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대한 단상

 

문향선

 

현대인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일까?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하는 사람들에게는 잠만 자는 집인가 하면 집안에서 오붓하게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보금자리이기도 할 것이다. 내게 어느 쪽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다. “반나절은 있을 수 있으나 온종일은 힘들어요.”다. 그렇다면 비오는 날은 어떤가? 도서관에 가서 서가를 산책하며 책을 본다. 나뭇잎에 물방울 맺히는 걸 바라보며 먼 기억을 불러내어 그리움에 빠져보기도 한다. 정원을 갖지 못한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도서관의 정원이야말로 내게 할애된 이상적인 공간이다. 거목으로 자란 마로니에는 잘빠진 남자를 보는 듯하고, 분재형의 소나무는 인고의 세월을 살아낸 노년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폭우 속을 무릅쓰고 집을 나섰다. 빗방울이 지면에 닿기도 전에 종아리와 샌들을 흠뻑 젖게 한다. 집을 나서니까 비를 부른다고 생각하며 빗발이 거셀수록 유쾌해진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집에 돌아왔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 내의 제일 작은 평수의 집, 집이라고 말하지만 뭔가 빠진 듯한, 우리의 정원은 있을망정 나의 정원은 없는 반듯한 시멘트 건축물이다. 위층의 발자국 소리에 신경이 곤두서고 앞집에서 문 닫는 소리는 늘 ‘쾅’이다.

응접실은 손님이 찾아올 일이 별로 없어서인지 이제는 거실이라고 불린다. 예전 한옥에 살 때는 집이 정거장이었다. 시골에서 광주로 일보러 오는 친척들, 인사성도 밝게 “자고 가세요.” 하며 붙잡는 것은 예절이었다. 아이들의 친구들, 남편이 만나야할 사람들도 집에서 모셨다. 인심도 수상해졌는지 만날 사람도 집안으로 불러들이지 않는다. 좋은 식당, 멋진 카페에서 접대하고 자가용의 발달로 자고 갈 일도 없어졌다.

거실엔 21년째 상주하고 있는 검은 소파와 엔티크 스타일의 거실장이 주인만큼이나 낡았다. 남의 집들은 진즉에 갈아 치우고 갈색이 어둡다고 흰색이나 파란색 칠을 해서 싼티를 조장했다. 19세기 풍의 느낌이 현대적인 것에 견줄 바가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거실장 위층엔 신기할 것도 없는 수석 몇 점이 있는데 남편이 한때 취미시 했던 것들이다. 유리창이 없는 아래 부분은 문고본의 책들이 포진하고 있다. 사이즈가 알맞아서다. 반대편 책장에는 남편의 책이 가득하다. 주로 동양고전, 스님들이 쓴 책들이 많다. 빛바랬으나 애지중지하니 두고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화면이 제 마음대로 가로세로 빗금을 긋는 묵은 텔레비전이 있다. ‘안보면 말지 뭐’ 하고 바꿀 염도 없는 무신경한 두 사람이 소굴로 여기는 곳이다.

안방에는 자개농에 자개문갑이 포진하고 있어 이 집 주인은 웬만히 낡은 인간들이라고 말해준다. 티크장이나 원목 가구가 유행이어서 바꾸고 싶기도 했지만, 자개농을 버리기엔 용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장남이란 아이가 제가 물려받겠다고 선언하는 바람에 고이 간직할 이유가 생겼다. 아버지의 시계는 장남이 물려받는 법이라고 구식 손목시계도 차고 다니는 녀석이다. 문갑 위에는 백자병이나 청자 항아리가 제격이나 부서진 뒤로는 살 엄두도 내보지 않고 책이나 올려놓고 사진틀만 즐비하다. 품격 있는 살림이 없으니 나잇살이 무색하다.

안방을 나오면 벽면에 전축이 놓여 있다. 오래된 것이기는 해도 소리에는 문제가 없어 라디오의 에프엠 음악과 시디를 넣고 듣는다. 엘피지 판은 자주 듣지 못한다. 근대문명의 선두주자인 전축 위엔 한국화 한 폭이 걸려 있어 밸런스는 맞지 않지만 남편의 강권이니 이도 막지 못한다.

문간방에는 내 침대가 있고, 서랍장이 두 개 있다. 침대 머리맡에는 진경우 화백의 흑백 크로키 한 점이 걸려 있다. 작년 겨울에 한 점 구입하고 가슴이 설렜다. 창 아래 세워놓은 두 점의 유화는 김혜숙이란 여류화가가 그린 것으로 회갑기념으로 구입했다. 그리고 작은 앉은뱅이 밥상이 있다. 그 위에 라디오 하나가 불면의 밤을 달래준다. 읽고 있는 몇 권의 책들이 소품 역할을 하고, 동그란 의자에는 스탠드가 불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의자 하나. 나는 의자를 사랑한다. 의자는 나를 나이게 하는, 철학적 사색이 묻어나는 그런 의자를 늘 꿈꾼다.

안으로 깊이 들어오면 2인용 식탁이 놓여 있다. ‘노란 방’에서 고흐가 쓰던 식탁 수준이다. 하얀 레이스 식탁보를 깔고 그 위에 유리를 씌우니 튼튼하면 그만이라고 소박한 것을 골랐다. 예전에 아버지가 시계란 시간만 잘 맞으면 된다는 지론을 펼쳤듯이 식탁 역할만 하면 충분하다. 식탁 위 벽에는 우리 집 갤러리(?)다. 노송 한 그루를 그린 수채화 한 점과 ‘강촌장하江村長夏’라는 한국화 한 점, 피카소의 모작품이 한 점이다.

주방 옆 구석진 방은 ‘유당 서실’, 나의 서재이다. 창이 있어 나무와 새소리, 바람, 건너편 집의 불빛도 들어온다. 책장 네 개에 책이 가득하다. 명랑한 방이다. 바닥엔 내 초상화 한 점, 황영성 화백의 꼴라쥬 한 점이 세워져 있다. 창 옆에는 컴퓨터가 있다. 글도 쓰고 영화도 본다. 그 위 벽엔 3남매의 결혼사진이 걸려 있다. 둘은 전통혼례이고 차남은 현대식으로 했다.

27평, 두 식구가 살기엔 적당한 크기다. 중년부터 노년의 지금까지 모든 걸 집은 기억할 것이다. 슬픔보다는 기쁨의 순간들을. 분할된 공간들이 실은 하나의 오롯한 삶을 살아낸 집으로서의 제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고 본다. 어딘가 우리의 호흡이 천장 아래 떠돌고 한때 떠들썩했던 웃음소리들은 아직도 공기를 흔드는 환청으로 남아 있다. 집이 존재하는 한 귀향을 꿈꾸며 길 위에 서고 싶은 꿈은 생을 충만하게 할 것이다. 벌레처럼 움츠리기도 하고 베란다에 나가 창을 열고 심호흡을 할 수 있는 집은 안식의 잠을 주는 곳이다. ‘반나절만 운운…’은 분명 엄살이기 십상이다.

 

 

≪문학과 의식≫ 신인상으로 등단(1990년).

저서 수필집 ≪오래된 시계≫.

현재 가교 문학회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