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적셔 준 노래들

 

문육자

 

음악은 내게 위안이다. 잠들지 못하는 밤의 친구이며 흐느낌을 감싸 강물처럼 흘러 보내기도 한다. 클래식이 주는 침잠과 가녀린 떨림 같은 희열, 흘러간 팝 음악이 주는 카타르시스, 한을 서리서리 풀어내는 장사익의 목소리까지 어느 것 하나 가슴 치지 않는 것이 없다.

재클린 뒤 프레의 첼로 연주에 취해 밤을 밝힌 날, 그녀의 굳어가던 몸과 무뎌져가는 손가락 끝이 느껴져 마음 아프기도 했다. 음악은 내가 연주가인지 감상하는 사람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이렇게 많은 음악들이 위안을 주기도 하고 설렘도 주지만 그 중에서 가장 가슴을 적신 것은 제자들이 들려 준 노래였다. 그리고 그 노래들은 구원이었다.

K중학교에 근무하던 때였다. 5년을 근무하면서 크게 앓은 적이 두 번 있었는데 처음 앓고 나서였다. 결근으로 수업시간을 다른 교사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기에 미안한 마음으로 얼굴조차 들기 힘들어하며 출근한 아침의 조회 시간이었다. 반장의 지휘에 따라, 들려 준 미국의 포크 음악 그룹인 Brothers Four가 부른 ‘일곱 송이 수선화’라는 노래는 젖은 눈을 감게 만들고 마침내 나를 돌아서게 했다.

“…… 예쁜 걸 사 줄 재산은 없지만 달빛을 엮어 목걸이와 반지를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천 개의 언덕 위 아침을 보여 드리고 키스와 일곱 송이 수선화를 드릴 수 있습니다….”

덩치 큰 중 3의 머슴애들이 쬐끄만 담임을 위로하며 들려주는 노랫소리는 어느 음악과도 비교할 수가 없었다. 참으로 행복한 그해였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두 번째는 참담한 일을 당하고 난 후였다. 교단에서 수업을 하다 쓰러져 며칠을 결근한 후 낭패감과 부끄러움으로 교직 생활을 그만 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하며 출근한 때였다.

조회도 없이 시작된 1교시 수업, 내가 담임인 반의 국어 시간이었다. 시작 인사가 끝나자 반장 토마가 뚜벅뚜벅 걸어 나오더니 불러준 <Evergreen>.

“…언제나 사랑이 푸르고 푸르다면 여름이 지나 겨울이 와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토마가 불러 준 노래는 지치고 힘든 내게 위로이며 힘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힘내세요, 힘내세요.” 하면서 내 눈물을 볼 때까지 손뼉을 쳤다. 그리고 중3인 이 학생들을 졸업시키고 바로 S여중으로 전근을 했다. 오랜 기간 덩치 큰 남학생들만 가르치다가 보는 흰 깃의 여학생들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물론 갓 입학한 1학년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여학생들의 시샘까지도 예쁘기만 했다. 수업 시간에 선생의 눈길이 한곳으로만 갔다고 투정하는 아름다움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을까. 순수하고 고왔던 아이들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한 해를 마치던 종업식 날, 졸업식도 아니고 한 학교에서 얼마든지 만날 수 있는데 울먹이며 반장 진희가 들려 준 ABBA 그룹의 ‘I Have a dream'은 내게 용기를 준 노래였다. 그렇게 가녀린 진희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난 꿈이 있고 부를 노래도 있어요. 어떤 일도 할 수 있게 해 주지요. 만약 동화 같은 이야기를 믿는다면 당신은 아무리 힘들어도 미래를 꿈꿀 수 있어요….”

그 노래를 들으며 창밖으로 뾰족이 내민 목련의 겨울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불러 준 팝 음악은 젊은 날, 내가 즐겨 불렀던 노래들인 것을 볼 때 그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음악이 주었던 위로와 제자들의 격려가 버팀목이 되어 병마와 싸우면서도 잘 견뎠는지 모르겠다. 노래의 꽃다발은 어느 것과도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제자들의 고운 심성에서 우러난 노래는 나를 격려하여 더욱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제자들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었으며 사춘기도 함께 겪지 않았나 싶다. 외국에서 내한한 팝 그룹의 공연에 우르르 데리고 다닌다고 학부모님들의 걱정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노래로 타인을 위로하고 밝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그 맑은 심성은 그들이 바른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기틀이 되었다. 마음 모아 부르는 그들의 노래는 타인의 가슴을 훈훈하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맑고 곱게 자랄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으니 덤으로 온 축복이었다. 언젠가 읽었던 글귀가 생각났다. ‘착지부대월 지성월자래(鑿池不待月 池成月自來),’ 즉 연못을 팔 때는 달을 기다리지 않고 팠으나 연못을 만들어 놓고 나니 물만 가득한 것이 아니라 달이 찾아 와 비추는구나.

창가에 달빛이 시리다. 그러나 세상을 돌아온 넉넉함이 거기에 있다. 그때와 같은 아름다운 교실 풍정風情이 동화 속의 이야기는 아니리라. 지금도 어느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이 함께 부르는 훈훈한 사랑의 노래가 이 밤에 환청이 되어 들려온다.

*재클린 뒤 프레: 영국의 첼리스트, 다발성 경화증硬化症으로 42세에 요절

 

 

<한국수필> 등단.

수필집 ≪바다, 기억의 저편≫ ≪끝나는 길에서 다시 떠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