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배혜숙

 

남성합창단의 연주가 끝났다.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손뼉을 치고 ‘브라보’ 소리까지 질렀다. 좀 지나치다 싶었는지 옆 좌석의 여자가 힐끗거리고 같이 간 친구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나를 뚫어지게 보았다. 박수에 인색하다고 평소에 지청구를 듣던 지라 그녀의 표정이 조금 복잡하게 얽혀드는 것을 보고 귀에다 바짝 입을 갖다댔다. 남성의 울림통이 얼마나 근사하냐고.

미리 받아 본 시립합창단의 봄 연주 프로그램에는 <두 대의 피아노와 남성 합창을 위한 ‘예술가에 부쳐’>라는 곡이 눈에 확 들어왔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리스트의 곡이었다. 프란츠 리스트는 수많은 피아노곡을 작곡한 천재 음악가다. 그가 남성 합창을 위한 작곡을 했다니 괜히 흥분이 되어 제목 아래 빨간 줄을 죽 긋고 연주회 날을 기다렸다.

<두 대의 피아노와 남성 합창을 위한 ‘예술가에 부쳐’>는 우리나라에서 초연되는 곡이라 무한한 상상을 펼치게 했다. 두 대의 피아노가 서로 화답하며 곡을 끌어가고 남성의 매력적 성부인 테너와 바리톤 그리고 베이스가 서로 주고받는 소리는 역동성 있는 무대를 만들어갔다. “마법의 거룩한 시들은 조용하게 크나큰 조화의 바다로 이끈다.” 그 노랫말처럼 무대는 고요하나 소리는 광활한 바다로 출렁댔다. 그런 풍성한 연주를 듣고 손바닥이 아프도록 흔흔한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면 예의에 벗어나는 일이 아닌가.

여고 2년 동안 합창반을 했었다. 친구가 실기 심사를 받는다기에 호기심에 따라갔다가 “좋아 합격!” 하는 선생님의 굵직한 음성에 끌려 합창반이 되었다. 제일 낮은 성부인 알토를 지망하는 사람이 없어 고심하던 선생님께서 피아노의 건반을 점점 내려치는데 의외로 낮은 음이 술술 나왔다. 그게 화근이 되었다.

대회가 다가오면서 소프라노는 주된 멜로디를 끌어나가야 하기 때문에 친구는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날계란까지 먹었다. 나는 그런 노력이 필요 없었다. 특히 여성 4부 합창일 경우엔 노래가 끝날 때까지 베이스음만 몇 번 깔아주면 그만이었다. 헨델의 <할렐루야>를 부를 때는 “주의 주―― 또 왕의 왕――” 이 악절을 몇 번 하고 나면 곡이 끝났다. 맥 빠지는 일은 그 뿐이 아니었다. 소프라노나 메조소프라노의 화려한 음색을 잘 듣고 있다가 내 파트가 되면 제때 맞추어 소리가 나와야 화음의 밸런스가 맞는데 그걸 놓치고 선생님께 꾸중을 듣곤 했다.

합창연습을 하는 것도 유쾌한 일이 아니었지만 무대 위에 올라가는 일은 더욱 곤혹스러웠다. 남 앞에만 서면 고개가 저절로 꺾이는 내가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애당초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었다. 사실 사십여 명의 단원 중 내 자리는 제일 뒷줄이라 앞에 있는 관중은 보이지 않는데도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합창반을 하는 동안 환청에 시달렸다. ‘못난이. 빙충이’ 내 뒤통수에다 바늘 꽂는 듯한 소리에 놀라곤 했다. 그건 외모 콤플렉스와 함께 나를 대인 기피증으로 몰아갔다. 무대 위에 올라서도 옹졸한 행동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항상 고개를 숙였고 입도 제대로 벌리지 못했다.

2학년이 되고 1학년 신입단원이 들어올 때 그만 둘 수도 있었다. 낮은 성부를 맡은 아이들이 슬금슬금 연습시간에 참여하지 않더니 결국 탈퇴하는 경우도 있었다. 낮은 성부에는 단원이 부족했기 때문에 나까지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빠진다고 합창반이 해체되는 것도 아닌데 쓸데없는 걱정으로 괴로운 시간을 이어갔다.

대회만 나간다면 그럭저럭 버티어 나갈 수 있겠는데 교내 행사에 합창 공연은 빠지지 않았다. 하긴 학생들이 보여줄 게 무에 그리 많았으랴. 전국을 휩쓸며 독창대회에서 상을 받던 선배 언니의 공연과 몇 사람의 악기 연주가 끝나면 마무리는 꼭 합창이었다. 두어 번 꾀병을 부려 양호실에 누워 공연에 참여하지 않기도 했다. 사실, 무대에 오르고 난 후엔 몸살을 했다.

