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비평|

 

일상의 승화, 빛나는 수필정신

 

백임현

 

여름은 지상의 모든 초목이 일 년 중 가장 왕성하게 생명력을 과시하는 달이다. 계간수필 여름 호, 수준 높은 작품으로 장식되어 어느 때보다 내용이 풍성하고 다양하였다. 글쓰기도 계절의 정서와 감각에 무관할 수 없음인 듯, 이번 호에는 자연 친화적인 주제와 생명과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로 고도의 수필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정원에서 피고 지는 꽃 한 송이의 숨결에서 자연의 섭리와 생명의 경이를 체득하고, 세월과 함께 맞고 보내는 평범한 일상사에서, 작가들은 삶의 의미를 발견하여 아름다운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그것은 빛나는 수필정신이었다.

 

<6월> 반숙자

5월이 신록의 계절이라면 6월은 모든 초목이 든든한 뿌리로부터 양분을 빨아올려 힘찬 생명의 깃발로 천지를 장식하는 계절이다. 지상의 모든 초목은 일 년 중 가장 활기찬 생명력으로 결실을 향해 성장하는 절정의 계절이며 짐승들도 이 맘 때 새끼를 쳐서 종족을 번식한다. 농가에서는 봄에 심은 채소가 한창 자라서 집집마다 풍성한 인정과 즐거움이 넘치는 달이다.

작가는 이렇게 여름 농촌의 목가적인 풍경을 서정 짙은 문체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것은 평화로운 농촌의 찬가가 아니다. 이런 정취는 전쟁으로 잃어버린 유년의 여름이었다. 전쟁 세대인 작가에게 유월은 포성과 살상과 기아로 얼룩진 피비린내 나는 공포의 계절이다. 그 무서운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에게 6월은 꿈속에서도 악몽이 되살아나는 어둡고 불행한 계절일 뿐이었다.

그러나 반세기가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 작가는 이제 공포의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6월 본연의 찬란함을 되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산야에서 쓰러져 간 젊은이의 슬픈 넋으로 생각했던 여름의 망초 꽃도 이제는 평화의 눈으로 보자고 다짐 한다, 그것은 불행한 역사와의 화해였고 6월에 거는 평화의 메시지이다. 잔잔한 필치로 조용하게 그러나 준열하게 평화의 소중함과 전쟁의 비극성을 일깨워 주는 의식이 살아있는 글이었다.

 

<몽유도원도를 들여다보면서> 김영만

조선초기의 화가 안견(安堅)의 대표적인 산수화 ‘몽유도원도’는 너무도 유명한 국보급 그림이다. 작가는 이 그림을 보며 낙관 없는 무 낙관의 작품인 것에 깊이 주목한다. 예술작품에 있어 낙관은 작가의 자존심이며 예술정신이다. 그러나 ‘몽유도원도’에는 신숙주, 정인지등 당대 최고의 인물 이십여 명의 찬문이 있을 뿐 정작 있어야할 화인畵人, 안견의 낙관이 없다. 여기에서 작가의 사유는 낙원이라는 관념의 세계를 놓고 대두되는 두 계층 간의 엄존하는 간극을 짚어 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낙원이란 원래 거대담론가들의 꿈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상이었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이 거대담론가들이 설정한 낙원의 환상은 때로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되어 파행과 시행착오로 짙은 그늘을 드리웠던 지난 세기의 어둠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는 사회의 모든 분야가 낙원을 꿈꾸는 자들의 도구가 되어 개인의 자유로운 꿈이 무력화 된다. 교육 현장도 예외는 아니어서 순수해야할 교실이 살벌한 계급전선의 장으로 바뀌었고 교사란 오직 밥벌이의 수단으로 전락되고 말았었다. 이 광풍의 시대에 작가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갈등의 순간을 되새기며 ‘낙원으로 가는 길’ 그것은 어느 시대나 현실과 동떨어진 거대담론가들의 ‘꿈속의 낙원’이었다고 술회한다. 그리고 안견의 무낙관은 메울 수 없는 계층의 간극 속에서 예술가의 자존감을 지킨 자조와 한숨이었다고 분석한다.

