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 여행

 

조광현

 

통일 전 동독 제2의 도시였던 라이프치히 시市는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흐의 고향이다. 음악도시의 명성은 오늘날까지 유지되어 백여 명의 한국 젊은이들이 이곳에서 음악가의 꿈을 키우고 있다. 이곳에서 3박4일 학회 일정을 마친 우리 일행은 인근 소 도시 발트라우크에 들렀다.

물이 귀한 독일이지만 이곳은 예외였다. 질 좋은 광천수 덕택에 예부터 유명한 휴양지라고 한다. 라이프치히에 바흐의 향수鄕愁가 있다면, 이곳에는 독일이 낳은 거장 괴테의 향수가 짙었다. 그는 젊은 시절 수년간 이곳에 머물면서 손수 설계하여 숲속에 큰 정원을 하나 꾸몄다. 정원의 중심엔 인공호수를 파고, 또 한 쪽엔 작은 극장 하나를 세웠다. 후세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붙여 괴테 정원과 괴테 극장이라고 부른다. 인구가 5만 명에 불과한 이 소도시의 큰 자랑거리라고 한다. 해마다 관광객이 늘어나서 시 재정에 큰 몫을 한다고 하니 괴테가 남긴 큰 유산인 셈이다.

2백여 년 전에 지었지만 아직도 제몫을 단단히 하고 있는 괴테 극장은 소박한 2층 목조건물이다. 이곳에서 어느 날 갑자기 시침이 멈추기라도 했을까. 옛 정취가 물씬 풍긴다. 소극장은 잘 가꿔진 넓은 정원 한쪽에서 오늘도 손님을 맞이한다. 요즘도 매주 일요일 오후 3시에 한차례 공연이 있다고 한다.

마침 일요일이라 우리도 공연 중인 오페라를 관람하기로 했다. 공연될 오페라는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공연된 적이 없다는 모차르트의≪티토 대왕의 자비≫. 나는 오페라보다는 낡은 목조 건물 실내의 분위기가 더 궁금했다. 공연 티켓이 없으면 들어갈 수가 없는 곳이라기에 더욱 그랬다. 가랑비가 간간히 뿌리는 흐린 날씨였지만 공연 시간이 가까워지니 정장을 한 신사숙녀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풍경은 여전하나 사람은 바뀌었다. 처음 사람들의 손자의 손자쯤 되는 사람들이 오늘의 관객이 아니겠는가.

 

우리의 현지 여행 가이드는 라이프치히에서 성악을 공부하는 한국인 유학생이었다. 우리는 그의 설명에 귀 기울였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탈고한 후 심신이 지쳐있던 괴테는 휴양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빼어난 미모의 요하나 크리스티나 소피아는 실연의 아픔을 달래고 있던 그에게 천사 같은 여인이었다. 둘은 곧 깊은 사랑에 빠졌다. 온갖 재능과 부를 지녔던 괴테는 손수 큰 정원을 가꾸고 극장을 지어 그녀가 좋아하는 오페라를 초청 공연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고 한다. 나는 여행 중 가이드의 말을 100% 신뢰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소피아는 참 가련한 여인이었나 보다.

괴테의 여성 편력은 화려하고 다양했다. 그는 생애동안 뭇 여인들과의 사랑을 통해 작품 소재를 얻곤 했다고 한다. 특별히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시인 소설가 극작가 과학자 정치가로 평생 자유분방한 생활을 했던 그였다. 그는 15세 때 첫사랑을 했다. 이어 어머니 친구인 크레덴 베르크 부인에게서 얻은 감화로≪아름다운 영혼의 고백≫을, 샬로테 부프와의 비련을 통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썼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74세의 노령으로도 19세의 처녀를 사랑하였으나 이 사랑은 이뤄지지 못했고 그 연모의 정이 시집≪마리엔바더의 비가≫를 낳았다고 전한다. 여인에 얽힌 각가지 불후의 명작들을 남기지 못했다면 그는 단지 유별난 난봉꾼에 불과했을 지도 모른다.

이 아름다운 정원 역시 그의 유별난 애정행각의 부산물일 것이다. 그가 떠난 후 쓸쓸히 넓은 정원을 거닐었을 젊은 여인, 소피아의 아픔이 어땠을까. 괴테는 어쩜 평생 애정 결핍증 환자였는지 모른다. 그는 끊임없이 새로운 사랑을 찾아 헤맸지만 버림받은 여인은 죽을 때까지 이 정원을 지켰다고 한다. 더욱 슬픈 것은 소피아와 연관하여 괴테가 무슨 작품을 남겼다는 이야기는 없다. 나는 문득 엉뚱한 생각을 한다. 불쌍한 소피아! 그녀는 괴테의 영혼을 흔들어 놓지는 못했는가 보다. 그러나 누가 더 진정한 사랑을 했을까? 소피아에게 훨씬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아무튼 오늘 우리가 찾은 극장은 옛 모습 그대로라고 한다. 이런 건물을 원형대로 유지한다는 것은 예사 일이 아닐 것이다. 시드니의 명물인 오페라 하우스 같은 멋진 현대식 건물을 짓는 일이 오히려 쉬울 지도 모른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조심조심 밟고 2층 객석으로 올라갔다. 낮은 등받이가 있는 계단식 목조 장의자가 길게 놓여있는데, 좌석엔 옆 사람과 어깨가 닿을 정도로 빽빽하게 번호가 매겨져있다. 그래봤자 겨우 200석이다. 앉은 자리에서 엉덩이를 조금 움직일 때마다 유난히 삐거덕삐거덕 소리가 났다.

