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좋아

 

최원현

 

요즘은 아이들 눈으로 세상 보는 연습을 한다. 손주녀석들의 눈높이에 맞춰줘야만 그들이 좋아해 주기 때문이다. 이제 33개월과 14개월 된 외손녀가 가끔씩 집에 오는데 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아이들의 하는 짓이 지난 번 왔을 때보다 몰라보게 달라져 있음인데 새로운 말과 짓거리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실 딸과 아들 남매를 키워냈지만 그땐 먹고살기에도 바쁘고 그저 힘겹기만 하였던지라 아이들 자라는 모습에 눈을 줄 겨를도 없었다. 그러나 손주는 하는 짓 하나 하나가 눈여겨보아 지는데, 그러다 보니 그것들이 더 새로워 보이고 기특하고 사랑스럽다. 그만큼 삶에 여유가 생겼다 할 수 있지만 내가 나이 들었다는 이유도 될 것 같다.

아이들이 집에 와 있을 때는 쉴 새 없이 묻고 해 달라 하고 내 하는 일을 방해해서 귀찮다. 그러나 막상 그들이 인사를 하고 현관문을 열고나서면 다시 안으로 들이고 싶어진다.

오늘도 계속 두 녀석이 내 몸을 놀이터 삼아 놀더니 한 순간 큰 놈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이놈이 또 어디 가서 무슨 말썽을 피우나 싶어 찾아보니 열어놓고 나왔던 내 방문이 닫혀있다. 살그머니 문을 열어보았다. 아뿔싸, 내 책상 밑에서 열심히 색연필로 방바닥에다 그림을 그리고 있다. 책장에 올려져있던 것들도 빼내져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다. 녀석은 급작스런 나의 출현에 아연 긴장하는 듯 하였지만 할아버지는 늘 제 편이라는 듯 이내 태연히 하던 짓을 그대로 계속한다.

“하야, 종이에 그려야지 방바닥에다 그리면 어떡해?” 했더니 “하부지! 박하가 그렸어.” 하며 오히려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는 중에 낌새를 눈치 챈 제 어미가 급히 달려오자 아이는 순간 울상이 되는 듯싶더니 알콜 휴지를 주며 지우라 하자 금방 장난스럽게 문지르며 그것도 즐거워한다. 그런데 딸아이가 내게 “아빠, 하가 할머니보다 할아버지가 더 좋데요.” 한다. “그럴 리가?” 하고 내가 되물었더니 아이만 있을 때 “할아버지가 좋아 할머니가 좋아?”하고 물었더니 한참 생각하다가 “하부지가 먼저 좋아.” 하더란다.

먼저 좋아? 이제 30개월 조금 넘은 아이에게 ‘더’라는 말은 어려웠을까. 어떻든 아이는 ‘더’라는 말의 대체어로 ‘먼저’라는 말을 썼다. 그런데 할머니보다 할아버지를 더 좋아한다는 것에 기분이 좋은 것이기보다 아이가 했다는 그 말이 아주 신선하게 다가왔다. ‘더 좋아’ 보다 ‘먼저 좋아’라고 했다는 아이의 말이 내겐 너무나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장영희 님의 수필에 ‘하필이면’이란 게 있다. 조카에게 어느 날 선물을 했는데 외국에서 살다 와서 우리말에 서투른 조카가 ‘이걸 왜 하필이면 내게 주는데?’ 하더란다. 작가는 조카가 쓴 ‘하필이면’이란 말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고 놀란다. 뭔가 내 일만 잘못 되거나 내 불행이 겹쳐 원망할 때 주로 쓰는 말인데 한국말이 서툰 조카는 고모가 자기에게 선물을 준 것에 대해 왜 나한테만 특별하게 이런 선물을 주느냐는 고마움의 표현으로 ‘하필이면’이라 했던 것이다. 그랬더니 다른 어떤 말로도 대신할 수 없을 만큼의 특별한 감사 표현이 되더라는 것이다.