작가는 결론적으로 정리한다. 낙원이란 소란스러운 이념이나 사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꿈을 펼치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그 세계에 있다고…. 진지한 사유로 독자들의 관심을 이끌어 간 수준 높은 역작이었다. 직선적인 표현을 절제한 은유적인 담론에서 우리는 이 시대 한 지식인의 자유정신을 본다.

 

<해가 뜨고 달이 뜨고> 정호경

세상살이의 자잘한 일상이 그림 같은 작품으로 승화되어 맑고 고아한 기품을 느끼게 된다. ‘해가 뜨고 달이 뜨는’ 세월 속에서 자연처럼 세상사를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순리를 따라 살아가는 만년의 모습이 달관의 경지를 느끼게 하는 수필이다.

주변의 풍경과 일상의 작은 경험들이 모두 이 작품 속에서 수필의 소재로 재창출 된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일상의 이야기에 머물렀다면 독자에게 공감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짧은 글 속에 장면마다 세상을 욕심 없이 살아가는 작가의 인생관과 섬세하고 다정한 인품이 녹아 글을 다 읽고 나면 위로를 느끼며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주변의 사물들과 그저 그렇게 생각되었던 일상에 새로운 관심을 갖게 된다. 수필은 짧은 글이다. 그러나 그 짧은 글 속에는 어떤 장르의 문학도 따를 수 없는 소중하고 빛나는 이야기가 있다. 어려운 말로 심오한 철학을 이야기하지 않아도 특별한 소재로 특별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 분의 짧은 글속에서 사람을 사랑하고 자연에 감사하고 이웃과 사이좋게 살아야한다는 삶의 자세를 저절로 배운다.

 

<지금 이 순간> 정목일

“지금 이 순간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만큼 소중한 일은 없을 성싶다.” 글이 시작되는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은 화두로 순간과 존재의 의미를 일깨워 준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시간의 영속적인 흐름 위를 매 순간 순간 통과하는 것이다. 아득한 과거에서 먼 미래에 이르기까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어느 순간을 생명으로 살다가 사라져 가는 것이다. 이 순간 우리와 조우하게 되는 사람, 그 인연들, 자연, 사물들…, 이 모든 것들은 기적처럼 만나지는 놀라움이다. 우리는 아무런 자각 없이 순간순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잠시 생각을 가다듬어 순간의 의미를 되새겨보면 경이 아닌 것이 없다.

작가는 몇 광년의 시간을 거쳐 우리 눈에 들어 온 별, 지금 바라 볼 수 있는 강물, 봄에 피는 꽃 등…, 이 모든 사물도 예사롭게 만나지는 것이 아님을 구체적으로 예시하면서 일상의 깨달음은 ‘지금 이 순간’을 체감하는 일이라고 설명한다. 지금 이 순간을 확인하는 일은 자신이 생명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일이기도 하다. 작가는 화가들이 남겨 놓은 세계적인 명화를 보면서 그 명품들은 화가의 평범한 일생 중에서 평범한 순간의 진실한 모습이고 그 순간의 아름다움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모든 예술은 “지금 이 순간의 의미를 꽃 피워 내려 한 것이 아닐까.” 심도 있게 사색한다. 결미에서 작가는 순간의 소중함을 느끼며 삶의 의미를 꽃으로 피워내고 싶다는 말로 삶의 의미를 성찰 한다.

“나는 진정 지금 이 순간에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마지막 문장은 준엄한 경고로 우리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그러면 어떻게 사는 것이 순간을 꽃피워내는 것일까. 독자들은 이 물음 앞에서 진지해질 것이다.

 

<화초를 가꾸며> 변해명

우이동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작가의 집에는 넓은 정원이 있다. 작가는 정원에서 철 따라 피고 지는 각양각색의 꽃들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살피며 그 특징과 생태를 섬세하고 치밀한 필치로 묘사하여 아름답게 가꾸어진 꽃밭을 상상하게 한다.

작가가 이 작품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은 숙명적으로 꽃과 잎이 만날 수 없이 피고 지는 ‘상사화’의 안타까운 운명이다. 봄에 난처럼 잎으로 자라다가 흔적도 없이 지워진 자리에 꽃대가 올라와 열정적인 붉은 빛깔의 꽃을 피우는 상사화. 작가는 해마다 해후하지 못하고 혼자 피어나는 상사화를 보면서 엇갈린 운명 앞에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지새우다가 끝내 만나지 못하는 애절한 사랑을 연상한다.

