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북소리

 

정선모

 

장마철이라 빗줄기가 거세다. 폭우 속을 뚫고 오늘도 북을 치러 나선다. 몇 걸음 걸으니 금세 바짓가랑이가 축축해진다. 우산으로 막아보지만 소용없다. 돌풍과 함께 들이치는 비로 인해 온몸이 젖는다. 그래도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 아무리 태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져도 내 걸음을 막을 순 없을 것이다. 나는 지금 딸의 몸속에 남아있을 지도 모를 병마를 내쫓으러 가는 길이다.

지난 1년간 딸이 많이 아팠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인해 죽을 만큼 심하게 앓았다. 처음엔 열이 나서 감기 몸살인줄 알았다. 동네 병원에 가니 폐렴이 의심된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가까운 대학병원에 가서 이것저것 검사를 한 결과 폐렴이 맞다고 한다. 며칠 동안 통원치료를 하고, 입원하여 치료를 해도 열이 떨어지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검사를 해도 열이 나는 원인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된 병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병원으로 옮겼다. 몇 날 몇 일 전공이 다른 세 분야의 전문의가 돌아가며 진료하고 검사를 하더니 결과가 나왔다며 낯선 병명을 말해준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우리나라엔 환자가 300명도 채 안 되는 희귀 난치병이란다. 완치는 되느냐고 물었더니 근치近治라는 표현을 한다. 의사가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데도 무슨 소린지 통 못 알아듣겠다. 난치병이라니…. 사랑하는 내 딸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며칠 사이, 온몸에 발진이 일어나 앉을 수도 누울 수도 없을 정도로 고통을 겪더니 근육과 관절에 통증이 극심하여 급기야는 아예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병원에만 가면 금방 나을 거라고 믿었는데 아무리 독한 약을 먹어도 증세는 갈수록 악화되기만 했다.

어느 날 느닷없이 닥친 이름도 생소한 그 병에 내 딸이 이대로 당하게 놔둘 수만은 없었다. 나을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어떤 병인지 검색해보면 절망스러운 내용만 인터넷에 떠돌았다. 가슴이 꽉꽉 막혔다. 세 살 된 손주는 제 어미 품에 안기고 싶어 울어대는데도, 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어 망연히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하루에도 수천, 수만 번씩 나락으로 떨어지는 심정이었다.

얼마나 건강하고 착하고 총명한 아이였던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같은 반에 배정된 고아원 친구들을 누구보다 따뜻하게 배려하여 선생님을 놀라게 하던 속 깊은 아이였다. 어려움을 당한 친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발 벗고 나서서 어떻게든 도와주려 애쓰고, 아기를 낳아 기르며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새삼 느꼈는지 북한 어린이들에게 우유라도 보내야겠다며 후원회를 찾아 나섰던 딸이었다. 자신의 꿈을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내디딘 지 얼마 되지 않은 눈부신 그 나이에 병상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다니….

그때쯤 행복 전도사라 불리던 한 방송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딸과 비슷한 병이었다. 이어 유명 연예인들을 비롯해 수재들만 모인다는 대학교의 학생들이 줄줄이 자살을 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그때마다 딸이 그 소식을 들을까봐 겁이 덜컥 났다. 서른 살 어여쁜 딸이 낙담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억장이 무너질 일이었다. 딸의 눈과 귀를 막고 싶어 TV 뉴스도 안보고 신문도 감췄다.

평생 믿어온 신을 향해 대들었다.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우리에게 이런 고통을 주는 거냐고.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기필코 병을 이겨낼 거라고. 고통을 통해 신의 뜻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그 계획은 틀렸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줄 것이라고. 날마다 하늘을 향해 종주먹을 들이대었다. 딸을 낫게 할 약이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찾아 나설 것이다. 달나라에 있는 돌가루가 효험이 있다면 그건들 못 구해오랴.

온몸에 약을 발라줄 때마다 딸의 몸을 어루만지며 하루에도 수없이 “사랑한다, 네 몸을 사랑한다.”고 말하였다. 아름다운 피부로 다시 돌아올 거라고, 튼튼한 관절로 다시 일어설 거라고, 건강한 폐로 오래오래 호흡할 거라고 눈만 뜨면 아니 꿈속에서도 기도처럼 주문처럼 되뇌고 또 되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病魔’라는 낱말이 눈에 들어왔다. 병을 악마에 비유한 말인 듯한데 병이든 악마든 쫓아낼 것이다. 예전엔 주술사들이 병을 물리치기 위해 북을 쳤다는 기록을 본 기억이 났다. 그날로 난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 분야의 최고라는 의사를 수소문해 병원을 옮기고, 좋다는 것은 다 찾아 먹이고, 틈날 때마다 북을 두드려대었다. 딸의 몸에 스며있는 삿된 기운을 멀리멀리 쫒아내기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었다.

난타의 박자와 안무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그러나 그 복잡한 안무도 어찌된 셈인지 한번만 들으면 금세 외워졌다. 암기력이 그다지 좋은 편이 못되는데 북을 치기 위한 악보는 단번에 암기가 되었다.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악보를 완벽히 외우니 자연 손이 빨라질 수밖에. 무엇보다 간절한 소원을 품고 북을 치니 북소리가 예사롭지 않을 것은 당연할 터, 까닭을 모르는 이들은 내가 북치는 걸 놀라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취미로 두드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혼신을 다해 북을 친다. 시끄러워서라도 병마가 물러나도록 쉬지 않고 북을 두드리고 또 두드린다.

북소리 때문일까? 발병한지 1년 만에 딸은 기적처럼 병상을 털고 있어났다. 나라에서 치료비 대부분을 지원하는 난치병이라는데 생활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요즘 제 아들과 까르륵대며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돌아눕는 게 소원일 만큼 움직이지도 못했던 딸이 지금은 아기를 데리고 시내의 큰 서점에 가서 함께 책을 읽고, 주말이면 대학로에 가서 연극을 본다.

지난 일 년, 우리 가족은 앞이 안 보이는 캄캄한 터널을 지나왔다. 그러나 칠흑 같은 어둠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온 가족은 서로 단단히 붙잡은 손을 의지하여 희망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견디어왔다. 그동안 누구 하나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울면 지는 거라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버티어냈다. 그 시퍼런 오기에 신도 두 손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전신의 살갗이 부르트고, 호흡곤란으로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다시 예전의 그 환한 웃음으로 돌아온 딸이 말한다.

“이제부터는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지 않을 거에요.”

오늘 밤, 잠자리를 펴는데 나도 모르게 무릎이 꿇어졌다. 수도 없이 종주먹 대던 손이 절로 모아졌다. 내 입에서 “고맙습니다.”란 말이 흘러나왔다. 그제야 내 눈가가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월간 ≪한국시≫로 등단. 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빛으로 여는 길≫ ≪지휘자의 왼손≫ ≪바람의 선물≫.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수필문우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