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의 저편

 

이순형

 

새벽부터 전화벨이 울리더니 공사장으로 와 달라는 부탁이다. 이 추운 겨울에, 더구나 눈이 한 자는 쌓인 길을 뚫고 터널 공사를 하는 곳까지 오라니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다. 눈 덮인 산길에서 앞뒤를 분간할 수 없어 한참 헤매다가 겨우 울타리 친 공사현장 입구를 찾았다. 입구에 나와 기다리고 있던 현장소장이 안심한 표정으로 우리를 맞는다. 굴 안에 화약을 장전하고 있으니 가보라고 말한다.

백 미터쯤 파고 들어간 터널막장으로 내려가니 사람들이 고소작업대에 올라가 화약을 장전하고 있다. 저 사람들은 동이 트면 공사현장에 와서 해가 질 때까지 일하는 것이 몸에 밴 산업역군이다. 사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부딪치며 더운 날에는 땀에 절고 추운 날에는 동태처럼 얼어버리는 몸을 추슬러야 한다. 세상의 많은 아버지들이 삶의 현장에서 인생을 엮어가는 모습은 어느 위인 못지않게 존경스럽다.

동굴의 벽을 뚫고 화약을 장전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막장은 일단 들어가면 더 갈 곳이 없다. 나도 인생의 터널을 뚫다가 앞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얼마나 자주 돌아 나와야만 했던가.

발파 준비가 끝나자 기능공들이 각종 도구를 챙겨 나온다. 중장비들도 굉음을 내며 후진한다. 동굴 밖 드럼통에 피운 장작불이 우리를 맞는다. 장작불은 잠시라도 한기를 녹이며 담배를 피우게 하고 짤막한 잡담을 나누며 쉬게도 하는 건설현장의 오아시스다.

그런데 유난히 몸을 꽁꽁 싸맨 낯선 젊은이가 여럿 보인다. 동남아 사람들 같다. 국적을 물으니 태국사람이다. 속옷을 두 벌씩 껴입고 두툼한 패딩 점퍼까지 입었다. 털모자를 귀까지 내려 쓴 위에 다시 안전모를 얹고 질끈 동여맸다. 야자나무 그늘이 좋은 고향에서 가족과 헤어져, 찬 눈이 키만큼이나 쌓인 나라로 돈 벌러 왔으니 마음까지 추울 사람들이다. 옷을 아무리 두텁게 껴입어도 그들은 시린 모습이다. 보는 나의 가슴도 춥기는 마찬가지다.

태국사람이 한국말을 더듬거리는 모습이 신기하다. 나도 태국 말을 조금 알기에 태국어로 간단한 인사말을 던진다. 그러자 태국사람들이 반가워하며 미소 짓는다.

머나먼 중동의 사막으로 돈 벌러 갔던 청년시절이 생각난다. 낮에는 60도를 오르내리는 사막 가운데서 땀으로 샤워를 하며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횃불을 켜놓고 일했다. 그래도 월급통장에 쌓이던 돈은 곧 집을 장만하여 장가갈 수 있겠다는 희망과 함께 불어갔다. 그래서 더욱 이국 청년에게 연민의 정이 솟는지도 모른다. 한국에서는 청년 실업자가 넘쳐난다지만 막상 건설현장에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는 젊은이는 온통 외국 노동자뿐이다. 이 공사가 끝날 때 까지만 벌면 고향인 치앙마이에서 집을 한 채 살 수 있다면서 태국청년이 씩 웃는다. 우리 청년들도 2년을 일하면 집을 한 채 살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주면 혹시 일하러 올까? 현장 소장에게 넌지시 묻는다. 반백인 현장 소장은 피식, 김빠진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잠시 후, 사이렌이 울린다. 발파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사람들은 모두 재빠르게 안전지대로 피신한다. ‘꽝’소리가 나고 지축이 크게 흔들린다. 그리고 잠시 뒤, 사위가 갑자기 조용해진다. 어느새 발파 작업이 끝난 모양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태국 청년 한 명이 비명을 지른다. 부상을 입은 모양이다. 모두 놀라서 뛰어가 보니 동굴에서 튀어나온 돌에 다리를 다친 것 같다. 입고 있는 바지를 움켜쥔 태국 청년의 얼굴에 고통이 어려 있다. 바지 자락을 얼른 걷어보니 종아리에 피가 비친다. 다행히 상처는 깊지 않다. 요즈음은 워낙 안전관리를 철저히 하여 사고가 나는 일은 거의 없는데, 다친 태국 청년은 아마도 신참 같다. 한국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제때 피신하지 못한 모양이다. 다친 청년이 양호실로 떠난 뒤에 다시 발파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이어서 다시 화약 터지는 소리, 꽝! 터진 큰소리만큼이나 이곳에서 고생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행운이 터졌으면….

