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떼기

 

김희재

 

뉴스나 영화에서 흔히 접하는 죽음은 그저 죽음일 뿐인데 내 주변 가까운 곳에서 맞이하는 죽음은 너무도 심각하고 애달프다.

올해 89세 되신 시어머니.

지금 이승과 저승에 발 한 짝씩을 딛고 계시는데 이승에 둔 발이 차마 떨어지지 않아서 온 몸으로 아파하고 계신다. 심장도 신장도 폐도 다 낡아버렸고 머릿속 뇌의 기능도 뒤죽박죽이 되었다. 산소호흡기의 도움을 받아 숨을 쉬고 소변 줄을 끼워 노폐물을 빼내고 주사기로 투여하는 영양제로 식사를 대신하시고 있다.

그리도 자존심 강하고 기품 있던 어른이 밤새 고함을 지르며 탈출을 시도하는 난동환자가 되실 줄은 정말 몰랐다. 환청을 듣고 환각을 보며 혼자서도 자연스레 대화를 하는 것이 치매의 한 증상이라고 했다. 어머님도 가끔 모노드라마를 하는 배우처럼 혼자 이야기를 하신다. 절대로 당신만은 죽을 때까지 제 정신 놓는 일이 없을 거라고 주문을 외듯 자기 암시를 하며 살아오셨건만 끝내 세월을 이기지는 못하셨는지 아니면 이런 것이 자연스런 소멸의 과정인지 우리랑 이야기 하는 중에 60년 세월도 자유자재로 넘나드시곤 한다.

어머님은 평생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분이셨는데 요즘 들어 부쩍 마음속 깊이 꽁꽁 숨겨 두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마치 어제 일인 양 시시콜콜 다 털어 놓으셨다.

내리 딸만 셋을 낳고 네 번째 아이를 가졌을 때 만삭이 된 며느리를 불러 앉혀 놓고 만약 이번에도 딸이면 작은댁을 들여서라도 꼭 아들을 봐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던 당신 시아버지에 대한 서운함을 낱낱이 토로하시며 딸 셋 밑으로 내리 아들 셋 낳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모른다는 말도 수없이 되풀이 하셨다.

또 일 년이면 기제사를 열세 반상이나 모시던 종갓집에서 층층시하 시집살이가 얼마나 골수에 박히도록 매웠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빨리 집에 가지 않으면 당신 시어머니께 혼난다고 안절부절 하시면서 어서 기름병을 챙기라고 호통을 치며 성화를 부리셨다. 자기는 지금 집안의 큰일을 치르기 위해 떡을 하고 참기름도 짜러 방앗간에 온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다가도 퍼뜩 정신을 차리시면 내가 언제 그런 소리를 했냐는 듯 자애롭고 따스한 표정을 지으시며 피곤할 텐데 이제 그만 가서 쉬라고 다독여 주셨다.

“나가 여기 이러고 있으니 느그 아부지 밥은 어쩌까잉? 지도 안 담아놓고 나왔는디… 암만해두 나가 집에서 쫓겨나것다. 니가 얼른 가서 지 좀 담가 놓고 올텨?”

한번은 뜬금없이 30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나신 아버님 반찬 걱정에 애를 태우며 집에서 쫓겨날까 걱정하셨다. 걱정하는 어머님 얼굴에 홍조가 살짝 감돈다. 아무리 아버님 밥걱정은 하지 마시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할 수 없이 내가 전화 거는 시늉을 했다.

“아버님, 아직 집에 김치 많으시죠? 오늘은 엄니가 병원에서 주무셔야 하니까 기다리지 마셔요. 예. 아무 걱정 말라고요? 알겠어요. 어머님한테 걱정 말라고 전해 달라고요? 예예….”

전화하는 내 소리에 귀를 쫑긋이 세우고 계시다가 저쪽에서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아버님 허락이 떨어지는 듯하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돌아누우셨다. 치매 환자의 기억은 대개 가장 괴로웠거나 행복했던 순간에 머문다던데 어머님은 남편 밥상 걱정하던 그때가 제일 행복하셨던 걸까?

 

어머님은 지금 하루가 다르게 정신없이 빠른 속도로 막바지 진도를 빼고 계신다.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리는 심신은 마치 폭주기관차처럼 죽음을 향해 미친 듯이 달리고 있다. 바삭하게 삭은 껍질만 남은 달팽이처럼 동그랗게 말려있는 앙상한 작은 몸이 독한 진통제로도 다스릴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어머님은 쉴 새 없이 비명을 지르신다. 펴지지 않는 허리와 퉁퉁 부어서 돌덩이처럼 딱딱해진 다리가 아프다며 어찌할 바를 모르신다. 말 그대로 사투를 벌이고 계시는 것이다.

내가 어머님은 진심으로 사랑한다 했으나 이 상황에서 대신해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이승에 디딘 발 한 짝을 떼어내려 죽을힘을 다하시는 걸 감히 말릴 수도 없다. 인생이란 결국 각자 자기 몫의 삶을 살다가 가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깊이 절감하게 된다.

그래도 마음 다해 끝까지 지켜보며 정성껏 배웅해야지. 내가 드릴 수 있는 것은 그저 뜨거운 눈물밖에 없지만 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다면 많이 흘려 드려야겠다.

 

 

≪계간수필≫로 등단.(1998년).

≪오늘의 문학≫ 신인작품상(1997년)

현재, 한남대 한국어학당 강사. 계수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