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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

 

황정숙

 

“민희야! 왜 벌들이 계단 밑에서 나오니? 참 이상하지?”

근래에 막내와 나는 현관 앞 계단 주위를 맴도는 벌떼를 자주 발견하곤 의아해 했다. 사실 언젠가부터 계단과 바닥 사이에는 작은 틈이 하나 생겼었다. 양 틈새 끝으론 흙더미가 무너져 내리기까지 했다. 한 번은 두더지가 구멍을 만들어 들락날락 하던 걸 발견하곤 남편이 거친 삽질을 해가며 입구를 완벽하게 메웠었다. 그렇지만 남편은 계단 밑 틈에까지는 미처 손을 대지 못했던 거다. 보기가 그리 흉한 것도 아니었고 시멘트 가루를 사다가 물에 개어 틈을 메우는 것 역시 번거로운 일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랬더니 벌어진 틈새를 두더지가 아닌 벌떼들이 어느새 그들의 거처로 사용하고 있을 줄이야!

시아버님과 남편에게 막내 핑계를 대며 번거롭더라도 계단의 틈을 메워달라고 졸랐다. 남편의 엄지만큼이나 큰 땅벌이 무서워 외출 때마다 현관 문을 기웃거리는 딸 아이가 가엾다며 졸라댔다. 우리 집 공주를 위해서라면 뭐든 마다하지 않는 남편이 즉시 홈디퍼(Home Depot) 가게로 달려가서 시멘트 재료를 사다가 물을 섞더니 거친 입을 떡 벌리고 앉아 있던 틈을 헌다 하게 메워버렸다. 시아버님의 섬세한 마무리 작업도 전문가 뺨치는 솜씨여서 이제는 아무도 벌떼가 은신처로 삼던 계단 밑 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 이튿날 가벼운 샌들을 발가락에 대충 걸고는 자신 있게 현관문을 나섰던 딸아이가 사색이 되어 성급히 되돌아 들어오며 긴장한 목소리로 말한다.

“엄마! 벌이 아직도 밖에 있어요. 저기 땅 속에 애기 벌들, 엄마 벌들이 있나 봐요.”

아빠 벌이라 짐작되는 큰 벌이 막힌 틈 주위를 쉬지 않고 애처로이 빙빙 돌고 있었다.

지난 밤 내내 그리 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잔디밭에 쪼그리고 앉아 잠시 아리게 아파오는 마음으로 벌의 윙윙거리는 애절한 울음을 그대로 들어주고 있어야만 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내게 딸 아이가 기발한 생각 한 덩이를 던진다. 엄지와 중지를 맞부딪쳐 가며 스냅 소리를 내는 아이의 눈은 평소보다 두 배는 크다. 좋은 해결책을 찾은 모양이다. 딸 애는 신통하게도 나무 밑에 벌떼들의 예쁜 집을 만들어 그들의 거처를 옮겨주면 어떻겠냐는 의견을 냈지만, 나는 성난 날갯짓을 하며 미친 듯 계단 틈 주위를 맴도는 무서운 땅벌에게 아무 것도 해 줄 수가 없었다. 다만 아빠 벌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가득 담아 조용히 속삭여 주었다. 애초부터 거기에 집을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고, 아비 벌의 잘못된 선택이 가족을 그리 만들고 말았다고, 그리고 부디 새로 만들 벌집 터는 시원한 바람 들며 더러는 서늘한 그늘도 지고 가끔은 맑은 햇살도 내리쬐는 그런 아늑한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귀엣말로 전해 주었다.

며칠이 지나니 이제는 더 이상 현관 앞에서 벌을 볼 일이 안 생긴다. 거처를 옮긴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가끔 새로 메워진 틈을 유심히 내려다보게 된다. 어쩌면 까맣게 변한 벌들이 아직도 틈 밑에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 한 구석이 아파오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가 더 큰 벌집의 온상이 되기 전에 잘 메웠다고 자책감 대신에 괜찮다며 애써 자신을 위로하는 이기적인 나를 보기도 한다. 틈새 메우기도 중요하지만 미물의 생명도 소중히 여겼어야 했는데 경솔했다는 생각은 몇 주일 내내 나를 괴롭히기에 충분했다. 마당 앞을 지날 때마다 말라가는 시멘트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는 나를 오히려 어린 딸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토닥거리며 위로해 주느라 바빴다.

오늘은 부엌에서 저녁 쌀을 씻고 있는데 이층 욕실에서 샤워를 마친 아이가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른다. 놀라서 단숨에 뛰어 올라가 보니, 화장실 한 구석에서 개미떼가 무리를 지어 작은 과자 부스러기를 낑낑거리며 어디론가 옮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얘들 봐라? 얘들이 어떻게 이층까지 올라온 걸까? 가만 있자! 그러면 개미를 없애기 위해서는 또 어떤 틈을 메워야 하는 거지? 죽이지 않고 틈만 막는 방법도 잇겠지? 그런데 도대체 어디로들 들어온 거야? 개미 소굴을 바로 찾아야 약을 뿌리든지 하지, 나 원 참!’

하얀 쌀뜨물을 휘저어 저녁을 짓다 말고 나는 안경을 쓴 채 오기를 부려가며 새 틈새를 찾느라 수선을 피운다. 욕실의 집기를 모두 복도로 옮긴 채 말이다. 거울에 비친 땀 범벅이의 내 모습이 제법 심각하다. 머리는 다 헝클어져 내려와 눈을 찌르고 있고, 콧등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으며, 양 손에는 누런 걸레와 스프레이가 들려 있었다. 이유는 정확하지 않지만 조금은 성난 모습임이 분명하다. 살림을 해야 하는 가정주부로서 가족을 위해 틈을 메워야 한다는 강박관념 하나와 작은 생명도 귀히 여겨야 한다는 생각 하나가 거울 속 세상에서 팽팽한 의견 대립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땅벌과 개미가 들락거리던 작은 틈새로 인간 세상을 들여다 본다.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아야 하는 삶이나, 옳지 못한 마음 때문에 깊은 수렁에 빠져버린 인생에는 분명 어느 순간 금이 간 틈이 생겨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건 달콤한 유혹이 허락한 틈새일 수도 있다. 욕심을 다스리지 못해 조금씩 벌어진 틈일 수도 있다. 또는 용서하지 못해 분노의 불길을 키운 미련한 틈새일 수도 있다. 처음엔 작게만 보이던 것이 거대한 전체를 허물어 버렸다는 사실을 알고 때로 우리는 절망하고 탄식하지만 이미 늦은 상황일 때도 있다. 그래서 때론 선을 살리기 위해 악을 죽이기도 하며, 사랑하면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할 때는 가슴을 찢는 아픔이 와도 마음을 닫아야 하는가 보다. 또한, 억울한 화병의 끝에서도 상대를 위한 용서의 제단을 쌓아야 하리라.

홍역을 치르듯 내 청춘의 한 시점에서 경험한 아픔의 흔적들이 허술한 틈새 사이로 엿보이고 있었다. 숨기고 싶은 장면들까지도 선명하게 떠올랐다. 더러는 영원히 아무에게도 꺼내 보이고 싶지 않은 어리석은 실수와 허물들이 심장을 멈추게 할 위엄 있는 자세로 나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저녁 밥 준비를 잠시 잊은 나는 파도에 휩쓸리듯 오가는 숱한 생각들과 먼 기억의 끝자락을 맞붙잡고 느림보 걸음으로 홀로 동네를 거닐었다. 소란했던 한낮이 어느새 물러가고 차분한 어두움과 정적의 밤이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내 앞에 다가오고 있었다.