우리는 서로 “부서지겠다!” 하며 중얼거렸다. 앞좌석의 대머리 중년신사가 힐끗 뒤돌아보며 얼굴을 찡그린다. 그리곤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한다. 저 대머리 친구 너무 잘난 체 하는 게 아닌가? 우리를 뭘로 보고. 나는 잠시 기분이 상해 비쭉거렸다.

공연이 끝나니 날씨가 좋아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이 따갑다. 소극장 뒤쪽으로는 숲이 깊다. 오솔길에 들어서니 잉꼬 카나리아 등 온갖 새가 부지런히 지저귀고 마로니에 나무 열매가 떨어져 지천으로 뒹굴었다. 정원으로 나오니 중앙에는 큰 호수가 있다. 폭은 100미터쯤 길이는 그 3배나 돼 보이는 인공호수를 한 바퀴 삥 둘러 정원의 반대편으로 가니 작은 정자 하나가 나타났다. 정자 안에 누군가의 흉상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가보자. 괴테의 동상이라도 있는가 보다.

예상은 어긋났다. 정자의 주인은 소피아였다. 서양 명화에서나 본 듯한 젊은 여인이 엷은 미소를 흘리고 있다. 거장 괴테의 잠깐 사랑을 얻어 유명해지긴 했지만 결별 후 50여년을 혼자 살다 죽었다고 하니 엄청난 비련의 여인이다. 그래서 흉상이 세워진 걸까?

가련한 여인의 흉상 앞에서 한참동안 진지하게 묵념을 올리는 사람이 있었다. 저 사람이 왜 저러지? 자세히 보니 조금 전 극장 안에서 나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하던 그 잘난 대머리 신사였다. 잠시 후 그가 나에게 다가와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이것도 전혀 예상 밖이었다. 아까 그 거만함은 온 데 간 데 없다. 아주 친절한 신사로 보였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소피아를 찾아줘서 고맙다고 한다. 왜? 자기는 소피아의 후손이란다. 자주 이곳을 찾는다고도 했다. 게다가 그는 라이프치히 법대 출신의 변호사란다. 그러니까 괴테의 대학후배가 된다는 뜻이다.

“후손? 후배?”

“그래요, 소피아를 잘 알아요!”

 뭐야, 이 사람 혹 터무니없는 몽상가는 아닐까?

“정말?”

내가 못 믿겠다는 투로 다시 물으니, 그는 자못 진지하게 뭐라 뭐라 한참 설명한다. 그의 말을 다 알아 들을 수는 없지만 완전 거짓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자꾸 고개를 갸우뚱하니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여행 가이드가 개의치 말라는 충고를 했다. 가끔 저런 사람이 있다고, 믿고 말고는 듣는 사람 몫이라고, 자기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라고 한다.

“듣는 사람 몫이라니! 아주 꾸민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다잡아 묻고 싶었지만 이내 마음을 돌려 먹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더 이상 알아서 무얼 하겠는가.

10년이 지난 최근 꿈에서 우연히 그를 만났다. “그래, 좋아, 좋아!” 하며 대머리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꿈속에서도 그는 얼마나 근사한 독일 신사였던가. 그가 터무니없는 몽상가이면 어떤가. 소피아도 빙긋이 웃고 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들처럼 우리는 서로 깊이 교감했다. 꿈을 깨고 나는 새삼 옛 일이 생각나 지도를 펼쳐 발트라우크 시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독일의 대표적 관광코스인 괴테가도街道에 있는 작은 도시인 줄 알았는데…. 이번엔 인터넷 검색을 했다. 괴테와 그의 여인들도 검색해 보았다. 내가 찾는 도시는 물론 그 숱한 여인의 이름 속에 소피아는 없다. 괴테의 집이 있다는 도시 바이마르의 한 구역이었는지 모른다. 내가 지명을 잘못 알았나? 갑자기 기억중추가 혼돈하며 정신이 흐릿해진다. 내가 또 꿈을 꾸고 있나? 나는 검색을 포기했다. 이제 괴테 정원의 추억이 꿈결처럼 아득하다. 그러고 보니 지난 날 나의 모든 여행이 정말 꿈만 같다. 결국 내 인생이 한바탕 꿈 속 여행인가 보다.

 

 

≪에세이스트≫(‘06)로 등단, 2011년 올해의 작품상 수상,

인제대 교수, 부산백병원 병원장 및 대한흉부외과 학회장 역임.

저서: 시집 ≪때론 너무 낯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