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시든 자리처럼

 

김명규

 

중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두 남학생이 아파트 복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너 우리 엄마 얼굴은 보지 마, 화장 안 하면 졸라 못생겼거든.”

“응, 안 볼게….”

방과 후 친구를 데리고 집으로 가는데 엄마 얼굴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대개의 엄마들이 집에 있을 땐 외모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꺼칠한 얼굴이며 부스스한 머리가 아닌 게 아니라 애들 눈엔 그런 엄마를 남에게 보이는 게 창피스러울 수도 있겠다.

사람이 깔끔해 보이고 단정하면 보는 사람의 눈도 즐겁고 좋은 인상을 준다. 옛날 어느 가정집. 부인이 차림새에 통 관심을 갖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게으른 여자와 살 수 없다고 남편은 아내를 친정으로 내쫓는 길이었다. 친정으로 가기 위해 장롱에 간직했던 새 옷을 꺼내 입고 오랜만에 단장을 하고 나니 아내가 예뻐 보였던 모양이다. 남편이 넌지시 붙잡기에 아내는 다시 보따리를 풀었다는 얘기도 있다.

사람의 겉모습에서도 인격은 드러난다. 그러나 지나치게 사치스럽고 화려한 모습에서는 오히려 거리감이 생기기도 한다. 중국인들은 아무리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라 해도 겉차림으로는 신분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검소하다고 한다.

얼마 전 쌍계사의 벚꽃 관광을 하고 왔다. 서로 모르는 사람, 아니면 친구들과 짝을 지어 온 것 같았지만 나는 혼자 나선 길이었다. 관광버스는 만석이었다. 나처럼 혼자 먼저 와 앉아있던 분이 있어 옆자리에 동석하였다. 내 또래의, 이웃집 아주머니같이 편안해 보여서 하루 여행이 즐거울 것 같았다. 그러나 아주머니는 한 시간 가량 달리는 버스 안에서 창밖을 바라볼 뿐 사소한 인사조차 나눌 기미가 없었고 내게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 날 관광을 주도한 사람은 시인이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이 온 듯하였다. 휴게소에서 잠시 바람을 쐬고 버스가 출발 직전 들어와 보니 역시 옆 사람은 먼저 와 여전히 고개를 밖으로 돌리고 있었다. 나는 가방 안에서 밀감 몇 알을 꺼내 나누면서 말문을 열었다. “혹시 글을 쓰시나요?” 내가 던진 첫마디였다. 그는 미소를 지을 뿐이었지만 그 미소 속에는 긍정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했던 질문을 그도 똑같이 물어왔다.

“네, 저는 수필을 좀 써보고 있네요.”

“혹시 주소를 주신다면 저의 졸저라도 한 권 보내줄게요.”

하였지만 못들은 체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가 수필계의 유명한 인사들을 다 들춰내면서 소설이며 시와 음악 모든 예술 분야에 대해 아는 얘기들을 일사천리로 펼쳐 말하였다. 그러면서 자기의 위상과 자존감을 은근히 드러내었다. 평범한 아주머니였던 첫 인상에서 그가 어렵게 느껴졌다. 내가 대뜸 수필 쓴다고 한 말에도 후회가 되었다.

거리에 서있는 진회색 벚나무마다 꽃을 한가득 이고 있었다. 그 여자는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한 모양이었다. 모두들 꽃 잔치에 감탄을 쏟아 냈지만 그녀의 표정은 굳게 잠겨 있었다.

돌아오는 길, 아침에 집에서 몇 가지 준비해 온 간식거리를 혼자 먹을 수 없어 그녀에게도 권했다. 땅콩 몇 알을 씹으면서 그녀는 자신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80년대에 중앙지 권위 있는 신춘문예에 두 군데나 당선한 소설가였다. 이야기 속에 유학을 준비 중인 두 자녀에 대한 자랑이며 경제적인 여유와 남편의 명예도 은근히 암시하였다. 그 말속에는 자못 치기 어린 흥분이 돌고 있었다.

서울을 향해 돌아오는데 석양에 물든 꽃들도 나른한 봄날에 지친 듯 졸고 있었고, 이른 새벽에 나섰기에 관광객들도 거의가 잠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내 기분은 씁쓸하였다. 그는 잠을 청하려는지 명상을 하는지 숨소리도 크게 내지 않고 의자 뒤로 목을 기대고 있었다.

교만함일까 과묵함일까, 도도하게 앉아 눈을 내려 깔고 있는 그녀가 갑자기 서먹하였다. 훌륭한 문장을 짓는 것보다는 겸손과 친절이 몸에 밴 사람이 더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살아 올랐다. 그녀의 편안한 옷차림과 화장기 없이 거무튀튀한 얼굴에서 친근감을 느꼈으나 오만을 내뿜는 내면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가늠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비록 초라하고 볼품없어 보이지만 내면이 수려한 사람이 있고 지성을 겸비한 듯 보이는 야비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 꽃이 시든 자리처럼 그 날의 여행은 얼룩져 있었다.

 

 

≪에세이문학≫으로 등단(2001년).

수필집 ≪당신의 이름은≫≪귀부인 연습≫

현대수필문학상 수상. 한국수필문학진흥회 기획위원. ‘토방’ 수필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