게 앉은 2층 양옥 앞에는 마치 여인의 화사한 치마폭같이 싱싱한 상록수들의 푸르름 속에 수를 놓은 듯 붉고 노란색깔의 철쭉과 개나리꽃들이 한창 봄빛을 자랑하고 있었다.

정원으로 창이 난 응접실에서 김 사장은 모닝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고 앉았다가 나를 보고는 그 육중한 몸을 일으키면서 반가이 손을 잡으면서 맞아 주었다.

“의사선생님들은 몸이나 아파야만 겨우 얼굴을 대하게 되니 그러다간 건강한 여인과는 평생에 연애 한번 못해 보고 늙어버릴 것 아니오?”

사교성 있는 김 사장의 농이 섞인 인사말은 언제 들어도 밉지가 않다.

“그래도 김 사장같이 걱정을 해주는 분이 있으니 고맙습니다. 그동안 서울 가셨다더니 언제 내려 왔어요?”

나는 김 사장이 내미는 ‘바이스로이’ 담배 한 가치를 뽑아 들고 불을 붙이면서 그동안의 소식을 인사 삼아 물었다.

“소위 세금이란 것을 또 좀 바치고 왔지요. 이 놈의 사업가들은 죽도록 긁어모아서는 항상 그 사람들에게 정치자금이라는 이름의 세금을 바쳐야만 좀 마음을 놓고 일을 할 수가 있으니, 마치 ‘재주는 곰이 하고 돈은 중국 놈이 먹는다’는 그 식이지요. 정치가들의 버릇이란 뭐 자유당 때나 지금의 민주당 때나 꼭 같더군요. 이래서는 아무리 바꾸어도 안 됩니다. 안돼요.”

그는 사뭇 흥분을 하여서 정치인들에게 대한 화풀이를 나에게라도 하려는 듯이 말소리를 높이었다. 웬만한 큰 사업이라도 하려면 탈세니 무엇이니 해서 괜히 팃거리를 붙여 긁어 먹으려고 날뛰니 사업가들의 고충도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다.

나는 아침부터 공연스레 골치 아픈 화제를 끄집어내어서 김 사장의 비위를 상하게 한 것을 후회하며 곧 말머리를 돌렸다.

“혹시 부인께서 또 몸이 편찮으신가요?”

김 사장의 부인이 고질인 신경통으로 가끔 나에게 치료를 받고 있었던 참이라서 혹시 그 병이 또 재발이 되지나 않았나 싶어 나는 물어 보았었다.

나의 질문에 김 사장은 비로소 왕진을 청한 것을 깨달은 듯이 식모를 불러서는

“빨리 메리를 데리고 오시오.” 하고 일렀다.

조금 후에 식모가 큼직한 포인터 한 마리를 끌고 들어 왔다. 흰 바탕에 검은 바둑무늬가 띄엄띄엄 박히고, 큰 두 귀가 축 늘어져서 양쪽 뺨을 덮은 순종의 영국산 포인터는 두 눈에 눈곱이 끼고 콧물과 침을 줄줄 흘리면서 몹시 괴로운 듯이 킹킹 앓고 있었다.

“내가 서울에 가 있는 동안에 이놈이 병이 든 모양인데, 벌써 3, 4일 동안 아무리 맛있는 고기를 주어도 전혀 먹지를 않고 킹킹거리는 꼴이 자칫 잘못하면 70만환짜리 고급 개를 죽일 것만 같으니 약값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특별한 치료를 해서 좀 낫게 해 주십시오.”

김 사장은 마치 친자식의 병이라도 부탁을 하는 듯이 나에게 포인터의 병 치료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병원을 개업한 지 20년 동안에 별난 환자들을 많이 보아 왔지마는 아직도 이러한 뚱딴지같은 개환자의 치료를 부탁받아 보기는 처음인 것이다.

“아니, 내가 뭐 개병을 볼 줄 알아야 말이죠. 왜 수의사에게 보이질 않고선?”

의사와 수의사를 구별하지 못할 김 사장이 아니기에 나는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그에게 반문을 하였다.

