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줄

 

배정인

 

밤이다.

흘러내린 검은 벽에 둥근 징이 붙어있다. 한밤중 허공에 박힌 열 이레 달처럼 허망토록 무색하다. 그럼에도 그 시드름한 외꽃색이 천국을 트는 회랑의 문처럼 영혼의 창을 부른다.

징이 운다. 몸을 떨며 빛이 죽는다. 객석이 어둠을 먹고 미끄러진다. 쏴- 물이 거품을 먹으며 빠져 나간다. 거제 바닷가, 몽실몽실한 몽돌들이 일제히 검은 머리를 세운다. 소리가 비늘로 주름 잡히면서 징이 박혀 있던 무대의 벽이 문으로 열린다.

먹물 하늘에 휘영청 보름달이 떴다. 달이 자궁에 걸린 줄을 건져 올리고 있다. 언젠가 굴러 떨어져야 하는 둥근 운명이 언젠가 끊어져야 하는 실낱같은 목숨을 물고 한창 자그라지고 있다. 이윽고 달의 씨방에 잉태된 흰 새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선다. 한 뼘도 안 되는 지평선, 그 외나무다리 위에 낯익은 학이 솟는다.

왼손에 합죽선을 접어들고 흰 바지저고리에 빤작이가 붙은 푸른 배자를 걸쳤다. 쥐색 보자기에 싸인 배곯는 전대가 절벽 같은 허리에 걸렸다. 갈 길이 멀다. 그런데, 웬일로 신을 신지 않았다. 질끈 묶은 검은 행전 아랫다리에 흰 버선발이다. 머리엔 노을 빛 갓을 뚫고 하늘이라도 찌를 듯이 맹호수가 두 개 솟았다. 귀가 점지될 땐 저랬을까? 하긴, 저것이 처음에 검님의 말을 받아 적던 귀였을 것이다. 듣기를 거부함으로써, 이제는 새의 꼬리 깃으로 장식해야 하는, 머거리가 되어버린 사람의 귀다. 그 어설픈 차림새가 익살인지 슬픔인지 분간이 되지 않지만, 낯설지 않다. 때묻은 헌 옷같이 편안하다.

피리가 운다. 소리가 달을 어른다. 피리소리를 따라 달빛이 붉어지면 학은 붉은 원숭이가 되고, 푸른 달 아래에서는 풀숲의 인광 같이 푸르스름한 원숭이가 된다. 도깨비 웃음을 웃으며 갈색 원숭이가 부닥방망이를 내려주십사 손바닥을 비빈다. 소망은 심중에 갇힌 울음 같은 것, 눈물을 훔치며 돌아선다. 거절 당한 무안이 체념의 허리에 팔랑개비로 돌면서 접혀진 합죽선이 저쪽으로 도망을 친다. 산다는 것은 어디엔가 숨어야 하는 설음이다.

목을 길게 빼고 나래를 편다. 먼 하늘 우러르며 활개를 쳐본다. 그러나 활개는 타조의 날개다. 잃어버린 날개, 그걸 찾고자 잉크 병 같은 빌딩의 옥상에 서서 ‘이상’은 끓는 겨드랑이를 긁으며 홰치는 닭처럼 정오에 울지 않았던가. 하늘이 없다. 하여, 날개는 돋지 않는다. 나는 그런 내 겨드랑이가 민망하다.

바람이 분다. 팔랑팔랑 수표가 날아온다. 털북숭이 손이 날아가는 지폐를 텁진다. 잡았다! 웃음꽃이 흐드러지며 쥔 손을 편다. 손바닥뿐이다. 잡아도 잡아도 빈손만 잡힌다. 바람이 그치고, 잎새는 보이지 않는다. 부채로 허벅지를 두드리며 허망해 한다. 원망에다 허덜을 떤다. 그때 우레가 쳤다. 소리는 뇌간을 치는 빛이다. 오만한 증오는 설렁줄을 흔들고 지평선은 진도 9의 간질을 앓는다. 나락 논에 새를 쫓듯이 그 손은 지금 장난을 즐기고 있지만, 외롭고 가련한 원숭이, 절망을 움켜쥐며 허무너지다가 간신히 줄에 매달린다. 지폐의 끈이 목줄인 세상에서 우리는 빈 손을 덕이라 여기는 모순으로 가난한 자를 위로 하는가.

정월 보름날, 바람이 널을 뛰고 있다. 옷자락이 풀럭 풀럭 풀럭인다. 풀럭임, 그 불안함, 발에 땀이 난다. 몸을 오그리면 붉은 갓과 갈색 얼굴만 남아 달의 뱃속에서 하얗게 웃고, 줄이 버선발을 퉁기면 머리는 한 순간에 잘려나가고, 바람에 날리는 서답처럼 목 없는 몸뚱아리만 허공에서 풀럭인다. 목이 떨어졌다 붙었다 하는 이 기구한 운명을 넘나들며 보이지 않는 어둠을 향해 원숭이가 학의 웃음을 웃고 있다. 소프라노가 천천히 늪으로 들어간다. 의문이 범벅된 웃음, 인생이라는 늪은 대답을 들을 수 없는 물음이라고 껌을 풍선 분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키를 맞추려고 굼뜬 재롱을 부리면서도, 허허허, 비웃음이나마 웃으며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라고, 그렇게 객쩍게 웃는다.

