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한 그릇과 나의 어머니

 

김상환

 

“언제 우리 밥 한번 먹읍시다.” 오늘 처음만난 사람이 그냥 헤어지기가 섭섭하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이런 경우 흔히 인사치레로 하는 빈말이다. 공수표인 줄 뻔히 알면서도 호감을 표시하는 말이기에 기분이 좋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첫인사가 안녕이라는 말보다“밥 먹었느냐”였다. 이제 배고픈 시절은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나에겐 팥죽에 대한 잊지 못할 사연이 있다. 지금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팥죽을 보면 어머니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저미어 온다.

어머니는 삼십대(1949년)에 홀로 되어 우리 삼남매를 키우셨다. 가난한 살림에 식구들을 굶게 할 수가 없어 경험 없는 장사라도 해야 했다. 우선 장사밑천이 없으니 집안에 있는 물건이라도 내다 팔아야겠는데, 집 안팎을 아무리 둘러봐도 돈이 될 만한 물건이 없었다. 생각다 못해 토란 대 말린 것과 메주콩을 팔아서 다른 곡식으로 바꿔 오기로 했다. 그 콩은 인근 부자로 손꼽히는 외가댁에서 장을 담그기 위해 얻어온 것이었다.

추운 겨울,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새벽에 아침도 굶고 식은 밥 한 덩이를 무명베 조각에 싸가지고 가셨다. 이른 시간이라 다행히 빈자리가 하나 있어 시장주변에 자리 잡을 수가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여인과 나란히 노점을 펼쳤는데, 사람들이 어머니 물건은 거들 떠 보지도 않고 옆의 여인물건만 사가더라는 것이다.

오후가 되도록 개시도 못했는데 몹시 허기가 져서 밥을 먹으려고 보자기를 풀어보니 꽁꽁 얼어서 먹을 수가 없었다. 밥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부터 배는 더 고프고 한층 더 춥게 느껴졌다. 다리에 힘이 빠지고 부서질 듯이 아파오는데, 식당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음식냄새에 창자가 꼬이는 것 같고 현기증까지 일어났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처음만난 장사꾼 아주머니가 팥죽을 사주면서 같이 먹자고 했다. 배가 몹시 고프던 터라 염치불고 하고 죽 한 그릇을 후딱 먹어버리자, 죽을 사주었던 분이 자기가 먹고 있던 죽을 어머니 그릇에 덜어서 주셨다. 자기 배가 고파도 개떡하나 사먹기 어려웠던 시절에, 낯선 사람으로부터 뜻밖의 후한대접을 받으니 감정이 복받쳐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시장기는 해결했으나 파장시간이 되어가도록 물건을 하나도 팔지 못했다. 어찌할지를 몰라 발만 동동거리고 서있는 것을 딱하게 여긴, 팥죽을 사주었던 그 아주머니가 손님을 불러주고 장사를 거들어 주었다. 덕분에 어느 한사람이 토란 대 말린 것이 좋다고 사가자 몇 사람이 덩달아 메주콩까지 사갔다.

어머니가 이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토란 대와 콩을 다 팔았다는 부분에서는, 어떤 큰일을 해낸 사람의 목소리 같았다. 그러나 “그날 어둑어둑할 띠게 보리쌀 두 되 팔아갖고 집으로 온디, 새들 논 몇 마지기 값 벌어갖고 온 것 같았어야.” 하고 말씀 하시는 어머니 음성은 촉촉이 젖어 있었다. 당시 전라도에서는 쌀이나 보리를 사는 것을 판다하고, 실제로 파는 것은 돈을 산다고 표현 했다. 즉 돈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쌀로 물건을 사고파는 것처럼, 쌀을 중심으로 셈을 했다.

어머니는 적선積善 중에서 가장 큰 적선이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일이라고 강조하시고, 혹시라도 동네에 들어온 장사꾼이 잠자리를 구하려하면 앞장서서 침식을 제공해주었다.

나는 나이 들어 사업을 그만두고 노후 대책으로 상가건물을 사서 이사했다. 대부분의 입주자들이 건물 주인이 아니고 세입자들이어서 이웃과 소통이 단절되어 아파트 단지보다 그 정도가 더 심했다.

이웃을 모르고 살아가려고 하니 내가 더 불편했다. 우선 통성명이라도 하기 위해 가까운 이웃들에게 내가 생산했던 제품을 선물했다. 내친걸음에 몇 분들을 모시고 식사 대접까지 했다. 그러자 이웃들도 답례로 밥을 사게 되었다. 서로 밥을 사기위한 구실로 눈 내리면 눈이 온다고,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온다고 자주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함께 밥을 먹으면서 서로의 마음이 열려 소통이 이루어지고 정이 쌓이게 되어 함께 외국여행까지 다녀왔다. 지나고 보니 우의를 다지는 데는 식사를 함께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밥은 우리 삶의 중요한 화두이며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밥은 곧 삶이고 사랑이며, 밥을 나누는 것은 마음을 나누고 정을 나누는 일이다. 그러기에 소중한 사람들과 마주 앉아 맛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다. 직장이나 단체에서도 ‘한솥밥을 먹은 사람들’이라는 말을 자주한다. 이는 끈끈한 정으로 뭉쳤다는 뜻으로 한국적인 정서가 물씬 풍긴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가족이라는 말보다 식구라는 말에 더 깊은 정을 느끼게 된다.

요즘같이 풍요로운 시절에도 음식을 대접 받으면 이처럼 감동을 받는다. 그런데 보릿고개를 겪던 시절에, 더욱이나 가장 춥고 배고플 때 따뜻한 팥죽 한 그릇에 대한 고마움이 어떠하였겠는가,

어머니께서 그 은혜를 평생 잊지 못하고 늘 감사해 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2006년), 타고르문학상, 중구문예문학상 수상

수필집 ≪쉼표는 느낌표를 부른다≫, 현재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원, 한국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