“어디 부산바닥에 똑똑한 수의사가 있어야 말이죠. 똥개 따위나 치료하는 수의사들에게 맡겼다가는 공연스레 값비싼 박래품 고급 개를 죽일 것 같아서요. 증상을 보아하니 아마 ‘지스텐바’ 같으니 사람에게 쓰는 고급 항생제를 한번 써 보아 주십시오. ‘지스텐바’에는 항생제가 특효약이라고 하니깐요. 고급개가 되어서 사람에게 쓰는 고급약이 아니고서는 잘 듣질 않을 것 같아서 특별히 박 선생님에게 부탁을 드리는 겝니다.”

듣고 보니 딴은 사람보다 좋은 환경에서, 사람보다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고 자라난 팔자 좋은 개이기에 김 사장의 말도 일리가 있는 듯도 하였다.

그러나 아직 한 번도 사람의 병 이외에 가축의 병을 치료해 본 경험이 없는 나에게는 무리한 부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단골환자인 김 사장의 청을 거절하기에도 난처하여서, “그럼 우리 병원 옆에 내가 친한 가축병원의 수의사가 있으니 그 분과 서로 상의하여서 좋은 약으로 잘 치료하도록 하겠습니다.” 하고는 포인터를 우선 김 사장의 자가용차에 싣고는 돌아와서 나는 평소에 친면이 있는 H수의사를 찾아갔다.

H수의사는 우리 병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가축병원을 개업화고 있는 젊은 수의사로서, 우리 집 개가 아파서 두어 번 찾아가 치료를 받은 일이 있어 구면인 터이다.

내가 김 사장의 포인터를 끌고 H수의사를 찾아 갔을 때, 그는 마침 무슨 수술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외과의사인 나는 평소에 많은 사람들의 여러 가지 수술을 하여 왔으나 아직도 가축의 수술은 한 번도 구경조차 한 일이 없기 때문에 직업적인 호기심에서 가만히 H수의사의 등 뒤로 가서 그의 수술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게 주의하여 수술광경을 엿보았다.

그러나 이 순간, 나는 너무나 뜻하지 않았던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무판자로 만든 가축용의 수술대 위에 누워서 끙끙 앓으면서 유종乳腫의 수술을 받고 있는 것은 가축이 아닌 남루한 의복을 걸치고 있는 인간인, 어떤 가난한 중년의 부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마치 못 볼 것이나 본 듯이 흠칫 고개를 돌리고 그 곳을 물러섰다.

이때에 등 뒤에서 인기척을 느낀 H수의사는 뒤를 돌아다보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마치 큰 죄나 지은 사람처럼 당황해 하였다.

“아니 박 선생님이 웬 일이십니까? 요즘에는 하도 딱한 환자들이 많아서 병원엘 갈 형편은 못되고 나를 찾아 와서는 하도 애원을 하기에 이렇게 도리가 아닌 줄 알면서도 이러한 수술을 해 주고 있습니다.”

H수의사의 말에 나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고급개의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의사가 자가용차를 타고 다니어야하고, 사람의 유종수술을 수의사가 해야 하는 이 모순덩어리 땅에서 그래도 우리 의사들은 내가 ‘인술을 합네.’ 하고 떳떳이 얼굴을 들고 다니니 참으로 얼굴 간지러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나는 갑자기 가슴속이 답답해져서 H수의사에게 내가 그를 찾아온 용건을 간단히 이야기하고 김 사장의 포인터를 맡기고는 급히 가축병원을 나왔다.

서늘한 거리에 나왔으나 내 가슴속은 마치 무거운 납덩어리를 삼킨 듯이 답답하였다.

가축병원의 수술대 위에 누워 있던, 그 여인의 영양실조에 일그러진 얼굴은 언제까지나 내 망막에서 지워지지 않고, 그녀의 괴로운 신음소리는 무슨 원한의 주문같이 지금도 나의 고막을 바늘 끝으로 찌르고 있다.

