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문화기행|

 

할도르 락스네스의 집

 

이순희

 

‘물과 불’의 땅, 그리고 진귀한 풍경으로 알려진 아이슬란드 여행을 나는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손꼽아 여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화산 폭발이 일어나 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뻔했다. 코펜하겐에서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까지도 갈까 말까 주저하다가, ‘죽기밖에 더하랴’ 허세를 부리며 눈을 딱 감고 비행기에 올랐다. 무사하기를 기원하는 내 식의 기도라고 함이 옳겠다.

스칸디나비아 5개국 중 북극권 직하에 있는 작은 섬나라의 수도 레이캬비크에 도착했다. 다행히 중요한 볼거리들이 대부분 중남부에 몰려있다고 해서 7일간의 짧은 시간을 걸어서 대충 다닐 수 있는 구 도시와 대표적인 관광지를 묶어놓은 황금노선을 8인용 차로 이동하면서 다니는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기원후 874년 잉골퓌르 아르나르손이란 노르웨이인의 최초 이민 정착이 시작된 이래로 2세기에 걸친 노르웨이와 덴마크 식민지시대를 지나 독일이 덴마크를 차지하고 있을 즈음부터 영국과 미국 군대가 주둔했던 나라, 전체국민의 97퍼센트가 아이슬란드인 혈통이며 95퍼센트가 루터교인이고, 혈통 관리를 국가에서 철저히 하고 있는 나라.

“아이슬란드는 포니 말 만큼 단일 민족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차창 밖을 내다보세요. 우리가 달리는 길 옆, 작은 저 길들은 말들만 다니는 특별한 길입니다. 눈 속에서도 풀을 찾아내고, 작은 몸집으로 무거운 짐을 마다않고 지구력 있게 날라주는 기질이 온순한 말입니다. 초기 바이킹들의 이민선을 함께 타고 들어온 포니는 당시 가장 편리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설명하는 관광안내원은 놀랍게도 덴마크 미인이었다. 아이슬란드와 덴마크가 역사와 문화적 관계에서 얼마나 밀착되어 있는지 상상할 수 있었다.

 

나는 북구에 관심이 생기면서 한스 안데르센 이후 가장 많이 읽힌다는 덴마크의 작가 페터 회와 아이슬란드의 에이나르 마우르 그뷔드뮌손, 스웨덴의 스티그 라르손 같은 작가들을 즐겨 읽어 왔다. 그 중 스웨덴과 덴마크의 두 작가는 오늘날 인기가 해리 포터를 능가할 만큼 세계적인 추리소설가로 부상했다. 햇빛이 여린 북구의 혹한과 칠흑 같은 어둠, 정적만이 숨 쉬는 끝없는 설경,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고독감과 불면증, 이런 것들이 범죄추리소설의 수요와 절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것들을 읽으면서 빛이 한 점쯤 남아있는 어느 저녁 시간, 수억 년 겹겹이 쌓여온 퇴적암의 심도, 소리를 눈으로 듣고 문자를 음으로 들어야 할 것 같은 몽환적이고 아득하기 만한 그런 작품 분위기에 침잠했었다.

바로 그 땅에 내가 서있다. 여의도 광장만한 호수, 그 주변에 떠있는 듯한 여러 건물들과 우뚝한 할그림스 교회, 그 종탑 위에서 사방으로 내려다보이는 형형색색의 작은 집들이 여름의 부드러운 햇빛아래 옹기종기 모여 앉은 항구도시 레이캬비크와 그 온화한 바다는 결코 내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지구 위에서 가장 훼손되지 않았다는 용암의 황무지, 거대한 툰드라, 활화산, 우렁찬 폭포, 이런 치열한 땅에서 살아 남아있는 순록, 북극 곰, 밍크, 순종 말 그리고 희귀한 새들과 어류. 이 모두가 여름에는 이방인인 나까지도 넉넉하게 품어 안아주고 문명에 시달린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싶어 하는 듯했다.

여행의 피로를 풀기위해 우선 남부 해변 도로를 따라 규소와 여러 가지 미네랄성분이 듬뿍 들어 있다는 야외온천 불루라군을 찾았다. 이름과는 달리 물은 우윳빛이었다. 다음은 내륙 쪽으로 들어갔다. 수십 미터 지하에서 이따금 뜨거운 물을 뿜어대는 간헐천 게이시르를 보고나서,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굴포스로 갔다. 폭포가 자연의 엄청난 위력을 과시하며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금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더 없는 가치를 인정받고 있지만 20세기 초에는 수력발전소를 건설하려는 외국 투자자들의 유혹으로 이 폭포가 사라질 뻔한 위기를 맞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 작은 여인 시그리터의 목숨 건 자연보존 투쟁으로 그 위기를 극복하여 오늘날 우리가 행복하게 그 청정폭포를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이슬란드의 진수는 집과 도시 안에서가 아니라 밖으로, 더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데 이의가 없지만, 나 개인적 관심으로 꼭 안을 좀 들여다보고 싶은 곳이 한군데 있었다. 겨우 인구 30만 명인 이 작은 나라에서 1955년에 이미 노벨문학수상 작가가 나왔었다. 그가 할도르 락스네스이다. 이 나라 동시대 작가들이 대부분이 덴마크어나 노르웨이어로 작품을 써서 많은 독자층을 가지려고 지향했던 것과는 반대로 그는 순수 아이슬란드 언어만 고집하고 60여 권을 집필했다는 것을 보면, 작가의 독자적인 철학과 남다른 의지 또한 엿볼 수 있다. 동행들 중에 같이 갈 희망자가 없어서 나 혼자 택시에 올라 30분쯤 교외로 달렸다. 차창에서 바깥 풍경을 보니 어제도 그저께도 지났던 길이다. 인적이 거의 없어 가는 도중에 단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오륙십 평쯤 되어 보이는 아담한 2층 집, 문 앞에 서니 사오 십 대로 보이는 여성이 반기는데,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세상에 태어나서 한국인은 처음 만난다고 했다.

오목조목하게 잘 정리된 서가와 작가가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사용하던 손때 묻은 일용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것들이 저마다 나에게 얘기를 걸어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은 다른 큰 박물관들과 달리 관람객이 전혀 없어서 사물들도 외로워 보였기 때문일까. 한 방에는 그림들이 꽤 많이 걸려있었고, 만국의 언어이기도 한 음악도 많이 흘렀을 것이라는 냄새도 났다.

그가 이렇게 한적한 곳에 살면서 머릿속 서랍에 속속들이 차여 있었을 천태만상의 추억을 하나하나 되씹으며 저 책상머리에서 글을 썼을 것을 상상하고 나도 모르게 한 순간 숙연해졌다. 집 현관 바로 앞에 하얀 재규어 한 대가 단정하게 놓여있었다. 곧 어디론가 떠날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할도르 락스네스에게는 조국 아이슬란드는 그의 사랑이고 그의 ‘집’이다.

 

 

엑스대학교 불문학박사, 부산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

현재 프랑스 칸에 거주.

저서 : 수필집 ≪늙은 유럽≫,  ≪나는 섬이고 싶다≫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