33개월짜리 손녀가 쓴 ‘먼저 좋아’의 ‘먼저’가 바로 ‘하필이면’처럼 사용된 것이 아닐까싶다. ‘하부지가 더 좋아’ 보다 ‘하부지가 먼저 좋아’ 한 손녀를 나는 꼬옥 끌어안아 주었다. “하부지가 먼저 좋아?” 끌어안은 그에게 귓속말로 물었더니 “응. 하부지가 먼저 좋아” 했다. “그래? 하부지도 박하가 먼저 좋아” 우린 한 통속이 되어 키득거렸다.

사랑은 표현해야 더욱 활짝 피어난다고 했는데 표현을 하고나면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가만 생각하니 손녀아이는 나이답지 않게 언어적 표현이 야물다. 그건 누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운 것들이다. 아빠 엄마란 말만 겨우 하던 어느 날엔 제 할머니와 방안에 있었는데 내가 밖으로 나오라며 불을 꺼버렸더니 ‘안 보여’라고 해서 놀랐었다. 그런데 거기다 이어서 ‘무서워’라고까지 했다. 그런 상황이 어떻게 안 보이는 상황이고 또 그게 어떻게 무섭다는 상황으로 인지되었을까.

아이에게서 배운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아이는 결코 그냥 말한 게 아녔을 것이다. 아이는 그런 상황과 거기에 쓸 만한 말을 수없이 찾았을 것이고, 그 결과 거기에 맞는 말은 이것이다 라고 판단되어 선택하는 힘까지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게 정확하게 그 날 처음으로 표현되어 나왔을 것이다. 행위의 순서가 되는 ‘먼저’라는 말이 ‘더’라는 비교되는 말보다 아이에겐 더 적합하게 생각되었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삶에서 ‘먼저’보다 ‘더’를 훨씬 좋아한다. 더 크고 더 많고 더 높고 더 좋은 것만 바란다. ‘먼저’인 경우도 ‘더’가 있어야 움직인다. 어쩌면 ‘더’란 욕심의 표현일 때가 많은 것 같다. 내 것으로 만드는 일에 ‘더’가 많이 동원된다. 남에게 주는 것에 ‘더’는 약하다.

그랬다. 맞다. 아이는 꼭 ‘하부지 먼저 먹어’ 했다. 저보다 먼저 할아버지가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부지 더 먹어’라고는 하지 않았다. ‘먼저’는 할아버지지만 더 먹는 것은 자기부터 생각했다.

먼저는 행동의 순서가 아닌가. 양이 아닌 순서, 생각하면 할수록 아이가 한 말이 사랑스럽다. 내 삶의 순간순간에서도 나는 이 사소한 아름다운 원칙 하나를 세우지 못했다. 그저 ‘먼저’와 ‘더’의 갈림길에서 늘 주저하다가 ‘더’쪽으로 살짝 방향을 틀곤 했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 내 친구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지, 내가 먼저 그의 좋은 친구가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가 주면 나는 그보다 더 주리라고는 생각하지만 작더라도 내가 먼저 주려고는 하지 않는다. 있는 것에 먼저 감사하면서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늘 더 좋은 것이 없음에 불평하며 내게 있는 것에 대한 감사도 소중히 여기는 것도 하지 않았다. 사람의 모습으로 표현한다면 ‘먼저’는 적당히 날씬하고 행동도 세련된 모습일 것 같고 ‘더’는 뚱뚱하고 굼뜬 모습일 것 같다. 바로 나의 모습이다.

‘먼저 좋아’ 손녀는 내게 새로운 삶의 목표와 방향을 선물해 주었다. 오늘도 나는 이렇게 아이에게서 배운다. ‘그래 하야, 하부지도 이제부터 먼저 좋아 할게’ 나는 아이를 품에 꼬옥 안고 선물로 줄 것이 없을까 바쁘게 눈을 움직인다. 아이도 내가 먼저 뭐든 줘야 계속 ‘먼저 좋아’ 할 것이다.

 

 

수필가·칼럼니스트·문학평론가.

한국수필문학상, 동포문학상대상, 현대수필문학상 수상.

수필집 ≪날마다 좋은 날≫외 11권.

현재 ≪수필세계≫․≪좋은문학≫․≪건강과생명≫ 편집위원. 강남문협부회장. 한국수필작가회장(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