 

환풍기가 돌아가는 터널 안쪽으로 들어간다. 채 환기되지 않은 터널 속은 매캐한 화약 냄새가 코를 찌른다. 터널 여기저기에 날카롭게 깨진 돌이 흩어져있다. 마치 전쟁터에 온 것 같다. 터널 깊숙이 들어갈수록 파편이 많다. 막장 끝에는 돌이 무더기로 쌓여있다. 발파는 성공적이다. 이런 속도로만 나가면 이번 공사는 돈을 좀 벌겠다며 현장소장이 밝은 표정을 짓는다. 중장비가 다시 굉음을 낸다. 덤프트럭이 부수어진 돌을 실어 나른다. 낙반사고를 막기 위한 타원형 지지대를 동굴 안에 세우고 동굴 벽에 콘크리트를 발라 작업을 마무리한다.

암반을 뚫는 터널 공사는 전진하는 속도가 다른 일에 비하여 매우 느리다. 하루에 겨우 한 걸음을 나가자고 그 많은 사람들이 추위에 떨며 고생을 한다. 회사 측은 공사 기간을 단축시키려고 동굴 이쪽과 저쪽에서 동시에 작업을 진행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간격은 좁혀지고 마침내 두 막장의 사내들은 한 지점에서 서로 마주보게 된다. 그들은 그날을 기다리는 희망만으로도 팔뚝에 불끈 힘이 들어간다.

우리 인생은 앞을 향해 나아가는 터널 뚫기와 같다는 생각이다. 운수 좋은 날에는 부드러운 흙을 만나 순조롭지만, 대개는 암반이 앞을 가로 막고 있다. 그렇다고 터널 뚫기를 그만두지 못한다. 곡괭이로는 어림도 없을 때는 화약을 써서라도 뚫어야만 한다. 터널 뚫는 공사처럼 말이다. 때로는 목숨을 담보로 내놓아야 할 만큼 위험한 작업이지만, 저 끝 어딘가에서 마주할 ‘희망’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앞으로 나가는 일을 포기하지 못한다.

뉘엿뉘엿 해가 지는 저녁때가 되어서야 현장을 나선다. 귀가 떨어져 나갈듯한 추위가 몰려온다. 얼른 차에 올라 시동을 건다. 몸에 온기가 돌 때까지 신나게 차를 몰아 나간다. 고속도로의 터널을 지나면서, 겨우 하루에 한 발짝씩 막장을 뚫어나갔을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터널은 꽉 막힌 답답함을 뚫어준 사내들의 땀이 일구어낸 희망의 통로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누군가의 수고 덕분에 행복을 향해 달리는 길이 열린다. 터널 공사의 막장은 단절이 아니라 희망으로 향한 사람들의 염원이 맞닿은 곳이다.

한참을 달려가자 터널의 끝이 눈에 들어온다. 저만치, 태국 청년이 고향에 새로 지을 보금자리가 저녁 어스름 빛 속에 어른거린다.

 

 

≪계간수필≫로 등단(2010년).

공저≪버팀목 아홉≫.

계수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