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를 위하여

 

정태헌

 

오솔길, 새 한 마리 땅 위에 앉아 있다. 걸음을 멈추고 묵연히 바라본다. 산에서 사는 놈인데 마을까지 내려와 나뭇가지도 아닌 맨땅에 앉아 있다니. 길섶에 하얀 개망초꽃이 무덕무덕 피어 있어 뺨에 박힌 갈색 반점이 도드라져 보인다. 직박구리다. 주로 나무 위에서 살기에 땅에서는 보기 드문 텃새인데 궁금하다. 뱃속이 무거운 걸까, 먹이를 찾기 위해 내려온 걸까. 아니면 잠시 땅에 머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눈길이 마주치자 포르르 공중으로 솟아올라 숲 속으로 향한다. 날갯짓하는 직박구리의 꼬리를 따라간다.

젊을 적, 생태지도를 들고 섬진강의 발원지와 종착지를 눈여겨 살펴본 적이 있다. 물줄기는 전북 진안 마이산 줄기에서 발원하여 남도의 들녘을 적시며 오백 리 길을 굽이굽이 잇다가 광양만까지 달려 남해로 흘러든다. 언젠가는 그 물줄기를 좇아 바다에 이르는 길목까지 따라가 보고 싶었다. 하여 해마다 철마다 강줄기를 찾아 나서곤 했다. 하지만 종착지까지는 가보지 못하고 보성강과 곡성 압록, 지리산 피아골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 근처에서 감돌고 있을 뿐이다. 인생 장년기에 아직도 섬진강 중류를 벗어나질 못하며 바장거리고 있는 셈이다.

강 상류 쪽으로 눈길이 갈 무렵, 마음에 든 아파트를 분양한다는 광고가 났다. 마음을 결정하고 찾아갔을 때는 이미 분양이 끝난 후였다. 한데 맨 밑층과 꼭대기 층이 벌써 매물로 나와 있었다. 층수가 마음에 안 들었을까. 뜻밖에도 웃돈을 요구하였다. 돈을 얹어서라도 계약을 하고 싶었다. 결국 위로 올라가고 싶어 꼭대기 층을 선택했다. 밑층은 짓눌리는 느낌이어서 답답하지만 꼭대기 층은 통풍이 좋고 천장이 더 높아 숨통이 트였다. 최고층을 선택한 것은 무엇보다 내심 남들보다 더 높은 곳에서 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해서 들게 된 아파트에서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이십여 년을 내리 살아왔다.

한데 언제부턴가 높이 오르지 않고 밑에서 내처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 시작했다. 높은 곳이 아닌 낮은 단독주택이 눈여겨 보이기 시작한 게다. 오르지 않고 밑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이 싹트기 시작하자 엘리베이터를 타고 밑으로 내려갈수록 마음이 더 넉넉하고 편해지는 게 아닌가. 문득 높이 오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곳으로만 치달으려고 했던 지난날이 갈마들었다. 턱없이 오르려고만 했던 젊은 날의 욕망과 중년의 탐착을 다독이며 평정을 다잡아야 할 때가 이젠 다가온 모양이다. 낮게 흐르는 강물도 높은 하늘에서 내려온 빗물이 아니던가. 발원할 때는 가느다란 물줄기였지만 서로 만나 어깨동무하며 흐르고 흘러 드넓은 바다에 이르게 된다.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야 비로소 순해져 완성되지 않던가. 결국 물줄기는 낮은 데로 달려 강물이 되고 바다로 흘러 합류한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낮게 흐르는 저 강물이 웅숭깊게 보이는 까닭을 이제는 조금 알 듯하다.

위에서 밑으로 흐르지 않은 게 어디 있으랴. 햇살과 달빛도 눈과 비도 밑으로 흘러내린다. 하늘에 떠 있는 독수리도 때가 되면 땅으로 내려오고, 벼 이삭도 고개 뽑아 기세 좋게 오르다가도 때가 되면 밑으로 향한다. 나무도 하늘을 향해 가지를 뻗고 있어도 때가 되면 잎을 떨어뜨리고 열매조차 지상으로 내려 보낸다. 높은 곳에 올라 영원히 머무르는 게 과연 무엇이 있던가. 생명을 지닌 것은 언젠가는 땅에 몸을 누이고 더 낮아져 마침내 땅속으로 가뭇없이 스며들게 마련이다.

위에서 밑으로 흐르는 것은 물만이 아닌 모양이다. 인간 또한 어찌 예외이랴. 하나 오르고도 내려오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 자리를 고수하려고 더 오르려고 물색없이 발버둥질 치다가 결국 추한 모습으로 남의 손에 끌려 내려지기도 하니 말이다. 높은 곳에 오르면 스스로 낮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탓이리라. 높은 곳은 뱃속을 비워야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곳이다. 스스로 낮아져야 내려오는 길이 순탄하고 마음 가벼울 게 아니겠는가.

새처럼 높은 곳에 떠 있기 위해서는, 강물처럼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창자를 비우고 몸을 낮고 옅게 풀어야 하리라. 물줄기는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면서 굽이굽이 흐르며 제 갈 길을 한눈팔지 않고 흘러가야 하리라. 직박구리도 생존을 위해서 당분간 공중에 머물러야 하지만 어느 땐가는 다시 땅으로 내려와야 하는 게 운명이 아니랴.

바람 소슬하게 부는 날, 여윈 물줄기 따라 흘러가 볼 참이다. 하동과 광양만을 거쳐 남해까지 흘러가 보리라.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에 서서 젊은 봄날과 장년의 가을날이 손을 맞잡고 물빛을 짯짯이 바라보리라. 흐르는 강물의 눈빛과 표정만 바라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쯤 해서 이제껏 길항하던 자아와 순리가 악수하며 화해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월간문학≫으로 등단. ≪수필세계≫편집위원.

대표에세이문학상 수상.

저서 ≪동행≫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