(1961년)

 

|집중조명-좌담|

 

사회 : 안녕하십니까. 바쁘신 중에도 함께 해주신 회원들께 감사드리며 지금부터 ≪계간수필≫ 제65회, 가을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조명할 작품은 박문하 선생의〈어떤 왕진〉입니다. 지난 호에는 전주출신 최명희 선생의 작품을 조명했었는데, 이번에는 우연입니다만 영남출신인 박문하 선생의 작품을 조명하게 되었습니다. 의사이면서 수필가로 활동하셨던 박문하 선생은 약 300편의 수필을 남기셨고 부산에서 ‘수필’이라는 최초의 동인지를 만들어서 활동하셨었습니다. 안톤 체홉을 유난히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그럼 작가론은 정선모 선생님께서 수고하여 주시고 작품론은 김영만 선생님께서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정선모 : 박문하는 1918년 3월 13일, 부산 동래구 복천동에서 父 박용한, 母 김맹련 사이에 3남 2녀 중 막내인 유복자로 태어났으며, 호는 우하(雨荷)입니다. 부친은 한일합방 이후 을사보호조약에 울분을 품고 자결하였으며, 두 형과 작은 누나, 자형은 일제강점기에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습니다. 외가 또한 기장, 동래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한 가계家系이니 온 가족이 말 그대로 애국지사인 것입니다.

  형들과 누나가 중국으로 망명한 뒤 어머니와 단둘이 조국에 남은 어린 우하는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을 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독립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일제 관헌들의 시도 때도 없는 가택수사와 감시를 견디다 못해 중국으로 망명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일본 밀정의 함정에 빠져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둘째 형 문호는 5년 형을 받고, 우하는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본국에 송환됩니다. 부산 제2상업학교(현 개성고)를 가난으로 중퇴한 뒤 생업을 위해 병원조수로 일하게 되는데 이것이 후일 우하가 의사가 된 계기가 되었으며, 이 시기에 의학서적뿐 아니라 문학서적도 탐독하게 됩니다. 독학으로 의학검정고시에 합격하여 의사가 된 후 먹고 사는 문제가 시급하다고 생각하여 문학을 향한 열정을 접습니다.

  광복 후, 동래 수안동에서 <민중의원>을 열었으며,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의무장교로 지원하여 부상병 치료에 전념하였습니다. 군의관 대위로 제대 후 1958년 ≪현대문학≫에 수필 ‘공짜병 환자들’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수필을 쓰기 시작하여 ≪사상계≫, ≪신동아≫, ≪세대≫와 같은 잡지와 각종 신문, ≪자유문학≫,≪현대문학≫, ≪월간문학≫과 같은 문예지에 활발하게 글을 발표하였습니다.

  저서로는≪배꼽 없는 여자≫(1960년), ≪인생 쌍지탕≫(1963), ≪약손≫(1965), ≪엽서인생≫(1972) 등 4권의 수필집이 있으며, 1963년에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던 김정한, 김일두, 정신득 등과 수필동인회를 조직하여 동인지 ≪수필≫을 창간하여 16호까지 발행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필동인지입니다. 또한 1973년 부산문인협회 회장 재직 시 사비로 ≪부산문학≫, ≪在釜作家論≫, ≪作故詩人論≫ 등을 발간하기도 했습니다.

  1974년 부산시 문화상, 눌원 문화상을 수상하였으며 한국문인협회 부산지부장과 의협신보醫協新報 논설위원을 역임하였습니다. 1963년 의대생이었던 아들이 수영하다 사망한 뒤로 우울증에 시달려 술을 자주 마시게 되고 그것이 결국 건강 악화를 불러 1975년 58세 때 간경화증으로 별세하게 됩니다.

  우하가 열정적으로 글을 쓴 것은 1958년부터 1974년까지로 보입니다. 네 권의 수필집에 315편의 글이 실렸고, 동인지나 공저共著 등에 실린 것을 합치면 약 400편 가까운 글을 발표했습니다.

  우하의 관심은 언제나 사회비평과 인간탐구에 있었습니다. 우하 수필의 특징은 직업이 의사인 만큼 진료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다룬 것이 많습니다. 의학지식을 수필로 풀어 전달하는데 힘을 쏟았으며, 그 당시로는 파격이라 할 만큼 性에 관한 소재가 많아 재미를 더해줍니다. 유머와 감동을 추구하면서도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현실비판 정신이 늘 바탕에 깔려있습니다. 오늘 합평작품인 <어떤 왕진>은 1961년 사상계에 발표하였고, 세 번째 수필집 ≪약손≫에 실린 글입니다.

 

사회 : 정선모 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한 손에는 메스를 한 손에는 붓을 드셨던 박문하 선생의 일대기를 잘 정리해주셨습니다. 그럼 김영만 선생님께서 작품론을 말씀해 주실까요?

