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회추천|

 

기다림

 

이양선

 

여름휴가 첫날, 그날도 역시 추적추적 장맛비가 내렸다. 오랜만에 여행길에 나선 아이들은 빗속에서도 마냥 들떠 있었다. 안면도에 들어서자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먼저 반겼다.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따라 짙푸른 바다와 평화로운 어촌을 번갈아 지나쳐 가면서 나도 점점 들뜨기 시작했다.

숙소를 향해 일 차선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갈색 털이 풍성하고 땅딸막한 강아지가 한 마리가 도로 가운데로 뛰어 들었다. 녀석은 순간 방향을 잃은 듯 허둥대다 차가 진행하는 방향으로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별수 없이 천천히 달렸다. 웬만큼 달리다가 비켜설 줄 알았는데 내처 줄기차게 달렸다. 아이들은 차창 밖에 고개를 내밀고 응원하듯 박수까지 보며 좋아했다. 녀석은 달리면서도 순간순간 뒤를 돌아보았다. 차가 숙소 앞에 서자 녀석은 저만큼 떨어진 곳에 비켜서 짐을 챙기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별 생각 없이 숙소에 들었다.

여장을 풀자 아이들은 숙소까지 들려오는 파도소리에 이끌려 보슬비가 내리는데도 해수욕장으로 내달렸다. 우리 내외는 산책이나 할 요량으로 휴양림을 향해 지나왔던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빗속인데도 밀려드는 휴가차량으로 도로는 여전히 붐볐다.

한산한 구간으로 접어드는데 또 그 녀석이 도로 가운데로 들어섰다. 비에 흠뻑 젖어 풍성하던 털이 꾀죄죄했다. 쳐진 털이 땅에 닿을 듯해 짧은 다리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우수에 젖은 듯한 눈을 깜빡이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측은해 보였다. 녀석은 우리 차 앞에서 또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존재를 사람에게 확인시키려는 듯 달리며 뒤돌아보고 달리며 뒤돌아보고를 계속했다. 처음엔 웬 녀석이 겁도 없이 자동차 앞에 뛰어 든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게 우발적인 행동이 아니라 생각되었다. 녀석은 전부터 자동차와 친근한 사이였던 것 같았다.

자동차에서 내려 울창한 휴양림에 들어섰다. 몸통이 붉은 토종 소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 위엄을 부리고 있었다. 안개비로 자욱한 숲속에는 청량한 기운이 가득했다. 솔바람소리와 풀벌레소리만 들릴 뿐 마치 무인도의 밀림 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소나무 꼭대기에 걸쳐있는 운해가 동양화의 진수를 눈앞에 펼쳐 놓은 듯 운치를 더했다.

햇빛 한 번 보지 못했지만 우중의 이박삼일은 짧기만 했다. 사흘 내내 귓가를 맴돌던 파도소리와 빗소리와 바람소리가 짧은 여정이 아쉽다는 듯 자꾸 발길을 붙잡았다. 우리는 까맣게 강아지를 잊고 있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 그 지점에 이르자 어디에서 기다리고 있었는지 또 녀석이 나타났다. 나타더니 자동차 앞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흙탕물을 잔뜩 뒤집어쓴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였다. 유독 우리 차만 보면 나서는 것으로 보아 우리 차와 모양과 색상이 비슷한 차에 익숙해서일는지도 모른다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달리던 녀석이 돌연 멈추더니 돌아섰다. 차가 서서히 다가가도 꼼짝하지 않았다. 영문을 모르고 뒤따르던 자동차들은 경적을 울리기 시작했다. 숨을 헐떡거리며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 사이로 우리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검고 똥그란 눈이 심상찮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무언가를 호소할 듯한 보이기도 하고, 정이란 게 무 자르듯 그리 쉽게 잊히는 거냐고 항변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한참 동안 우리는 바라보다가 ‘컹컹’ 앙칼지게 짖기까지 했다. 그 소리가 꼬리를 물고 이어진 자동차 행렬을 향한 매서운 질책이란 생각이 들어 발뒤꿈치가 저려왔다. 녀석은 끊이지 않는 경적 소리에 체념했는지 머리를 떨구며 휴양림 쪽으로 비켜섰다.

그 질책이 커다란 파문을 일으켜 내 가슴을 흔들더니 나중엔 구석구석을 헤집었다. 아이들은 불쌍하다며 데려다 키우자고 보챘다. 긴 털이 보송보송한 예쁜 강아지가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그 강아지를 안고 좋아할 아이들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러나 나는 먼 산만 바라보았다. 얼마 전 우발적인 사고로 낭패를 보았던 앵무새가 생각나서였다. 눈을 질끈 감았다. 앵무새를 잃었을 때의 아픔을 다시 덧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의 원성을 들으면서도 멀어져 가는 녀석의 뒷모습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