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유영애

 

‘하늘이’는 우리 집에서 키우던 개의 이름이다.

몇 해 전, 안면이 있는 어느 분이 전화를 주셨다. 가족처럼 아끼며 같이 살고 있는 개 한마리가 있는데 이제는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아 돌보기가 점점 힘이 들어 고심한다는 이야기였다. 개를 탐내어 주변에서 팔라는 유혹을 받기도 했지만 가족처럼 아껴오던 처지라 함부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한다. 몸집이 워낙 크고 좋아 자칫하면 똥개로 둔갑시켜 보신탕용으로 쓰일까봐 거저 주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받을 집으로 보내고 싶다고 했다.

그 분은 이어 말하기를 우연히 수필 한 편을 읽었는데 그 글을 쓴 사람에게 준다면 잘 키울 것 같아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나는 몇 년 전에 ‘귀숙이’라는 이름을 가진 개를 키우면서 경험했던 이야기를 글로 발표한 적이 있었다. 그는 그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며 개를 아무 조건 없이 주고 싶다는 말을 했다.

애지중지하는 개를 덥석 받을 만큼 가까운 사이도 아니어서 처음에는 망설였었다. 그러나 그 후 몇 차례 전화를 하면서 그 분의 진심이 느껴져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때마침 우리는 새로 장만한 농가에서 주말을 보내는 터라 집을 지켜 줄 듬직한 개 한 마리가 필요한 형편이기도하여 바로 데려왔다. 그렇게 해서 '하늘이'는 우리 가족이 되었다.

‘하늘이’는 양 몰이에 뛰어난 콜리라는 품종이다. 사람들은 송아지만한 개를 볼 때마다 아주 잘 생긴 귀공자 같다며 신기한 듯 쳐다보고 무서워했다.값이 비싼 개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거저 주신 분에게 송구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주신 분의 성의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정성껏 보살펴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하늘이’는 의젓하며 눈치가 빨랐다. 비단결 같은 연갈색 털은 부드러웠다. 길쭉한 입이며 특히 윤기가 흐르는 긴 꼬리는 귀티가 났다. 만약 개에게도 계급이 있다면 우리 ‘하늘이’는 귀족일 것이다. 생김새뿐 아니라 하는 짓도 철든 어른처럼 눈치가 빠르고 의젓하여 키우기에 큰 부담을 주지도 않았다.

이 녀석은 인간들처럼 자신이 살아가야 할 생존방식을 터득한 것처럼 지혜롭게 굴었다. 아니면 불가에서 말하듯이 전생에 우리와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첫 대면 순간부터 구면인 것처럼 친해졌다. 특히 제 먹이를 챙겨주는 나를 잘 따르고 살갑게 굴었다. 주말에 밭에서 일하는 것이 지겹다며 갖은 핑계로 농장 가는 것을 꺼려하던 아이들의 태도도 하늘이가 오고부터 달라졌다. 자기네 용돈을 축내면서까지 개의 간식을 사들고 주말이면 농가를 찾았다. 이렇게 '하늘이'는 온 식구의 사랑을 받으며 우리와 정들어 갔다.

양몰이 실력을 뽐내 듯 ‘하늘이’는 우리가족을 만나면 그 큰 등치로 머리 위까지 뛰어오르며 반긴다. 끙끙거리며 막무가내로 안겨들고는 쓰다듬어 주어야 겨우 잠잠해진다. 어지럽지도 않은지 식구들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사람을 따른다. 이러니 미물이지만 정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몇 달을 잘 지냈다.

며칠 전, 여느 때처럼 주말에 이 녀석을 만났는데 행동이 이상했다. 힘이 없어보였고 술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더니 그 자리에 픽 주저 앉아버린다. 개집을 살펴보니 토사한 흔적들이 널려있고 냄새도 고약했다. 허겁지겁 멀지 않는 동물병원으로 데려갔다. 수의사는 탈수증이 심하다며 우선 링거 주사를 하여 수분 보충을 시킨 후 검사 해야겠다며,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였다.

그동안 개들을 많이 키워 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했다. 혼미상태의 개를 병원에 맡겨두고 집으로 향하는 발길이 무거웠다. 그날 오후 늦게 아무래도 힘들 것 같으니 서울대 동물병원으로 옮기라는 연락을 받고 정신없이 개를 데리러 갔다. 축 쳐진 채 주사에 의지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측은하여 ‘하늘이’를 연달아 불렀다. 그러나 반응이 없었다. 개를 살며시 쓰다듬어 주었더니 그제서야 겨우 실눈을 뜬다. 그리고는 비실거리며 가까스로 일어서더니 긴 꼬리를 두서너 번 흔들곤 이내 쓰러져 버린다. 애절함이 가슴을 저민다. 최악의 상태에서도 주인에 대한 예의와 사랑을 표현하는 몸짓이었고 또 살려 달라는 절박한 애원이기도 했다.

우리 가족들은 최선을 다해서 이놈을 꼭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동두천에서 신림동에 있는 서울대 동물병원에 도착한 것은 자정이 지나서다. 아기처럼 담요를 덮어 내가 안고 갔다. 이놈이 배설한 오물들과 개털로 내 모습은 물론 승용차도 엉망이었다. 병원 측은 장출혈이 심하다며 응급처치를 서둘렀다. 처음에는 장담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하였지만 7일간의 입원으로 예전처럼 건강한 모습을 되찾았다.

죽을 고비를 넘긴 이 녀석이 이제는 주인 은혜를 보답하려는 듯 전보다 더 살갑게 안겨든다. 아프기 전에는 제 집에서 잠을 잤었는데 퇴원 후부터는 꼭 현관 앞에서 밤새껏 보초를 서다가 낮이 되면 제집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사람보다 더 신의를 지키는 하늘이의 모습이 우리 가족을 감동시킨다.

만약 ‘하늘이’의 경우가 인간이었다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그렇게 살갑게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비실거리면서도 가까스로 일어나 꼬리를 흔들다가 이내 쓰러지고 하던 개의 그 뜨거운 충정忠情을 잊지 못한다. 하늘이가 우리에게 보여 준 행동은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아름답고 끈끈한 정이었다.

 

 

≪에세이문학≫으로 등단.

수필집 ≪아름다운 착각≫ 시조집 ≪어머니의 괴얄띠≫ 외.

노산문학상, 한국동시조 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