그러나 엇갈린 운명이나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어찌 상사화만의 생태이겠는가. 작가는 말 한다. “세상 어디인들 사람의 꽃밭이 아니겠는가.” 사람의 삶 속에도 상사화 같은 운명은 얼마든지 있다. 행복을 잃고 나서야 행복했었노라고 지난 시간을 추억하는 우리 삶의 모순, 욕심으로 해서 추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입양된 아기가 성장하여 돌아왔지만 부모는 이미 저 세상으로 가서 만날 수 없는 한 서린 운명을 작가는 안타까워한다. 어디 그 뿐이랴. 분단으로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긴 세월 그리움으로 지새다가 만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이 땅의 이산가족, 이들이 상사화의 운명과 무엇이 다른가. 한 송이의 꽃을 통해서 인간의 운명으로 사유의 깊이를 더 해간 작품, 그것은 작가가 통찰해 낸 빛나는 수필정신이었다.

 

<삼현三玄의 시대> 심규호

학술지에 게재할 수 있는 주제의 글을 수필지에서 만나게 된 것은 반가운 일이었다. 이 글은 고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역작이었다. 작품을 세단계로 나누어 읽었다.

 

첫 번째 단계 삼현의 길을 찾아가는 학문의 여정

두 번째 단계 삼현사상이 출현하게 된 시대적 환경과 사상의 개념

세 번째 단계 삼현사상이 실생활에서 구현되는 현대적인 의미

 

첫 번째 단계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거쳐 노장 사상에 이른 학문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젊었을 때는 삼현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고 퇴영적이고 은둔과 기피, 입세入世보다 출세出世를 선호하는 노장사상과 주역까지 포함된 그 사상은 얼토당토않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장자에 붙잡혀 석사 논문을 쓰게 되었고 끝내는 학위논문 주제가 되었다는 학문의 여정을 담담하게 소개하고 있다.

처음에는 탐탁지 않게 생각되던 일이 어찌하다보니 자신의 일이 되는 경우를 우리는 인생에서 자주 경험하게 된다. 결혼에서 배우자를 만나는 일, 주거지를 정하는 일, 직업을 선택하는 일등…. 어쩌면 운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사실들은 우연 같지만 필연적인 요소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는 어떤 성향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가 전혀 관심분야가 아니었던 삼현의 사상을 연구하고 그 학문에 안착하며 정진하게 된 것은 작가의 성향이 그 쪽에 있었고 그것은 내재적인 자아를 찾아가는 길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삼현사상이 출현하게 된 시대적 환경과 사상의 개요를 설명한 내용으로 삼현사상을 이해하는데 유익한 지식습득이 되었다.

세 번째 단계에 이르러 작가는 실제 생활현실 속에서 ‘삼현의 시대’를 만나게 되었다고 피력한다.

 

“나는 어렵게 맞이한 삼현의 시대를 벗어날 생각이 없다. 사실 삼현의 시대는 불안과 도피의 시대이지만 또한 치유와 위안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핵심이기도 한 이 말은 삼현사상이 문헌 속에서 잠자는 사상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하여 실체성을 가진 살아있는 사상으로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구현되고 있음을 설명한다.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할 이유가 여기 있다.

어려운 글이었다. 동양사상의 기본적인 소양 없이는 접근이 힘든 심오한 글이었다. 그러나 수필형식으로 부드럽게 서술되어 무난하게 읽을 수 있었다. 작품 주제인 삼현정신의 연구와 고찰은 독자들에게 많은 공감을 갖게 할 것이며 고전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것이다. 이번호를 빛낸 중요한 글이었다.

 

어느 작품을 고를 수 없이 좋은 글이 많은 여름 호였다. 수필의 지평이 깊고 높은 수준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이번 호는 말해 주고 있었다. 좋은 작품이 많았으나 지면관계로 언급할 수 없었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동서문학≫으로 등단(87년).

현대문학 수필상 수상.

수필집 ≪놓치고 사는 기쁨≫ ≪아침 소리≫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