김영만 : 박문하 선생에의 수필에서 제가 주목하게 된 것은 첫 번째로 그 소재입니다. 가까운 생활주변에서 얻은 소재입니다만 그 내용이 이 작품에서 보듯 범상치가 않은 것들입니다. 이는 독자들로 하여금 두 가지 생각을 나게 하는데, 하나는 글감을 보는 작가의 안목이 남달랐다는 것, 그리고 작가는 이 글을 쓰지 않으면 안될 어떤 절심함 같은 게 있었다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 흠은 그러다보니 작위적인 내용의 느낌도 없지 않다는 게 있습니다.

  둘째는 형상화입니다. 이분은 아주 섬세한 묘사력을 바탕으로 정확한 플롯에 의해 작품을 쓰고 있다 하는 느낌을 줍니다.

  셋째는 해학, 풍자, 윗트 같은 것입니다. 잘 웃기는 사람은 자기는 웃지 않듯이 은연중에 그것이 숨어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자신을 이런 해학의 대상으로 거침없이 드러내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작가의 비판의식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고 있습니다. 자기 응시랄까 메타 의식이랄까 하는 것입니다.

  이〈어떤 왕진〉뿐만 아니라 선생의 작품들은 대체로 성공작들이 많은데 거의 잊혀져왔다는 느낌입니다. 부산 수필에서 우리 집중조명에 내놓으신 것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오늘 이 자리가 아니더라도 다시 말하면 〈새벽에 돌아오다〉등의 작품으로 ‘수필에서의 성 문제’, ‘외도 문제’를 하나의 담론으로 토론을 한번 했으면 합니다. 우리 수필가 가운데 이 문제를 최초로 다룬 분이 박문하 선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데 아마 우리 수필문우회가 이 문제를 다룬다면 수필계의 관심을 모을 것 같습니다.

 

사회 : 감사합니다. 이 작품을 합평에 올리면서 어떤 평으로 접근될 것인가 기대가 많았습니다. 수필에서의 성의 문제, 외도의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가도 박문하 선생의 작품들을 통해서 접근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 우선 이 작품에 대해서 김병권 선생님께서 먼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김병권 : 수필은 체험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했을 때 평에 올려진 이 작품은 보통사람은 알 수 없는 의창의 뒷얘기가 전개 되어 있고, 또 그 과정이 너무나도 쇼킹합니다. 제가 과문한 탓인지 수의사가 사람을 수술했다는 얘기를 처음듣기 때문에 이런 글이 세상에 나갔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 질 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수필을 쓰는 사람입장에서 이런 소재를 권장 할 것인지는 주저스럽습니다. 수필은 통찰력과 정제된 인격화된 사고로 쓴다고 할 때 이것은 조금 문제가 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염정임 : 교과서에 <약손>이라는 글이 실렸던 게 생각납니다. 이 수필은 사회 부조리를 풍자한 패러독스가 짙은 작품인데 배경에는 짙은 휴머니즘이 깔려 있습니다. 근데 궁금한 것은 하루에 일어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따로 겪은 두 가지 일을 작품의 효과를 주기 위해 하루에 일어난 일로 재구성을 한 게 아닌지 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절묘하게 대비가 된 점이 그런 의구심을 들게 하는군요. 수필에서는 허구가 허용되지 않지만 재구성은 된다는 것일까요? 그러나 작품으로서는 성공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에피소드를 극대화한 점도 그렇고 사회의 비판적인 면과 그 시대적상황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사회 : 그 점은 추후에 논의하겠습니다만 수의사가 사람을 수술을 하겠는가 하는 문제는 그 시절의 시대적 상황을 생각해 볼 때 가능하지 않겠는가 합니다.

홍혜랑 : 물론 전시 중에는 가능하겠으나 이 작품의 풀롯은 그것이 아닙니다. 누가 봐도 작위적인 냄새가 많이 납니다. 사회고발을 위해서 극단적인 소재를 선택했는데 재구성이라고 할지라도 문제가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에서는 얼마든지 픽션을 허용하면서 수필에서는 조금의 의혹만 있어도 이런 지적이 나오지 않던가요.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까 수필은 삶을 리얼하게 그려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요. 짜맞추듯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해서 허구가 문제가 되는 것이고 또 재구성으로 조합을 했다면 수필문학 작품으로서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조작된 인생이라는 거지요. 문장도 너무 만연체로 쓴 것 같습니다.

