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길

 

이미연

 

사월의 봄비를 맞으며 서울을 떠난 일행은 정오를 넘겨 진주에 도착했다. 냉면을 먹을까 비빔밥을 먹을까 고민하면서 시장 한복판으로 들어섰다. 이전을 앞둔 냉면집에서 놋그릇에 담긴 점심상을 받았다. 나지막한 지붕과 40년 전통이라는 문구와 방송에 맛 집으로 소개된 글이 적힌 현수막으로 장식된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었기에 옹기종기 모여 옹색한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시장안 분주함과 전통을 이어온 솜씨와 진주의 맛을 입안에 담는 지금의 시간은 다시 올 수 없을 것이다.

비가 그친 후 청초한 모습을 보여준 남강을 따라서 버스가 달리고 있었다. 단정하게 자리 잡은 진주성과 남강이 어우러진 풍경은 단정한 여인의 맵시를 보여주는 듯 했다. 오랜 도시 진주의 이곳저곳을 적고 있는 이정표가 보이건만, 우리는 길을 재촉해 지리산 평사리平沙里로 향했다. 섬진강을 하구河口에서 들어가니 푸른 잎의 벚나무들이 그 풍성한 가지를 바람에 날리며 우리 일행을 반기고 있었다. 장관이었을 만개한 하얀 꽃송이들을 상상했다. 관광버스 기사는 만개할 때 이곳에 서 있는 꽃나무 수보다 자동차와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이야기했다.

평사리에는 ‘토지’문학관이 있다. 원래는 토지의 세트장이 있는 곳이었고, 그곳에 방문객들이 오면서 가게가 생겼고, 등장인물들의 집들도 더 세워졌다. 언덕 위에 지은 전통 양반 기와집인 최 참판 댁 마루에서 바라본 너른 벌판은 풍요로웠다. 그 너른 들판을 바라보며 윤 씨 부인과 서희가 다짐했을 많은 것들을 나도 마음속으로 그려보았다. 이 아름다움과 지나간 세월 뿐 아니라 다음 세대도 봐야 할 마음의 유산임을 새기며, 화면 속에 세트장이 아닌 현장을 현실로 그리는 방문객들이 보였다.

서희 어머니인 아씨가 머물던 후원에는 그녀가 꿈꾸었던 행복이 그 아기자기한 장소와 잘 어울렸다. 그녀의 꿈과는 다른 소망을 품었던 주변 여러 인물들의 욕망과 좌절이 만들었던 현실과 허구를 글로 표현해 준 작가 박경리 선생님이 보고 싶어졌다. 지금은 안 계시다는 생각이 새삼스럽고 우리 일행은 그 곁으로 더 가까이 가고 있었다.

지리산과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 그 안쪽에 때론 넓게 때론 좁게 펼쳐진 벌판을 뒤로 하고, 진주 성안에 잘 정돈된 오래된 문화도시와 남강을 뒤로 하고 바다가 있는 이야기가 있는 통영으로 향했다. 항구 앞에 있는 횟집에 도착한 우리는 끝도 없이 나오는 반찬과 바다음식들을 맛보며, 하루의 일정을 정리했다.

지난해 원주 박경리 문학공원에 갔다. 그곳에는 해설을 해 주는 분이 있었는데. 사위인 김지하 시인과 동창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였다. 문학공원은 선생님이 살던 집이라 크지는 않았지만 체취가 느껴졌고, 안내하는 해설사가 생활의 소소한 부분마저 실감나게 이야기를 해 주었기에, 나는 가끔씩 그 때 들은 이야기들을 되풀이해서 생각하곤 했다. 서울의 정릉 집은 사진 속에 자주 등장하는데, 사연 많은 박경리 선생님이 살던 집은 어디쯤일까 지금도 남아있는지 궁금증이 일곤 했다.

통영 거리에 서니 골목마다 바람이 길을 내며 지나가고 있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통영이 다 바라보이는 곳에 올라서 바라보니, 도시 전체 모습이 아름다운 여인네가 살포시 바람에 옷자락을 날리며,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처럼 아련하면서도 몽환적이었다. 충무공이 시를 짓던 한산 섬이 보이고, 청마 유치환 선생님과 윤이상 선생의 고향이고, 외로운 할머니들이 사는 동파랑 마을을 아름답게 그려주는 화가들이 사는 그곳들이 삽화처럼 보였다. 저 멀리 박경리 선생님의 영혼의 집도 보였다.

젊은 날 선생님은 이 도시를 떠나서 먼 길을 돌고 돌아서, 마지막에는 발길을 돌려 추억과 즐거움을 주었던 통영인 고향에 영원히 잠들 곳을 찾아서 돌아왔다. 고향은 그 선생님을 만나러 올 방문객들을 위해 영혼의 안식처인 무덤가 언덕 초입에 기념관을 만들었다.

기념관 안으로 들어가니, 전시실을 지나 한 곳에 머무르니 자동으로 영상이 나왔다. 그곳에는 우리가 알고, 또 더 자세히 알고 싶었던 선생님의 이야기들을 화면과 목소리로 보여 주고 들려주고 있었다. 그 너른 집과 언덕에 해설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는 선생님을 만나보고 함께 생활했을 그 어느 사람도 찾을 수 없어서일까? ‘김 약국집 딸들’의 무대이며 젊은 날 선생님이 기거했던 집이 남아있지만, 그 어느 곳에도 지나간 세월이 무성영화인 양 통영은 말이 없었다.

통영을 떠나면서 적십자 병원 뒤편에서 꿀 빵을 샀다. 선생님 소설의 무대임을 떠올리면서, 언덕 위 저 동네를 올려다보았다. 가게 안에는 할머니에서 손녀까지 온 가족들이 모여서 수작업으로 긴 세월 같은 방법으로 꿀 빵을 만들고 있었고, 낡고 오래된 미닫이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나는 그 모든 모습을 흑백영화로 본 듯 했다.

누군가의 일대기를, 어느 집안의 굴곡 많은 삶의 모습들을 긴 호흡으로 이야기 해 주었던 선생님은 가고 더 이상 안 계셨다.

우리가 이즈음 들고 다니는 조그마한 손바닥 크기에 똑똑한 휴대폰 화면 위에 무슨 이야기들을 펼칠 수 있을까? 바쁘게 움직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대하소설이라는 것을 다시 읽게 할 수 있을까?

내가 한 질문에 답을 구하고 있을 때, 바닷바람인지 언덕 위에서 부는 바람인지 벌판에서 부는 바람인지, 세월을 이야기하듯이 그 모든 곳을 지나면서 만났던 이야기들을 내게도 전달해 주고 있다. 그 바람이 만든 길을 따라 우리 일행은 이곳에 왔다. 바람은 이곳에서 어디로 누구에게 불어갈까? 바다는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지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인다고 해서 바다라고 이름 붙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시원한 바람이 길을 내고 있다.

 

 

≪계간 수필≫로 등단(2000년).

그레이스 수필문우회 회원, 이대동창문인회 회원.

계수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