제 서슬에 생채기를 내어 시름시름 앓던 가을밤이었다. 교회에서 성가대를 하는 소프라노 파트의 친구가 내 손을 끌었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합창단들이 큰 교회에서 경연을 한다고 했다.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끌려가다시피 따라갔다.

그날 밤, 남성합창단이 부른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은 나를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교회의 높은 천장을 돌아 둥근 창문을 흔들고 다시 마룻바닥을 떨게 한 남성합창단의 볼륨감 넘치는 울림은 내 몸을 저릿저릿 아프게 했다. 가슴 밑바닥에서 차오르는 슬픔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 곡은 내 설움의 뿌리를 통째로 건드리고 말았던 것이다. ‘내 마음아 금빛 날개를 타고 멀리 날아보라’ 히브리 노예들처럼 날개를 달고 현실을 떠나 멀리 날고 싶었다. 하루하루 지쳐가는 내 처지가 가여워 금빛 날개가 필요 했다. 히브리 노예들이 자유를 갈구하며 고향인 예루살렘으로 날아가고자 하는 그 슬픈 노래가 왜 나에게 위로가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음악 선생님께 부탁하여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음반을 빌려 친구네 새로 산 전축에 걸어 두고 거의 매일 들었다. 학교가 파하면 이 곡을 듣고서야 집으로 갔다.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중 3막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을 들으면 애절함을 넘어 사무치는 그리움까지 전염이 되는 듯했다. 고등학생이 된 후 처음으로 평온함을 느꼈다. 그 곡을 듣고 있으면 내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 소리의 결을 따라 어디든 날아 갈 수 있었다.

합창은 자기를 죽이고 상대를 살리는 일이라고 선생님은 늘 강조하셨다. 자신의 소리는 물론 다른 사람의 소리를 잘 들을 줄 알아야 조화로운 곡이 된다고 수시로 하신 말씀을 무시했었다. 무지함의 소치였다. 내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입만 벙긋거린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합창 반으로서 마지막 연주가 된 무대에서 처음으로 목을 빼고 지휘봉을 바라보았다. 선생님과 눈도 마주쳤다. 내 소리는 물론 남의 소리도 귀를 활짝 열고 들었다. 아, 그 미묘한 화음. 남성합창단이 교회의 천장을 휘감아 울리던 바로 그 소리였다.

아무도 내게 ‘너는 못난이’ 라고 손가락질을 하지 않았는데 내 이름이 처음부터 ‘못난이’ 인 줄 알고 살았다. “알토로는 네 목소리가 딱 어울려.” “음이 낮을수록 하나님과 가까이 가는 소리야.” 그런 칭찬의 말이 다 거짓인 줄 알았다. 내 안에 깊숙이 자리한 아둔한 성향이 합창을 하면서 드러나게 될 줄이야.

<나부코> 음반을 돌려주러 간 날, 선생님과 함께 합창공연을 보러갔다. 돌아오는 밤길은 그림자가 선명했다. 선생님께선 열엿새 달이 보름달보다 더 밝은 법이라고 웃으며 달을 가리키셨다. 내 안의 욕심을 드러낼 수 없었기에 허기가 졌던 합창 반 시절은 그렇게 끝이 났다.

합창은 삶의 모습과 닮아있다. 다른 사람의 소리를 세심하게 들어주는 여유와 배려, 그건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니까. 나를 살짝만 죽여주면 상대방이 분연히 살아 움직여 세상을 구하는 것이 합창이고 그 또한 우리네 삶이다. 서로를 보듬어 주듯 아우르는 맛이 있는 합창곡을 좋아한다. 그것도 남성합창의 풍부한 울림이 있는 연주회를 목마르게 기다린다.

전설의 남성합창단인 돈 코사크 합창단의 내한 공연을 보면서 아카펠라로 뿜어내는 그로테스크한 창법에 홀려 목이 메었다. 낮은 소리는 장대하고 고음은 비 개인 하늘처럼 영롱했다. 그들은 앙코르 곡으로 <선구자>를 불렀다. 옛날과 달리 남의 소리를 듣는데 능숙한 나도 기립박수를 보냈다.

‘내 마음아 금빛 날개를 타고 멀리 날아보라’ 지금도 그 첫 소절만 나오면 쿵 소리가 나도록 가슴이 내려앉는다.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1977년).

한국문인협회 회원 · 국제펜클럽회원 · 대표에세이 회원.

수필집 ≪목마할아버지와 별≫ ≪양파 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