한원준 : 저는 우리가 이 글을 마치 ‘마술은 속임수다’ 하면서 보는 시각과 똑같은 시각으로 이 글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 있는 그대로를 따라주면 되는데요. 이 글에는 그날이라는 표현이 전혀 없기에 우리가 지나치게 비약적 상상을 하고 있지 않은가 싶습니다. 인생이란 무슨 일이 일어나면 한 번에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회 : 이 글이 허구가 아니냐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것은 다시 말하자면 그만큼 충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것을 충격적이기라기보다 차라리 우호적이라고 느끼고 싶어 하는가 하는 점도 생각해 봐야 되겠습니다.

오세윤 : 저는 이분의 글을 잘 접하지 못하다가 이번 집중조명을 계기로 다른 글들도 찾아서 읽어 보았습니다. 저는 같은 의사여서 그런지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어딘가 저하고 비슷한 부분이 보여서 어떤 평가가 나올까 궁금했습니다. 1961년이면 의술이 많이 안정되어 있던 시절인데 환자가 동물병원에 찾아 갔을 리가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무엇보다도 의사로서 언급하지 않았어야 할 부분이었습니다.

이난호 : 허구의 의심이 드는 것은 문장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겁고 신랄한 소재를 그리는데 문장이 너무 낯익고 또 엉성하고 가벼웠습니다. 단어와 문장이 부적절하게 쓰인 부분이 몇 군데 있는데 이런 것은 글의 신뢰도를 낮춥니다. 마지막 통탄조에서 작가가 독자를 붙잡아야 하는데 역시 표현이 엉성해서 그만 긴장이 풀렸습니다.

 

사회 : 문장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어수룩한 문장이 본인이 갖고 있는 사회적 주제의식을 제대로 적립시키지 못한 게 아니냐 하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김녹희 : 여기에 등장하는 김 사장에 대해 반감이 생기는데 지금도 이런 사람은 흔히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포인트 - 포인터’ 등 달라진 외래어 표기도 관심을 갖고 살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문혜영 : 원본을 살리느라 최선을 다했습니다. 원본을 살리면서 현재의 어법에 맞추려고 했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포인터로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최병호 : 저는 이런 치료를 주변에서 보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봤던 상황이 나와서 반가운 마음이었습니다. 부자들만이 누리는 생활상을 간단 간단하게 얘기해 놓았는데 ‘긁어 모았다’는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이것은 부자가 돈을 모았을 때 과연 정당했겠느냐 하는 뉘앙스가 들어있지요. 그 문장을 읽으면서 아주 델리케이트 한데까지 신경을 썼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수의사가 사람을 치료하고 의사는 개를 치료하는 이런 상황은 모순되고 부조리한 사회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태동 : 집중조명의 작품선택은 참 어렵습니다. 이 글을 선택하는데 많은 고심을 했을 겁니다. 그 수고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체홉을 말씀하셨는데 글에 너무 사회성이 짙습니다. 체홉은 풍자, 아이러니 등을 드러나지 않게 깔아 두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근본적인 것은 인간의 문제입니다. 인간의 문제를 탐색하고 난 다음에 사회개혁문제가 나와야 합니다.

  이 작품은 미학적인 논리가 없습니다. 읽을 때의 기쁨이 없습니다. 지적인 것이 깔려서 속을 샅샅이 들여다보는 반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습니다. 수필에는 철학과 지성이 있어야 합니다. 문학적인 문법과는 거리가 멀고 문장 자체도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또 풍자는 지적인 요소가 없으면 풍자가 될 수 없습니다. 지성이 깔려 있어, 읽어보면 깊은 반성이 오고 내 속을 올올이 살펴보는 것이 풍자입니다. 사회 고발도 소재삼아야 된다고 하지만 그것은 신문에서도 얼마든지 다룰 수가 있는 겁니다.

