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한 사람이 그리운 시대

 

김병권

 

사람이 갖추어야 할 품성 가운데 성실성만큼 중요시 되는 덕목은 없을 것 같다.

어떤 조직이나 단체의 분위기가 성실성으로 가득 차있으면 모든 구성원은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해 남다른 신뢰와 자부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성실성이 없는 조직 풍토에서는 오직 자신의 이득만 챙기기에 급급할 것이니 상호간의 신뢰나 안정감 따위는 아예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성실은 우리 인간사회에서 통용되는 가장 확실한 보증수표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성실한 사람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 한다. 매일같이 터져 나오는 대소 사건들의 공통점은 거의 불성실한 인간성에 기인하고 있음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옛날 대낮에 촛불을 들고 그리스 거리를 헤매면서 의인義人찾기에 골몰했다는 디오게네스의 일화가 새삼스럽게 되살아난다. 공중목욕탕에 갔다가 자기가 걸치고 다니던 누더기 옷이 없어지고 호화찬란한 귀족 옷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한 디오게네스는 서슴없이 알몸으로 나왔다는 그 의기와 강직성이 못내 그리워지는 요즈음이다.

성실한 사람은 정직과 신의를 기본으로 삼는다. 남을 이용하기 위해 술수를 부리거나 가식假飾하는 일도 없다. 누가 뭐라고 하던 자기에게 부여된 역할만을 묵묵히 실천할 따름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건강증진을 위해 땀 흘려 운동을 하는 것처럼 성공적인 인생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성실한 마음자세를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일찍이 중국의 대학자였던 사마온공(司馬溫公)은 마지막 임종 때, 찾아온 제자들에게 정성 성誠 자 하나만을 유언으로 남겼다고 한다. 즉 학문을 하거나 사업을 하거나 그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성실하게만 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고, 후회하는 일도 없다는 것을 강조함이었다.

또 공자의 수제자였던 증자도 매일 세 번씩 반성하라는 뜻의 일일삼성一日三省을 가르쳤는데, 이 역시 모두 성자誠字를 주제로 삼고 있음은 매우 의미 깊은 일이다. 그가 제시한 첫째의 반성은, “내가 남의 일을 맡아서 수행했을 때 과연 성실하게 했는가”이고, 둘째 반성은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 성심을 다했는가”이며, 셋째 반성은 “스승으로부터 배운 학문을 성의를 다해 잘 익혔는가”라는 것이었다.

우리 조선조의 대학자였던 퇴계 역시 이 성실성에 얽힌 일화를 많이 남겼다. 그는 오로지 자기 학문에 성실하기 위하여 여러 차례에 걸친 임금의 출사出仕 명령도 고사固辭했다. 성균관 교리와 대사성, 부제학과 공조참판의 벼슬마저 사양한 그는 고향인 안동에 내려가 후학양성에만 전념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정신적 사표師表로 우뚝 서게 되었다. 오늘날 출세영달을 위해 온갖 추태를 연출하고 있는 세태에 비추어보면 이 얼마나 감동적인 교훈인가.

얼마 전 시내를 걷다가 길모퉁이에 있는 구둣방에 들려 구두를 닦은 일이 있다. 온 손에 시커먼 구두약을 묻힌 젊은이는 뭐가 그리도 신이 나는지 연신 싱글벙글하며 구두를 닦고 있었다. “오늘 무슨 좋은 일이 있는 모양이죠?” 라고 물었더니 전혀 뜻밖의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꽤 좋은 회사의 사원이었습니다. 구조조정 때문에 실직한 후로는 모든 욕망을 버리고 오직 생계안정만을 위해 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아들 녀석이 공부를 잘해 희망을 걸고 있는데, 그 녀석이 좋은 대학에만 들어가 준다면 이런 고생쯤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꿈을 갖고 일을 하니 언제나 즐거운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거침없이 말하는 그는 사실 남의 구두를 닦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희망을 닦고 있었던 것이다. 이 어찌 성실한 생활자세의 본보기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 사회에는 땀 흘리는 노력 없이 손쉽게 사는 방법만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반값 등록금’이니 ‘무상복지’니 하는 신조어까지 등장하여 불로소득을 부추기는 오늘날의 사회현실은 마치 부자 집 아들의 낭비벽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허기를 달래면서 허리띠를 졸라매던 근면 자조의 시대는 이제 까마득한 신화 속에서나 찾아보아야 할 것 같다.

얕은 꾀, 이기적인 지혜만을 쫓는 세태풍조는 결코 희망 있는 사회의 모습이 아니다. 돈을 버는 일이라면 남의 목숨은 물론 자신의 부모까지도 서슴없이 살해하는 패륜적 범죄행위가 다반사로 저질러지고 있음을 보고 있노라니, 선진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우리의 마음은 더욱 울적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세상에는 지혜가 모자라서 실패하는 경우보다 성설하지 못해서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으니, 우리는 마땅히 지혜보다는 성실 쪽을 택해야 하겠다. 성실한 마음자세로 임하면 없던 지혜도 새로 생기지만, 성실하지 못하면 있던 지혜마저 달아나 버리고 만다는 선인들의 훈고를 곰곰이 되씹어본다.

 

 

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한국문학상(99년).

한국수필문학대상 수상(92년) 등 8회 수상. 수필집 ≪속아주는 멋≫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