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소리

 

한원준

 

난 여름을 견뎌내지 못한다. 땀나는 것이 싫고 더위가 싫다. 그렇다고 여름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쩔 수 없이 버텨내야만 한다. 그래서 여름이면 내 친구가 했던, “도망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말을 나 스스로에게 자주 강요한다.

여름날, 외출을 하고 돌아오거나,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샤워를 한다. 그리고 젖은 몸을 수건으로 말리며 선풍기를 튼다. 내 낡은 선풍기는 ‘드르릉’하는 가벼운 금속성 소리를 내며 돈다. 낡아 균형이 흐트러진 날개가 안전망에 닿는 소리 같기도 하고, 모터의 탄소 브러시가 닳아 내는 소리 같기도 하다. 그 소리는 한 번만 나고 금방 사라지지만, 난 그 경쾌한 소리가 좋다. 그 소리는 시원한 바람이 따라온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장마가 지나면 매미가 운다. 장만 전이나 장마 후나 날이 뜨겁기는 마찬가지고, 요즘에는 장마가 장마 같지도 않아, 장마가 끝난 후에 비가 더 오지만 매미는 굳이 기상청에서 발표한 장마 후에 나타난다. 어느 때는 매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텔레비전 볼륨을 높이게 만들지만 그 요란한 소리가 좋다. 귀를 기울여 쓰르라미인지, 유지매미인지, 깽깽매미인지, 참매미 소리인지 구별하게 만들기도 한다. 여름이면 꼭 한 번은 밤에 켜 놓은 내 전등에 홀려 집안으로 날아드는 매미가 있다. 밖으로 다시 내보내기 위해 손으로 잡으면 ‘브르르’ 내 손을 진동하게 한다. 요즘은 매미도 더위에 정신이 나가 자주 밤에 울기도 하지만, 매미의 소리는 따분하고 지친 여름 오후에 들리는 소리다. 깊은 숲처럼 시원한 소리다.

소나무 숲 사이로 부는 바람소리도 좋다. 뜨거운 여름, 숨을 몰아쉬고 이마의 땀을 연신 닦으며 소나무 숲 안으로 들어서면 그 신선한 향기에 우선 기분이 좋아진다. 숲으로 불어오는 바람소리는 마치 물이 쏟아지는 것 같은 시원함이다. 가는 바람은 가는 바람대로 조용해서 좋고, 큰 바람은 소란해서 좋다. 소나무 숲 속에서 사람은 쉽게 행복해진다.

수영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소리는 나를 웃게 만든다. 아이들은 시끄럽다. 그 시끄러운 아이들이 기분 좋아지거나 행복해지면 더 시끄럽다. 여름날의 수영장에선 아이들의 비명과 고함과 웃음소리가 가득이다. 그 아이들의 기가 얼마나 센지 수영장이 공중으로 붕 떠오르고, 멀리 지나치는 내 얼굴에 큰 미소가 지어진다.

여름날의 빗소리. 봄에 숨죽여 내리는 비와 달리 여름 빗줄기는 굵다. 떨어지는 빗소리도 크다. 그 소란함은 바로 시원함이다. 비가 오기 전의 여름날은 언제나 후텁지근하고 힘들기 마련인데, 빗소리는 그 힘들고 불편한 느낌까지 몰아다 던져버린다. 달궈진 양철 지붕 위로 떨어지는 요란한 소리마저도 듣기가 좋다.

만일 소나기가 내린다면 더욱 좋다. 여름 날씨가 이리저리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바람조차 제대로 불지 않으면 땅 위는 한 마디로 불가마가 된다. 여름 날씨를 탓하는 할머니의 늘어진 젖가슴에까지 땀이 흠뻑 고여, 체면 불구하고 어린 손자 앞에서 수건을 가슴에 밀어넣고 땀을 닦을라치면 비가 온다. 참다참다 떨어지는 소나기 빗방울은 큼지막해서 아기 주먹만하다. 그 빗방울이 내는 소리는 묵직하다. 무성한 나뭇잎을 후려갈기는 빗방울의 소리는 겁이 날 정도다. 그래도 집안에 앉아있는 내 귀에는 시원한 음악으로 들린다. 곧 빗방울은 장대비로 변하고, 앞산에 뿌연 비안개가 퍼지면 시골집 마당에도 개울이 흐른다. 그 요란한 물소리. 더위도 소나기가 무서워 잠깐 도망을 간다.

비 그친 뒤에 나온 오후의 햇살. 그러면 무지개가 뜬다. 무지개는 들을 수 없다. 그러나 어린 날 처음 보았던 무지개를 기억하면 아이들의 환호성이 들린다. 그래서 내게 무지개는 아이들의 환호성 소리다. 무지개는 언제나 희미하다. 무지개가 저기 있다고 손가락으로 가리켜도 안 보인다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침착하게 위치를 다시 알려주면 그제야 ‘아’, 탄식으로 무지개를 말한다.

등목하는 남자의 다급한 호흡소리 또한 여름의 소리다. 한 낮, 밭에 나가 일을 하거나, 학교를 파하고 더운 길을 돌아 집으로 돌아오면 아낙이나 어머니는 등목을 해주신다.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 아이들은 쉽게 옷을 벗고 목욕을 할 수 있지만, 나이든 학생이나 어른들에겐 체면이 있어 그러지 못한다. 웃통을 벗고 우물이나 펌프 곁에 건강한 상체를 드러내고 엎드린다.

한 여름의 깊은 땅 속에 앉은 물은 차다. 겨울의 얼음보다도 차다. 그 찬물이 몸 위로 흘러내리면 참지 못하고 다급한 비명을 질러댄다. 비명보다는 탄식이다. 그저 다급한 호흡으로 내뱉는 단음절들이다. 찬물을 부으며 어머니나 아낙은 등을 문질러 준다. 때로 호들갑떠는 아들의 등을 ‘철썩’ 갈기기도 한다. 그것은 단연코 여름의 소리다. 생각만으로 웃게 되는 여름 소리다.

여름이면 난 자주 얼음 깨무는 소리를 듣는다. 냉커피나 차갑게 탄 차를 마실 때 난 얼음을 넣는다. 나는 소심해서 얼음을 깨물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거의 모든 여자들은 얼음을 깨물어 먹는다.

그 중에서도 어린 혜령이가 작고 보석처럼 빛나는 이로 얼음 깨무는 소리가 좋다. 신기할 정도로 작아 위태해 보이는 아이의 이는 아마도 정처럼 단단한 모양이다. 그 아이는 내 냉차 속에 든 얼음도 탐낸다. 얼음이 조금 크면 ‘오독오독’ 소리가 나고 얼음이 작으면 ‘와삭와삭’ 소리가 난다. 얼음을 씹고는 두 눈을 가는 선으로 만들며 웃는다. 그 웃음소리도 좋다. 냉장고가 사계절 필수품이 되어버린 지금, 어느 계절인들 얼음을 깨물지 못하겠느냐마는, 얼음 깨무는 소리는 다분히 여름의 소리다.

여름 소리는 아름답다. 그래서 그 소리는 하나 하나가 행복이다.

 

 

≪계간수필≫로 등단.

저서 ≪감골에서 온 편지≫ ≪불임의 땅≫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