 

사회 : 문학은 기쁨과 아름다움을 주어야 한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집중조명을 할 때는 미학적으로 완성된 작품도 좋겠지만 장점보다 문제점을 볼 수 있는 작품을 하고자 합니다. <고향이야기> <약손> 등 한국적 서정이 담긴 작품들도 있으나, 그런 것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어서 문제성이 있는 이 작품을 선정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토론의 방향이 제대로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엄정식 : 솔직한 느낌을 말한다면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작품입니다. 사회고발은 있는데 인간에 대한 연민이 없습니다. 심지어는 동료의사들에 대한 연민도 없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허구심을 떨칠 수가 없고 설령 허구라고 해도 감동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습니다.

이경은 : 수의사하고 의사의 역할을 극단적으로 대비시켜 의사로서의 갈등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두 부분이 너무 길어서 지루했고, 의사로서의 연민과 갈등에 대한 표현도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독자에게 어떤 상황을, 어떻게 던지는 게 가장 효과적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작품은 마치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심장을 그대로 독자에게 던져서 독자를 당황하게 만드는 너무 ‘날 것’의 느낌이 들었습니다.

정선모 : 박문하 선생은 직접화법입니다. 날 것으로 던져 주고 알아서 느껴라 하는 것이지요. 이 분 문장의 특징이 그렇습니다. 저는 이 분이 피해의식이 강했던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정사가 그렇고 제도권 교육에서 자유롭지가 못했던 게 그렇고 애국지사와 광복 후에 친일했던 사람들의 사회적 위치에 울분이 있었던 거지요. 저는 이 글을 상당히 의도적으로 쓰지 않았는가 합니다. 구성도 치밀하다고 봅니다. 부르주아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대립이 극명합니다. 저는 구성에서부터 낱말 선택까지 상당히 용의주도하게 쓴 글이 아닌가 합니다.

이경수 : 의도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쓴 글인 것 같습니다. 읽다가 호흡이 맞지 않아서 만연체로 쓰여졌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러나 문장이 쉬워서 동영상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 분은 글을 쓰고 나서 어렵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의술을 펴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한원준 : 의도를 갖고 썼다고 하는데 의도적으로 쓰지 않은 글이 있을까요? 의도의 의미가 무언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보여주기 위한 의도로 글을 쓰지 않나요? 그리고 여기는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사람이 많이 나옵니다. 근데 그게 잘못 된 일이 아닌 듯 그걸 지적하는 얘기 전혀 없습니다.

문혜영 : 이 글을 보고 이 시대에 이런 일이 있었는가 싶었습니다. 잘 정리정돈 된 사회질서 속에서 내다보면, 이 작품의 현실은 아주 엉터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다큐프로를 보면 지금도 후진국 같은 곳에서는 이런 상황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이 시대에는 불법이 횡횡하던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내야 했던 이 분이 어쩔 수 없이 이런 불법적 상황에서 따라가야 하는 자신을 고발하는 작품이 아니었나 합니다.

  모든 작품은 작가가 의도해서 씁니다. 결국은 작가가 어떻게 세팅을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건드려서는 안 되는 부분을 오히려 의도해서 쓰지 않았는가 생각하구요. 요즘 읽는 정서적이고 문장 미학을 논하는 작품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작품이고, 이태동 선생님의 말씀처럼 철학과 지성이 느껴지지는 않았으나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 : 수의사가 인간을 치료한다는 상당히 충격적인 소재임이 분명합니다. 수필이 금기시 했던 소재 ‘성’ ‘이혼’ 문제 등을 소재로 한 수필이 몇 년 새에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너무 예쁜 소재 아름다운 소재에 치우쳐 있지 않았는가 합니다. 삶의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으므로 모두를 오픈하고 받아 들여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회장님께서 마무리 해주시겠습니다.

고봉진 : 저는 이렇습니다. 이태동 선생님께서 집중조명 작품에 대해서 불만이 있으신데 이런 작품들을 조명해 봄으로써 외려 여기에 반면교사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계간수필의 ≪집중조명≫은 발표되면 많은 반향을 일으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문제를 던지는 이런 글을 올리면 수필을 보는 또 다른 눈이 개안이 되지 않겠느냐 그런 면에서 상당히 뜻있는 작품 선택이었습니다.

 

사회 : 수필이 독자에게서 멀어지는 이유가 질박한 삶을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절절한 서민적 체취가 묻어 있는 작품을 써야 한다’라는 박문하 선생의 말을 끝으로 오늘의 합평회를 마칠까 합니다. 긴 시간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