부채를 접어 허구리에 붙이고 10원짜리 동전을 굴리며 헐렁펄렁 세상을 건너간다. 꿈을 잡으러 간다. 가다가 홱 돌아서도 보고, 파람 나게 달려도 보지만, 하늘은 달 밖에 있고 달엔 외출하는 문이 없다. 앞으로 나가면 나아가는 만큼에, 돌아서면 바로 거기에, 어김없이 안으로 휘어지는 원圓의 벽이 있다. 대창보다 얇지만 이 벽은 어둠과 빛이 공유하는 표피다. 어둠에도 녹지 않고 빛에도 뚫리지 않는다.

태초에도 빛은 어둠의 자궁 안에 갇혀 있었다. 달은 검은 벽에 갇힌 포로요, 인간은 빛에 눈 먼 포로다. 가도 가도 언제나 그 자리에 박혀 있는 박제가 된 학. 그런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려고 이 질식의 공간을 시인들은 달이라 불렀을 것이다. 예술은 가련한 독백의 찌꺼기인가.

머리카락이 몇 올이나 땅에 닿아야 삼손이 될까? 죽음의 골짜기를 건너는 머리카락, 바람을 잡으러 가는 깨끔발이 디딘 땅은 서러운 열두 새 삼올이다. 이승과 저승이 부둥켜안고 몸을 비벼 트는 은원의 새끼줄, 그게 인간의 탯줄이거니. 새끼처럼 비비꼬인 한 가닥 끈을 물고, 줄이 헛기침을 하면 따라 줄춤을 추고, 굿을 하라면 버꾸굿을 하고, 새끼줄에 끼인 붉은 고추가 바람 이는 갈대를 바라본다. 고개를 숙이고 울대를 삼키며 삼키며, 다가오는 시각時刻에게 잠시 소망하는 별을 빌어본다.

시간은 생명의 연인이 되어 매우 은밀하게 다가온다. 내색 없이 머물다가 무우밑둥처럼 빠져버린다. 아무도 그의 배반을 의심하지 않는다. 배신은 믿은 자에게만 온다는 진리도 의식하지 못하게 한다. 그렇거니, 그렇거니 여기면서, 서낭나무의 허리에 감긴 새끼줄처럼 외롭고 쓸쓸한 겨울을 나며 목숨은 혼자 삭아 떨어진다.

원숭이가 비상하려 한다. 부채를 펴고 펴고 확 펴고, 드디어 까치발을 세우며 달린다. 물낯을 수제비 뜨는 고니처럼 퍼덕인다. 티잉- 마치 효과음을 넣듯이 부채 살 터지는 소리가 날았다. 눈이 번쩍 번개를 되쏘고는, 왼발이 허방을 짚는 시늉을 하며 공중잡이를 하는가 싶더니, 담 넘는 도둑같이 검은 벽을 날아나갔다. 그러자 가시에 찔린 풍선처럼 달이 쪼그라져버렸다.

수런거리는 어둠, 거적때기가 땅에 너부러져 있다. 빨간 갓이 저만치 굴러 있다. 안테나가 부러졌다. 무대엔 빛이 없다. 허리가 구부정한 검은 난쟁이 도깨비들이 원숭이를 떠메고 굴로 들어간다. 낄낄낄, 먹구름이 밤의 엉덩이를 두들기며 막춤을 흔든다. 이 문을 열면 천국에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고, 그 변신의 길에는 별이 있다고, 낄낄낄, 변명을 하고 있다.

 

이 길 어디쯤에 배반의 이정표는 서 있는가. 그 어느 날 문득 내 손에 잡혀 있는 변심의 손을 보았을 때, 낭패는 얼마나 어두운가. 그 찰나가 망막에 언뜻 비춰주는 시각의 낯짝, 단절의 섬광은 달 안에서는 보지 못하는 경이이다. 새로운 빛, 지난 날엔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낯선 현란함, 먹빛 섬광은 눈을 먹어버린다. 검은 늪에 이르는 생명의 구멍, 인간은 줄이 터지는 그 순간에야 참 빛을 보는 지도 모른다. 처음 보는 그 검은 빛은 바닷가 몽돌을 뒤엎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인간은 그 줄을 타지 않으면 안 되는 슬픈 광대이다. 어쩌랴. 인생이라는 것이 타자他者인 것을.

 

막이 일어섰다. 그 너머 칠漆 짙은 뒷골목에 어허너엄 소리 가고 있다.

 

 

≪월간 에세이≫로 등단. 진주수필문학회장.

저서 ≪참수필 짓는 이야기≫ ≪픽셀Q의 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